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최고의 여행지
아침에 예약해 둔 밴을 타고 그로스 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산(3,500m)의 정상을 넘었다. 한국에서 어느 산이든지 차를 타고 오른 적이 있는가? 차를 타고 등반할 생각을 아예 해 본 적이 없다. 외국여행이라는 특수한 경우라 하지만 차를 타고 산을 오르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토바이로 이 산을 오르는 것을 살아가는 목표 중에 하나로 잡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생존이 급급한 우리들의 생활목표와 취미에 삶의 의미를 두는 이곳 사람들과는 인생에 걸어보는 가치에 많은 차이가 있다.
넓고 아름다운, 그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를 모국으로 하여 태어난 아이들과 온갖 고통을 견디며 아웅다웅 살고 있는 좁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 속에서 살아가며 갖추어지는 인성도 다르리라.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하니 어찌하겠는가? 그 또한 운명인 걸 아차차! 가벼운 여행에 너무 무거운 생각을 하나보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 차창 너머로 깊은 계곡을 보고 눈을 들어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멀리 봉우리마다 덮여있는 빙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알프스에 왔구나! 우리나라에도 보은 말티재처럼 지그재그로 능선에 길을 만들어 산을 넘는 특이한 곳이 있긴 하지만 이곳과는 그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보니 젊은 청춘 남녀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남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맞춤을 하고 있다.
청춘은 참 좋은 시절이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지다. 젊은 그때는 힘들고 괴로운 일도 지나고 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각색된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시절의 어려운 시기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에게 매달리듯 여성이 남성을 안고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롭다. 순간이라도 그 느낌이 전해온다. 아름다운 청춘을 찰깍하고 담았다.
정상에 오르기 전 차를 멈춰 여러 번의 촬영 기회를 안내 기사가 제공해 주었다. 배경, 배경처리가 중요하다. 염두에 두고 광각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위치 잡기에 집중한다. 넓고 광활한 배경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물의 크기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잘리거나 하면 안 된다. 땅에 발을 딛고 선 전신이 작게 나오는 연출이 가장 효과적이다. 정상에 오르니 여기저기 꽃이 있다. 14-24 렌즈가 필요한데 없다. 없어서가 아니라 힘에 부쳐 장비를 휴대하지 못하니 좋은 시절은 정말 가버렸다.
우리나라의 용담 비슷한 꽃들이 여기저기 있다. 산이 높아서 머리 위에 구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 방향으로 있다. 하늘에 솟아있는 인물처럼 배경에 구름이 있다. 구름 밑으로 흰 빙하가 놓여 있고 그 빙하가 녹아서 계곡을 이루며 아래로 녹색의 빙하수가 흐른다. 그 흐른 빙하수가 모여 정상에 호수를 이루고 호수 물이 다시 아래로 흘러 내를 이루고 거대한 빙하호를 형성한다. 빙하에 깎이고 깎여 정상의 봉우리들이 칼날처럼 예리하다. 산 정상 한참 아래까지 있었던 빙하가 온난화로 녹아서 정상 부분에만 남아있다. 어느 해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10m 이상 적설이 되어 3개월 동안 눈을 치우는 작업을 했단다. 여기는 눈을 치우기 위한 제설 중장비가 산굽이 중간중간에 준비되어 여름에도 그대로 놓여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34 OP 군대 생활할 때 제설작업으로 겨울 내내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생각났다. 관광객을 위한 망루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담아냈을까? 내가 앉아 사진이 되고, 화석이 된 이 자리에 나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갈 것이다. 이 벤치도 밤, 낮으로 바람과 눈, 비에 침식되며 세월이 흐르겠지! 다시는 못 올 이곳에 한 번 앉았다가 가는 이 보잘것없는 행위로 이 자리에 이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참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여행은 사고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주변의 풍광보다 오히려 내면으로 향하는 삶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 각자에게 각자의 여행패턴이란 말이 그런 의미인가 보다. 반나절을 그로스글로크너하이 알파인 로드를 관람했다. 내려오며 보니 그 높은 봉우리까지 나이도 내 또래의 노인이 자전거로 3500m 산 정상을 향해 헉헉거리며 열심히 페달을 밟는 모습이 대단하다. 30분 여유시간을 미리 사용해 버렸는데도 밴 운전기사는 몇 번의 촬영 기회를 더 제공해 주는 친절을 보였다.
속물은 할 수 없나보다. 승용차를 제공받는데 비용을 얼마나 많이 주었을까? 억수로 비쌀 것 같은데....! 우려와 함께 궁금증이 발동하지만 물어볼 수 없다. 딸에게 물으면 또 불필요한 걱정을 한다며 타박이 돌아올 게 뻔하다. 입 닥치고 9월에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을 가까이서 만져보고 옆으로 뜬 구름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는 충분하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못골 글 보러가기 : 구름 옆에 서서 https://brunch.co.kr/@ddbee/66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그날의 푸른 제주도 https://brunch.co.kr/@ddbee/67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출장과 여행 그 어느 경계에서 https://brunch.co.kr/@ddbe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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