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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Apr 21. 2024

그날의 푸른 제주도(by. 흔희)

#15. 최고의 여행지

24살. 다른 사람보다 입학이 늦었던 나는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의 나는 학생회 활동으로 학과 생활에 열을 올리며 각종 행사에 활발하게 참여하던 중이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동시에 낯선 자극이 주는 충만함과 헛헛함에 내 안의 무언가가 고갈되어 가던 시기를 보내고 있기도 했다. 분명 학교 생활이 재미있는데 또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기를 시작한 9월의 초입. 아직 늦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던 날이었다. 17살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주도에 가자고. 그들은 "내가 일주일에 4일을 등교하니 목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바로 떠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연락 온 날이 화요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보지 않았다. 과외를 하고 있었지만 그 돈은 취직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아는 우리 셋이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게 어디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떠나자고 했다. 수요일에 친구 2명은 바쁜 나를 배려하여 여행 계획을 세웠고 "여행 경비만 계좌로 보내라"고 하였다. 정말 돈만 보냈다. 제주도에 간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비행기에 올랐다.


대개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옷도, 화장도 한 껏 꾸미고 나간다. 하지만 그날의 여행은 달랐다. 그냥 다 내려놓고 만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앞머리를 핀으로 씩 꽂고 렌즈 대신 안경을 끼고, 가장 편한 복장으로 공항으로 갔다. 보아하니 친구들도 나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서로 구구절절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다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지쳐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을 무언가를 찾듯이 우리는 허기진 마음을 끌어안고 서로를 찾아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거지꼴을 한 여대생 세명은 제주도에 떨어지자마자 갈치조림을 맛있게 한다는 기사식당에 가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때는 올레길이 막 유명해지기 직전의 시점이었다. 여대생들이 흔하게 묵는 곳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하루에 3만 원짜리인, 올레꾼들이 모인다는 모텔을 숙소로 잡았다. 코스가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중섭 미술관을 갔었고 '게 짬뽕'을 흡입하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바다를 배경으로 걷고 또 걸었다. 숲길로 들어서자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먼저 노래를 흥얼거렸다. 앞서 걷고 있던 친구가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넘어져서 한 바퀴를 굴렀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었다가 말이 없어졌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바라보고 묵묵하게 길을 걸었다. 앞서 걸어가는 네 등이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게 보였다. 가쁘게 차오르는 숨소리에서 무언가를 무던히도 견디며 앞을 나아가는 네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아마도 입술을 꽉 다물고 다부진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겠지.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게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드디어 코스의 최종 목표점을 목전에 뒀을 때, 나와 친구 한 명의 장에서 신호가 왔다. 점심때 먹었던 '게 짬뽕'이 문제였다. 사실 그전부터 올레길을 걸으며 화장실을 기웃거려 봤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한계치에 임박한 내가 말했다. “나, 더 못가.” 그 말을 듣고 뒤돌아보던 친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택시 잡아라.” 그 누구를 향한 탓함 없이 그렇게 우리는 완주를 눈앞에 두고 택시를 탔다. 이 장면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인생의 한 축이 되었다. 무뚝뚝함 속에서 묻어나는 진심이 드러난 날이 그날이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몇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한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보유하는 것이다. 살면 살수록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시간이 바빠 예전만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점차 내가 알던 모습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너지만. 그래도 어떤 한 시절을 공유하고 함께했었다는 기억만으로도 나의 관계망은 인생의 한 부분을 소복하게 채워준다. 함께하는 세월이 더해가면서 서로의 늙음에 경애를 보낸다.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날이면 빙긋 웃음이 난다. 그 기억 속에서의 너희가 좋다. 그리고 그때보다 주름도 늘어났고 살도 쪘고 노화를 걱정하는 우리지만. 이제는 뭘 좀 챙겨 먹고 놀아야 한다며 만나는 자리에서 영양제를 한껏 꺼내 내 입에 털어 넣어주는 네가 있어 참 좋다. 


그렇게 나는 피천득이 말했던 것처럼 너희와 함께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땡비] #15. 최고의 여행지

 - 못골 글 보러가기 : 구름 옆에 서서 https://brunch.co.kr/@ddbee/66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그날의 푸른 제주도 https://brunch.co.kr/@ddbee/67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출장과 여행 그 어느 경계에서 https://brunch.co.kr/@ddbe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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