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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 글

(1)부박하다(浮薄하다) : 천박하고 경솔하다(@흔희)

by 땡비

갈피를 못 잡고 늪에 허덕거렸다. 하루는 득도한 부처마냥 너른 마음을 가졌다가 하루는 몸속에 독기가 올라온 듯 분노에 몸을 파리하게 떠는 날들이 무시로 반복되었다. 노력에 대한 배반을 겪고 보니 세상이 참 부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정희 작가는 ’옛우물‘이란 소설에서 ‘우리 삶의 풍속은 그만큼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어 부박하다.’라고 말하던데.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세상을, 그리고 너를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내 삶의 풍속은 한없이 부박하며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억울하다. 뜰 부(浮)와 얇은 박(薄)이 만나 천박하고 경솔해진 이 낱말이 가엾다. 얇으니 뜰 수밖에 없는데. 묵직하게 가라앉지 못하고 둥둥 뜬다는 이유로 천박하고 경솔하다는 뜻을 품고 살아야 하는 이 낱말이 어쩐지 처연하다. 천박하고 경솔함이 밖으로 향하기보다는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대한 냉소라기보다는 자조 섞인 서러움이 묻어 있다.


살다 보니,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삶의 풍속에서 그러한 시절이 찾아올 때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지질한 내 모습을 견딜 수 없어서 위안 삼듯 쏟아붓는 노력이 삶을 더 부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얇으니 뜰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하루를 그저 충실히 보낸다. 그러다 보면 삶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쯤 기울어진 덕에 사계절이 존재한다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기울기는 삶을 여러 파동으로 이끌고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기울어진 채로 끊임없이 회전하는 지구가 만들어 내는 사계절은 아름답다. 우선은 내 삶의 부박함을 안고 하루를 미련 없이 살아본다. 그런 하루가 쌓여 삶에 후회가 남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충만함을 기대해 본다. 삶의 여러 파동이 만들어내는 사계절이 아름답지 않은가.


다들, 굽이치는 파동을 잘 타시기를.


그리고 편안하고 평온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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