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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14. 2021

(YJ)대단한 사람도 만나보면 별 것 없다

하지만 사소한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제가 자라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중략) 똑똑한 사람이 세상을 운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면 그들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매일 이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세상을 운영한다는 사람들은 정말로 당신과 다르지 않아요. 그들이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와 같습니다 - 스티브 잡스 연설 中에서 -


본사에 임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나는 CEO뿐만 아니라 고위 임원들을 가까운 곳에서 자주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단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회의 시간마다 준비해 간 대학노트에 그들의 어록들을 기록했고, 삼개월도 채 되기도 전에 한 권의 어록집이 완성되었다. 그 이후로도 나의 이런 편집증적인 기록 습관은 일 년간 지속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바로 '경영 수업'을 받고 싶어서였다. 영업 현장에서만 잔뼈가 굵었던 나에게 본사 사 근무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고위 임원들이 어떻게 거대한 기업을 경영하는지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천혜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취득한 경영학 박사 학위도 나의 이런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내가 맡고 있는 직책은 본사 영업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러다 보니 모든 부문에서 진행하는 CEO와의 미팅 자리에 옵서버(Observer)로서 참석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현장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많은 업무적 지식과 경영의 노하우를 미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문제점과 과제만 주어지는 미팅이 거듭되고, 반복되면서 나의 경영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은 오히려 실망과 피로감을 증폭시켰다.   


생각보다 기업은 그다지 프로세스적으로 구동되지 않았고, 조직적이지도 않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확한 비전도 사명도 없었다. 고객의 가치와 직원의 안녕보다는 기업의 이익과 주주의 가치가 우선이었다. 때로는 쉽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CEO의 복잡한 생각과 돌발적인 호기심은 의사결정의 더 큰 장벽과 장애물을 만들기도 했다.


가끔 목격되는 CEO의 고집스럽고 변덕스러운 태도는 혼란스러운 그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듯 미팅에 참석하는 모든 임원들의 멘털을 붕괴시키고, 심리적 저항선까지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때는 마치 지옥행 열차를 타는 것처럼 미팅에 참석한 모든 임원들은 빨리 미팅이 끝나기만을 간절하게 기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shall pass away)'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러 대기업의 고위 임원을 역임했고,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한 고위 임원의 경우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지만 실생활은 그와는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실적과 손익 압박에 소신 발언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부하직원들의 성장과 고충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무사안일을 우선 시하는 그런 임원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는 '대단한 사람들도 직접 만나보면 별 것 없구나'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유명한 사람도 직접 만나면 나와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실전을 통해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시건방진 나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다. 하지만 나 또한 본사 임원 생활을 하면서 CEO와 고위 임원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 근원적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CEO와의 술자리였고, 내가 모시는 고위 임원과의 진솔한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가 아닌 순수한 인간적인 모습과 대화를 통해 나는 그들이 가진 엄청난 책임감과 고독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수만 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또는 부문의 수장으로서 일반 직장인들은 절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중압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또한 불확실성과 복잡성, 그리고 변동성이 일상화된 요즘 세상에서 사업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전략을 만들어 실행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예스맨이 많은 임원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군중 속의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분들도 내가 아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힘들어하고, 상심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때론 방향성을 잃고 방황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전설적인 경영인과 달리 너무나 평범하고 인간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CEO나 고위 임원들은 별도의 창문이 있는 조망 좋은 곳에 개인 집무실을 가지고 있고, 비서가 있어 스케줄 관리나 복잡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자기만의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목격한 그들의 직장생활을 이와는 정반대였다.


출근 시간은 제일 빠르다. 일곱 시 전에 항상 제일 먼저 출근을 한다. 일주일 내내 경영 미팅 스케줄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늘 자리에 없는 경우도 많고, 미팅을 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녹초가 되어 있다. 미팅 때문에 점심을 거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미팅이 끝나면 항상 엄청난 넥스트 스텝(Next step)을 가지고 온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업무를 지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미팅이 없으면 찾아오는 유관부문 임원들과 개별 미팅을 한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은 그간 쌓인 엄청난 이메일을 읽고, 처리를 한다. 업무 소통과 지시는 대부분 이메일을 통해서 한다. 이런 살인적 스케줄에도 현장 방문을 위해 휴무일까지 반납해야 한다.


내가 가까이서 본 CEO와 고위 임원들 대부분은 직장인라면 누구가 가는 연차를 거의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작성하고 계획을 하면 업무 일정으로 취소되기가 십상이었고, 짧게 가는 연차도 중도에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의 중요한 경영 정보를 많이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지고, 불필요한 말을 삼가는 성향도 강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통의 리더십은 그들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업무 강도를 볼 때 좀처럼 발휘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들이 가진 외로움과 고독감의 크기가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가장 큰 대가가 아닐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열 길' 또는 '한 길'에서 '길'은 물건의 높이가 길이, 깊이 등을 어림잡는데 쓰이는 단위이다. '한 길'은 보통 사람의 키 정도 되는 길을 의미한다. 물은 아무리 깊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지만 얼마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알아내기 힘들다는 말이다. 


한 기업의 CEO 또는 고위 임원들은 기업 전체의 생사가 갈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역할과 책임이 요구된다. 그만큼 냉철한 판단력과 직관력이 요구되는 자리가 기업의 CEO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CEO와 고위 임원들은 회사 경영에 중요한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는 '고독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근자감이 필요하다!


내가 이 글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직장인의 관점에서 CEO나 고위 임원들도 만나 보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말 못 할 어려움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내심 기대했던 경영수업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난 기업의 사명이나 핵심가치, 비전, 그리고 전략 등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고객, 직원, 그리고 주주와 같은 이해관계자들과 연결해서 지혜롭게 풀어가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기대가 크며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어쩌면 내가 본 것들이 언젠가는 또 다른 자양분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 난 유튜브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학력도 평범하고, 지식과 경험, 노하우도 부족한 그들이 한 가지 분야에 올-인하고, 또한 실행력과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가는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오히려 내가 배운 경영 수업보다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들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소한 문제점과 불편을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스스로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어쩌면 CEO나 고위 임원보다도 그들이 바로 별 것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모두에게 근자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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