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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시간에 맞게 흐른다고?

#세대 차이 #결핍 #갈증 #깨달음 #성장통 #MZ세대

by 미스틱

우리들 세대는 뭔가를 이루고 극복하면서 살아온 세대이지만 자녀들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모자람 없이 가진 것을 온전히 향유하면서 사는 세대라고 한다. 3040 시대에 태어난 부모님 세대와 6070 시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완전히 다르듯이 우리 세대 또한 밀레니얼 전후로 태어난 자녀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나 가치관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 세대는 가난하고 힘든 유년 시절을 겪었지만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있었다.


대학생이 된 두 자녀들이 방학 때 하라는 알바도 하지 않고, 도대체 뭘 하는지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있다가 다음날 늦잠을 잔 후 오후쯤 일어나 씻지도 않고 엄마가 차려 준 아점을 먹는 걸 보면서 난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인내심의 한계는 곧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대학시절에 얼마나 준비하고 챙겨야 할 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죽이기만 하는 것이 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결정짓는 대학교 학부 시절, 전공 학점은 물론 영어 토익 점수, 동아리 활동,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과 대외 활동, 진로와 연관된 분야에서의 인턴쉽 지원, 공모전 참여 및 수상 경력 등 본인의 스펙 관리를 해도 부족할 시간인데 백수처럼 시간과 식량만 축내면서 허송세월만 보내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내와도 이런 나의 답답함을 상의했지만 아내는 지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자라는 말로 나를 오히려 설득했다.


취업 준비라도 하지 않으면 알바라도 시키자는 나의 말에 아내는 "자기도 대학생 때 알바도 안 했으면서 우리 애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오히려 내게 정색을 했다. 아내도 내가 자녀들에게 알바를 시키자는 의도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보상받고, 사회생활을 미리 접하면서 조직의 생리나 인간관계의 만상을 일찍 깨닫게 해주고 싶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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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난 대학생 때 알바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그때 집에 젖소를 몇 마리 키웠는데 내가 매일 아침 엄마와 함께 소젖을 짜야만 했고, 배달차가 오기 전에 우유가 가득 찬 우유 배달통 2개를 리어카에 싫어서 옮겨야만 했다. 무엇보다 평일 또는 주말에는 젖소가 먹을 소꼴을 베러 엄마와 밭경작지나 목초지를 이리저리 찾으러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하루 반나절 동안 허리를 숙여 낫으로 벤 풀들이 두 대의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쌓여야만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간혹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을 만나면 늘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곤 했다. 심지어 수험생이던 고삼 시절에도 난 고생하시는 엄마와 함께 자주 소꼴을 베러 가야만 했다. 배운 것 없이 고생만 하며 살아오신 엄마를 위해 초라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난 어릴 때부터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특히 내가 커서 결혼하게 되면 내 자녀들은 나와 같은 가난을 절대 경험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핍과 포기가 일상화되고, 당장의 생계 때문에 시야가 좁혀지고 고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난은 가난을 낳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의 불의(?)를 보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결국 그들을 불러서 꼰대 마인드로 훈육을 하게 되었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얘기를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그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는 없었다. 뭔가를 극복하면서 산 세대와 뭔가를 누리면서 산 세대와의 차이는 더욱 커졌다.


훗날 국내 유명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을 둔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그 집 자녀들도 방학 때는 우리 집 자녀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냥 저들 하고 싶은 대로 놔둔다고 했다. 지가 필요하고, 답답하면 변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남자 애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 어떻게든 변한다고도 말했다. 결론은 지들만의 삶의 속도와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부모들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나거나 또는 유튜브를 통해서 본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스마트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통찰력이 있고, 실행력도 강해 보였다. 그들은 인생과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있었고, 현재의 결핍을 성장의 메커니즘으로 승화시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가 더 답답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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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한 이후 난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당장은 괜찮지만 조만간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안일한 생활을 하기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자녀들도 이런 현실을 빨리 깨닫고 뭔가를 해야 될 시점인데 나만 제외하고 여전히 다른 가족들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고생을 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을 좀 더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작은 변화를 만들길 바랐다.


큰 애는 지금 군대에 있고, 작은 애는 조만간 대학교 3학년생이 된다. 어떻게 보면 부모와 함께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만이 꼭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극적인 삶의 변화의 모멘텀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의 시작은 '결핍'과 '갈증'에 대한 깨달음일 것이다. 공부를 못하던 수험생이 어느 날 자신의 못난 처지를 비관하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S대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에 맞게 살고 있으며, 깨달음과 각성이라는 '결핍'과 '갈증'을 통해 행동하기에 적합한 시기를 기다라고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내 자녀들의 시간은 그들의 시간대에 맞게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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