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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Sep 08. 2021

(YJ)N잡러의최후

죽음과 노동소득의 공통점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직장생활, 리더십 핵심 역량은 신의성실과 희생정신이었다


예전의 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성공으로 이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또 성공하고 싶어서 나는 매일 새벽같이 출근했고, 상사가 퇴근하기 전까지 퇴근하지 않는 그런 고된 생활을 반복했었다. 직장에서의 삶이 가정에서의 삶보다 더 우선 시 되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또한 팽배했었다.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업무가 주어졌고, 빠른 시간 내에 그 많은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해서 피드백하는 것이 유능함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신의성실과 희생정신은 모든 업무 역량보다 우선 시 되었다. 


내가 부점장으로 근무할 때 신의성실과 희생의  끝판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내가 부점장으로 근무를 할 때 본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 점장으로 부임하신 분을 모신 적이 있었다. 그분은 본사에서 유통업이 아닌 건장 부문에만 근무하시다 내려오셔서 유통업에 대한 기본 지식과 현장 경험은 전무(全無)하신 분이었다. 연세가 많으셨고, 부족한 업무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그 분만의 필살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신의성실과 희생정신이었다. 


일 년 동안 쉬지 않겠다고 부임 인사를 하셨는데 정말 약속을 지키셨다. 게다가 아침 7시 출근, 밤 12시 퇴근을 매일 몸소 실천하셨다. 모든 직원들의 평가 기준은 신의성실과 희생정신이었다. 오전 출근자가 저녁 늦게까지 보이면 칭찬을 하셨고, 아무리 유능해도 퇴근 시간과 휴무일을 지키면 박한 평가를 하셨다. 그러니 부점장들 또한 나리가 났다. 이전엔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었는데 하늘 같은 점장이 매일 출퇴근과 휴무를 체크하고 다니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대기근 시대가 도래했고,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그 분과 같은 사무실을 써야만 했던 나는 가장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상사보다 먼저 출근하고, 상사보다 늦게 퇴근해야 한다고 선배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난 다른 부점장들과 달리 점장님과 완벽한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출, 퇴근을 해야만 했고, 휴무를 완전히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과 함께 한 일 년은 그야말로 低생산성과 高인내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였다. 


점장님은 점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를 찾아서 상의하기 시작했다. 영업 부점장들이 출근해 있는데도 영업에 대한 문제점을 내가 해결해 주길 원하셨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부점장들 또한 모두 내게 와서 고충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점장님 또한 일 년의 기간이 지나니 얼굴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부터 점장님과 술자리를 하자고 아우성치는 부점장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난 점장님께 퇴근 후 술자리를 제안하기 시작했고, 그분 또한 술자리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술 한잔 하러 가는 날이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이 된 것이다. 술자리마다 반복되는 점장님의 무용담 레퍼토리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했다. 왜냐하면 퇴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험난했던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난 그분과 꾸준하게 연락을 하고, 명절에도 선물도 주고받으면서 20여 년 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망각하고, 좋은 기억만 남게 되는, 인간만이 가진 '추억 보정' 현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N잡러라는 낯선 Y직원을 만나다


신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직장생활 태도 덕분에 난 삼십 대 후반에 '유통 생활의 꽃'이라고 하는 점장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몇 백명의 직원들을 책임지는 점포 점장 생활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회사생활에서 보고 배운 게 신의성실과 희생뿐이니 나 또한 내가 모신 상사들의 그늘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 워라벨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점이었는데 그건 세상 밖에서나 통용되던 단어였다. 만약 승진 면접에서 월라벨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회사생활 80퍼센트, 가정생활 20%가 워라벨이라고 대답해야 합격을 할 수 있었던 말도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지방 점포의 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다. 그때 난 영업을 지원하고, 인력 채용과 면접, 교육 등을 주관하는 중간 직책의 Y라는 직원이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Y는 성격도 밝았고, 유모 감각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점포의 각종 행사 때마다 사회자로서 역할도 매우 잘 해내고 있었다. 업무도 잘 처리했고, 인간관계도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가 워라벨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의성실과 희생정신으로 대표되던 그 시절에 Y는 실력에 비해 제대로 된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퇴근 후, 휴일 때 항상 업무 외적인 일로 바쁜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주변 직원들의 얘기를 통해 들으니 Y는 점포에서 핫한 유아동복 브랜드 본사와 연락해 집 주변에 로드샵을 와이프 명의로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수입도 꽤 좋았고, 머지않아 지방 도시에 가장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절박하게 몸과 마음을 회사에 다 쏟아도 인정을 받기 쉽지 않은 유통업의 생태계에서 N잡러를 하는 Y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 타 지역으로 전배를 간 Y는 업무를 마친 후 인근 커피숍에 디저트와 빵을 납품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그런 N잡러의 생활을 그는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 내에서는 돈독이 들었다는 나쁜 평판도 확산되었다. 점포 내에는 많은 입점 업체들이 있어 사실 맘만 먹으로 어떤 형태로든 사업에 대한 인맥과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었기 때문에 겸업은 회사 내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회사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개인적 사익을 취하는 일 등은 윤리경영에도 크게 위반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감사의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Y직원의 이런 N잡러 생활은 지속되었고, 자연스럽게 상사들로부터 눈밖에 나기 시작했다. 


사십 대 후반에 의도치 않게 임원을 달게 되면서 난 OO지역을 총괄하는 본부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운 좋게도 좋은 점장들과 만나 좋은 성과를 만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항상 무한대로 커진 책임감의 무게로 삶이 휘청거리곤 했다. 특히 갑작스러운 권고 퇴직으로 10명 중 네 명의 본부장이 경질되는 사태를 짧은 기간 직접 목도하다 보니 평생 월급쟁이로서의 내 삶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  Y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감사했고, 잘 이끌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간 그의 N잡러로서의 삶을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Y는 담담하게 최근 핫하게 부상하고 있는 스마트팜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퇴사를 결심하기 일 년 전부터 그간 알고 지냈던 인맥을 통해 스마트팜을 소개받았고, 그동안 스마트팜에 대한 현장 실습을 몸소 체험했고, 참신한 아이템까지 발굴했다고 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별도의 비용 투자 없이 스마트팜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꼭 성공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 한편으로 안정적으로 받는 월급을 포기하고 사업에 도전하는 그의 용기가 매우 부럽기도 했다.



N잡러의 최후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Y에게서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직접 재배한 새싹삼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최근 식당과 일식점에 판로를 개척해 그가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한 새싹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4년근 산양삼을 재배하는 업체와 계약해 산양삼주도 출시해서 판로를 확대하고 있었다. 난 새싹삼주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 틈새시장을 더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주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새싹삼주를 인근 주류업체와 제유해 출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샘플도 내게 보내주었다. 그의 추진력과 실행력은 기업가 정신처럼 빨랐다. 이전 직장생활에서 보던 Y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엔 농업 법인을 설립해서 법인 상표 등록까지 마쳤고, 그 당시 세간에 화제를 모으던 새싹보리와 귀리 새싹을 재배한다고 했다. 지역 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부호와 제휴를 해서 함께 영농법인을 설립하게 되었고, 그가 소유하던 토지 위에 스마트팜의 규모를 확대했고, 심지어 분말을 제조하는 제조업체 설립과 친환경 GAP인증까지 획득했다고 했다. 그의 사업 수완은 남달랐고, 그의 절박한 사업가 정신과 적극적인 실행력이 결합해 결국 그는 대기업 브랜드의 대형할인점과 홈쇼핑까지 상품 판매 경로를 확대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꾼>이라는 TV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직장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의 변신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난 직장인과 사업가로서의 자질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가 예전처럼 N잡러로서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그는 경제적으로는 다소 윤택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지금도 우물 속에 갇혀있는 개구리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자기 삶의 주도권과 생사 이탈권을 회사가 아닌 자신이 거머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Y직원의 삶을 목도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는다. 근로소득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내게 그의 주도적인 삶의 여정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내게 한줄기 등대의 빛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죽음과 근로소득의 공통점은 끝이 있다는 것이고, 그 끝이 오기 전에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한층 더 깨닫게 되었다. 근로소득만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살아온 직장인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퇴직을 하게 될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끊어진 현금 흐름이고, 내동댕이 쳐진 자존감일 것이다. 


노동소득의 종말


조만간 나도 직장생활을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퇴직 통보에 삼십 년간의 직장생활은 겨우 1~2개 종이박스의 무게로 가늠될 것이다. 월급쟁이의 가장 큰 착각은 월급이 계속해서 나올 것 같은 착각,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명함이 자신 것인 줄 아는 착각, 회사에서 만든 인맥과 인간관계가 퇴직 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퇴직과 동시에 이 모든 착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지만 회환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사업과 달리 직장이라는 생태계에서만 활용 가능한 분절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나오면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그런 지식과 경험을 말한다. 또한 직장생활은 끝이 있는 게임이고, 끝난 후에는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완전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럽지만 나도 이러한 현실을 빨리 깨닫고 Y처럼 N 잡러의 생활을 준비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물론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노동소득이 매우 유리할 수 있다. 시드머니를 만들기 전까지는 원금을 손해보지 않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경제적 지식도 없이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빛투를 하는 사회초년생들이 많은데 매우 위험하다. 종잣돈을 만드는 기간에는 최대한 욕망 소비를 하지 말고, 줄이고 아껴서 투자 공부를 해야 한다. 부동산도 좋고 주식 공부도 좋다.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책도 읽고, 모임도 나가고, 현장 경험도 쌓아야 한다. 


욕망을 소비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지만 욕망을 생산하는 사람은 부자로 산다는 말이 있다. 노동소득의 끝나면 자연스럽게 투자소득과 사업소득으로 이어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연금소득으로 노후를 풍요롭게 보내야 한다. 사실 나도 모은 자산이 별로 없지만 대부분의 자산 소득은 급여 소득보다는 투자를 통해 대부분 만들어졌다.  



직장인의 최종적인 목적은 불로소득을 달성하는 것이다


소득의 최종 목적은 불로소득을 달성하는 것이다. 투자소득이든 사업소득이면 돈이 돈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진정한 불로소득자가 되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돈이 있어야 노후의 삶이 행복해진다. 그래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베풀면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퇴직 전부터 N잡러가 되어야 한다. N잡러를 통해 종잣돈을 최대한 빨리 모아야 스노볼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잣돈이 만들어지는 기간에도 투자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근로소득이 투자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득의 파이프라인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소득에 투자소득이 더해지면 더 많은 스노볼 효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인생은 독고 다이고, 각자도생이다. 이제부터 Y직원처럼 N잡러가 되어야 하고, 그처럼 행복한 N잡러의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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