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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1. 2021

(YJ)독한 상사의 퇴직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

일 년 동안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숨을 턱턱 막히게 했던 직장 상사가 갑자기 퇴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퇴사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발표와 동시에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원 퇴임 공지와 후임 발령이 이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인트라넷 ID까지 삭제가 되었고, 결재 권한도 없어졌다. 한 때는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그분의 절대 권력은 퇴사와 함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감정이라고 그간 섭섭하고 속상했던 감정보다는 왠지 짠하고 측은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주지 스님이 싫으면 주지 스님이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가. 내 바람대로 주지스님(상사)이 떠나면 내 앞 길에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구관이 명관이고, 똥차가 가면 쓰레기차 온다'라는 속담처럼 후임으로 발령 난 임원은 내가 항상 우려하던 그 임원이었다. '제기랄! 나도 빨리 떠야겠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일주일간 인수인계가 이루어졌고, 마지막 날 독한 상사는 나를 포함한 임원 두 명을 사무실에 불러서 마지막 퇴직 인사를 담담하게 내뱉었다.


말을 하려는 순간, 마스크를 쓴 그의 눈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잠시 동안 적막이 흘렀다. 그러면서 감정이 복받치는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감정적으로 매우 건조하고, 메마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는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곧이어 조용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평소 신경 쓴다고 했는데도 막상 떠나려고 하니 그간 소홀했던 것이 많이 후회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마음이 조급해지더라도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고 챙겨야 합니다. 나갈 때가 되니 좀 더 잘해줄 걸 후회가 됩니다. 남은 여러분은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이런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간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그의 모습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나는 잠시 나도 후배들에게 이기적이고 독한 상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답정너! 이니깐.


나는 이기적인 상사일까? 답정너!


상사들이 떠날 때마다 난 데자뷔(deja vu, 기시감(旣視感))를 항상 느끼곤 한다.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선배들이 떠날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다. "있을 때 정말 잘해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진리를 잘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마 올라갈수록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업무 환경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러니깐 말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는 것 즉, 소중한 것(priority)을 미루는 습관이 항상 있다. 인간관계, 건강관리, 워라벨, 취미생활, 자기 계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직장생활과 가장 밀접한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직장생활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독한 상사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과연 그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알면서도 못 챙겨서 훗날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후회 속에서 끊임없이 후회를 재생산하고 있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인처럼 큰 각성이나 깨달음을 얻지 않은 한 삶은 극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오늘 떠난 상사처럼 오랫동안 의기양양하게 권력을 휘두를 것 같았는데 막상 초라하게 빈 손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은 다시 한번 내게 작은 깨달음을 던져 주었다.


어떤 사람은 회사를 떠나서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트라우마처럼 다시는 인생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훗날 어떻게 퇴임을 할 것인가?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그때의 나는 권고사직이 아니라 자발적 자유 의지(voluntary free will)로 직장을 그만둘 것이다. 박수 칠 때는 아니더라도 축하를 받으면서 직장을 떠날 것이다. 몇 명이라고 속으로 나를 위해 슬퍼해주고, 그리고 퇴직 후에도 가끔 밖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관계를 맺어놓고 떠날 것이다.


이윤과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어떻게 보면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관계 관리이다. 서로가 회사의 필요에 의해서 상사와 부하로 만났기 때문에 상사가 되었을 때 특히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부하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아픈 상흔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에 상처를 낸다면 그건 평생 동안 그의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살아야 하듯이 퇴직을 항상 생각하면서 직장생활을 임해야 한다. 아픈 상처와 고통보다는 좋은 추억과 기억을 남겨도 모자랄 시간인 것이다.


직장 안은 전쟁터지만 직장 밖은 지옥이다


퇴직자들의 퇴직 사유를 보면 매우 다양하다. '비전이 없다', '조직과 문화가 마음에 안 든다', '인간관계가 불편하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등이다.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하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충동적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퇴직자들의 공통된 심리 현상으로는 퇴직을 결심한 후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해도, 아무리 좋은 충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다 알고 있다. 미생의 유명한 대사처럼 "직장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란 것을 말이다.


퇴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퇴직을 후회하거나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일찍 퇴직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들은 퇴사로 인해 그간 소홀하게 여겨졌던 건강, 가족,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재직기간 중 철저하게 퇴사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최근 퇴직 파티를 열어 변화에 대한 도전을 적극 어필하고, 응원을 받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한 경제 주간지가 얼마 전 은퇴자 55세에서 57세까지 은퇴자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은퇴 후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건강, 돈, 일과 생활, 인간관계 순으로 나타났다. 건강분야에서는 의외로 '치아관리'가 1순위였고, 그다음이 '꾸준한 운동', '체중 조절'이었다. 돈 분야에서는 '노후자금 사전 준비'가 독보적이었다. 생활 측면에서는 여행 등 '충분한 여가'를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으며, 퇴직 후 '자격증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마지막으로 일에 얽매여 가족과 친구관계 등 '인간관계'에 소홀했던 것을 가장 많이 후회했다.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자. 유종의 미를 잘 거두자.


최근 웰빙(Well-being)과 더불어 웰다잉(Well-dying)이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즉,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일전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임사체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소 관에도 들어가 보고, 죽은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훈련함으로써 죽음이 다가와도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게 된다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에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말이 있다. 끝을 생각하는 것은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목적지가 있으니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확실한 대명제 앞에서 삶의 여정을 어떻게 충실하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끝을 알고 시작한다는 것은 여정이 그만큼 충실해진다는 의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삼일을 다시 살게 해 준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그 삼일을 보낼까? 답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하루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또 하루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하루는 자신을 위해서 보낸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죽음이 목적에 다가왔다면, 그리고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죽음과 퇴직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표를 써서 양복 윗 안주머니에 넣어 놓고 직장생활을 한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그 끝은 항상 쓸쓸하고 후회라는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난 항상 주어진 일상의 삶에서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끝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끝을 생각하는 삶. 그레 바로 삶과 직장생활에서의 환경 설정인 것이다.


후배 한 명이 술을 한잔 하면서 내게 말을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이 남아 있다. 


"선배님, 저는요 퇴직을 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전국 일주입니다. 전국을 돌면서 나랑 친분이 있는 동료들과 재회해서 정도 나누고, 술도 찐하게 한잔 하는 겁니다. 그게 제 직상생활의 인간관계의 목표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갑자기 퇴직 후 술자리 전국투어를 하고 싶어 졌다. 나는 과연 그 후배처럼 그런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는 있을까? 사실 내 직책과 자리를 감안하면 도저히 자신이 없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항상 끝을 생각하면서 여정 관리를 충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답정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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