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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Aug 21. 2024

가을이 왔다. 성시경이다.

#23. 좋아하는 유명인에 대하여

아직 31도쯤 되지만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고 느낀다. 파란 하늘에 바람이 불어 가을이 오는 건가 싶으면 늘 성시경의 노래를 꺼내 듣는다. 겨울에 듣는 캐럴처럼 내게 가을은 성시경이다. 


성시경 노래는 성시경만이 부를 수 있다. 쓸쓸하면서 다정한 특유의 음색과 분위기는 성시경에게만 있다. 말하듯 부르는 그의 노래를 쉽게 보고 불렀다가 나자빠진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의 노래에는 불필요한 영어나 억지로 쓴 가사가 없다. 꾹꾹 눌러쓴 편지 같은 노래를 듣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성시경의 경험이라 생각들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성시경은 ‘이윽고’하며 노래를 뱉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중1 때부터 이상형으로 성시경을 꼽았다. 키 크고 지적인 느낌의 외모부터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시경의 음악과 까칠한 사람 그 자체로 모든 게 좋았다. 이런 나의 이상형을 밝히면 반응은 늘 엇갈렸다. 대부분 “왜? 성시경을?” 하고 물어왔다. 특히나 남자애들은 다른 잘생긴 배우나 가수를 들며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애정만세'라는 일반인과의 연애 프로그램에서 그는 '버터왕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남자들의 적이 되었다. 성시경의 매너와 다정다감함이 과하고 느끼하다며 싫어했다. 중간중간 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 배우나 아이돌들을 좋아했지만 돌고 돌아 늘 성시경이었다. 성시경이 활동을 하며 쌓아간 이미지는 ‘남자 친구가 가장 싫어하는 가수’, 애주가, 대식가, 이 시대 최고의 댄스가수 등등이었기에 이상형이라고 밝혔을 때의 반응은 더욱 극명해졌다. 20대가 되어서야 종종 성시경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럴 때면 나조차도 “아니. 왜?”하며 의아하고 반가웠다. 


성시경의 앨범 덕분에 어떻게 노래를 들어야 하는지 내게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데뷔곡인 '내게 오는 길', '처음처럼'을 듣자마자 '사람 목소리가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감탄하며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호기심이 생겨 앨범 전체를 들었고 모든 곡이 좋았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노래 가사를 흘려듣던 내가 성시경 앨범은 CDP를 틀고 가사집을 보며 들었다. 성시경이 얼마나 앨범에 많은 공을 들였고 모든 가사와 노래 순서에 이르기까지 고민하고 넣었는지를 생각하며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목소리에 집중했다가, 후에는 깔리는 반주음만 들어보려 애쓰고, 흩어지듯 뿌려지는 코러스를 잡으려 귀를 쫑긋하고 듣곤 했다. 요즘에도 새롭게 접하는 노래가 마음에 들면 그 가수의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들어보는 편이다. 앨범을 여러 번 들으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머리에 들어오면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도 마음에 남는다. 2008년에 나온 성시경의 '안녕 나의 사랑'이 담긴 앨범을 들으면 대학교 1학년 때 풋풋했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성시경의 앨범 전곡이 거를 필요 없이 술술 넘어가는 노래들로 가득 차있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음악 듣기 습관이다. 


성시경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인간적으로도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똥머리를 틀고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를 듣던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대학교에 와서는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를 즐겨 듣고 팟캐스트에 다시 올라온 그의 라디오를 방청소할 때마다 돌려 들었다. 예전부터 성시경은 건방진 고학력자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내가 만난 성시경은 삼수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수험생 사연만 오면 흥분에 가득 차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친구 같은 패널들과 이야기하다 신이 나 놀리기에 바쁘고, ‘오빠’라는 말에 잘 녹아버리는 철없는 사람이었다. 라디오를 들을수록 연예인 성시경에 대한 동경보다는 '으휴'하면서도 찾게 되는 고학번 오빠에게 드는 맘 같은 게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날이 서서 사회에 대해서 주저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예리한 모습에 반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콘서트도 군 입대 전 성시경의 콘서트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실제로 그의 노래를 드디어 라이브로 듣는데 야외 콘서트라 하늘로 눈을 옮기며 들으니 황홀한 마음이 다 들었다. 같이 울면서 그의 군입대를 배웅하고 돌아오길 기다렸고 다시 잠실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 뛰어갔다. 콘서트에서 성시경은 곡을 시작하기 전에 곡의 의미나 가사, 부르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말해주었다. 부르기 힘들고 감정 잡기도 쉽지 않지만 성시경이 참 애정한다며 불렀던 곡이 있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라는 곡인데 그 이후로도 내 마음에 남아, 들을 때마다 그 콘서트가 떠오른다. 마치 성시경과 나만 세상에 존재하는 듯 집중해서 들었고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행운이다. 


여태도, 앞으로도 내게 성시경만큼 설레고 절절한 마음이 드는 가수가 있을까? 가을이 올 때면 새로운 앨범으로 그가 함께 와주길 늘 기다린다. 그러나 요새 그는 신곡보다는 기가 막힌 국밥집을 소개하며 국밥부 장관이 되었고 친한 유명인들과 맛난 음식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막걸리까지 개발했다. 이러다 영영 성시경의 새로운 노래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닌지, 그의 성대가 혹여나 노래하기 힘들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2019년 이후로 그는 부산에 오지 않고 서울에서만 공연을 하고 있어 피켓팅을 뚫고 공연을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가을에도 지난 앨범들을 꺼내 들어야 할 판이다. 찰랑거리는 소주잔과 볶음밥을 향하던 그의 숟가락을 잠시 내려두고, 열댓 곡 넘게 꽉 차게 들어간 앨범과 함께 '영원한 나의 가을 산타'로 돌아와 주길 기다린다.


https://youtu.be/hmpIPAGluEE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땡비] #23.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

 - 못골 글 보러가기 : 바람의 말 마종기 https://brunch.co.kr/@ddbee/94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https://brunch.co.kr/@ddbee/92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가을이 왔다. 성시경이다. https://brunch.co.kr/@ddbee/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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