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가을 한파에도 바닷가 뷰맛집 카페에는 사람의 발길과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도 오랜만에 바다도 보고, 커피도 마실 겸 인터넷 댓글을 검색해서 이곳 카페를 찾아왔다. 집에 있으면 애꿎은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거나, 심리적 허기를 달래려고 군것질만 하기 일쑨데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뷰맛집 카페를 찾아 오니 나름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과 크림 치즈롤 한 개를 주문한 후 우리 부부는 3층 야외 테라스 쪽 시뷰가 아주 멋진 곳에 놓여있는 하늘색 빈백에 둥지를 틀었다. 갑작스러운 가을 한파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고, 따가운 가을 햇살은 한파를 녹일 정도로 따뜻했다. 추운 날씨에도 끝없이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서퍼들로 가득했다. 하늘색 빈백에 편히 누워 아름다운 시뷰를 맘껏 누리다 보니 그 순간만은 정말 세상 남부럽지 않았다.
*beanbag : 작은 충전재를 채워 넣어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푹신한 의자
가을 한파로 나갈까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이곳에 오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난 파라솔 아래 파란색 빈백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기막힌 풍광에 감탄하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운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인과 부부, 가족들이 모두 저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빈백에 누워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뷰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SNS에 올릴 사진들을 찍느라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의 찰칵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참 잘 나왔다. 오랜만에 내게 과분한 시간이 주어지네~~'
감성이 무뎌진 나조차도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오십대 부부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시간을 꽉 채우고 나니 빨리 집에 돌아가고픈 생각으로 아쉬움없이 자리를 박차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시간이 되어가니 오전의 즐거웠던 추억도 기억의 뒷편으로 사라지고 어느덧 내일 출근할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언제쯤 이런 쳇바퀴 같은 삶과 우울한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처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월요일 출근할 생각에 갑자기 우울해 지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는 월요병을 경험한다.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의 엔진이 식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생각의 늪을 빠져나오려고 더욱 안간힘을 써보지만 개미 지옥처럼 더 빠져들기만 한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술 한잔 먹고 푹 자는 게 상책인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자정 12시를 넘어가고 있다. TV를 보며 졸린 눈으로 막상 잠을 청하지만 정신은 더 또렷해지진다. 제기랄! 오늘도 자기는 글렀다. 다시 눈을 떠서 TV 리모컨을 켜고 채널을 돌리니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보긴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느새 영화에 빠져 보다 보니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빨리 자자! 다시 잠을 청하지만 결국 몸만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깐 선잠이 든다. 잠시 후 새벽을 깨우는 요란한 알람 소리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 월요일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우울증'과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되는 배고픔과 결핍감에 심리적 허기는 더욱 커져만 간다. 이때 동반되는 증세가 바로 불안장애, 수면장애,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외로움 등이다.
생각이 모든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전화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여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순간 우리는 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며 자연스럽게 몰입(flow)의 상태로 들어간다.
몰입을 하게 될 경우 '현재의 일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등이 그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병 아니 일요병 증세와 맞닥뜨리면 그것을 잠시라도 잊게 할만한 것들을 찾아서 몰입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제일 만만한 게 TV를 보는 것이다. 다큐든 영화든 몰입하면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요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평소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통찰력을 주는 책이 한 권 있다. 《생각을 걸러내면 행복만 남는다》의 저자이자 미국의 명상 전문가 노아 엘크리프는 '삶의 모든 상황이나 사건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은 사실 상황이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관한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이고 곧 월요일이라는 상황이나 사건이 일요병이나 월요병이라는 우울한 감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우울한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사실 상황이나 사건은 가치 중립적이고 팩트(fact)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상황이 감정을 만든다면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같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감정의 모든 원인은 바로 개인의 생각인 것이다. 만약 생각이 틀렸다면 감정 또한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 내용의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상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자신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불치병에 걸렸어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분노와 슬품의 감정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런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나 상황보다는 그것에 대한 자신의 왜곡된 생각이 그런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한 상황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완벽한 상황이 아니라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외모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늘 자신에 대해 결핍, 분노, 슬픔, 좌절 등의 불만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진실은 자신의 외모가 아닌 자신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잘못되었고, 쓸데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애초부터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그런 잘못된 생각을 걸러낸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만이 남을 것이다. 타인의 행동, 말, 상황,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잘못되었다고 꼬리표를 붙이는 생각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동안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더 이상 무의미해질 것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온전하게 현재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현재에 몰입하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밤하늘의 별, 바닷가의 파도소리, 산책길에 핀 들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탄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걸으면서도 이런 단순한 감탄을 못 느끼는 이유는 바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만드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믿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며, 가치 있고 사랑스러우며 삶에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충만감을 느끼는 것이다. 충분치 않다는 생각을 멈출 때 비로소 현재 상황에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진실인지, 사실인지라는 질문만 하면 된다. 삶이 왜 나만 불행을 줄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된다. 불안감을 일으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 곧바로 만족감이 생긴다.
행복해지기 위해 상황을 바꿀 필요가 없게 된다. 타인이나 사건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저 생각을 믿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온전히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삶의 고통은 이런 생각을 믿지 않을 때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여러분은 자유다. 누구도 당신을 흔들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괴로울 때는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사라지면 내 맘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인식만 남는다. 감정을 만드는 생각을 믿지 않으면 감정 또한 곧바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화만이 남고, 오롯이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현재의 평화를 경험하는 5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원치 않는 감정을 찾는 것이다. 내가 멈추고 싶은 감정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원치 않은 감정 뒤에 숨은 생각을 찾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감정은 상황이 아닌, 생각이 만들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생각이 사실인지 아니니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으면 감정은 사라진다. 다섯 번째 단계는 계속 고통을 겪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일요병이든 월요병이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지는 것은 어쩌면 그것에 대한 나의 그롯된 생각에서 우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으면 그냥 현재의 상황만이 남게 되고, 일상의 평온함이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평소 루틴(책읽기, 명상, 글쓰기 등)을 만들어서 실행력을 높이면 된다. 그냥 그렇게 하다 보면 잡념과 망상이 사라지고, 그냥 평온한 일상처럼 잠들 수 있게 된다.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상황은 가치중립적이고, 그것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이 나의 감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