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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무서워도 마음은 따뜻해요

#호랑이 선생님 #상사 #팔로우십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

by 미스틱

http://blog.naver.com/bom131123/221184345354

(김도향 작곡, 호순이들 노래)


얼굴은 무서워도 마음은 따뜻해요
언제나 우리들은 선생님이 좋아요
화를 내면 사나운 호랑이 같지만
정의에 앞장서는 용감한 호랑이
우리들의 선생님 호랑이 선생님
이 세상에 제일 멋진 호랑이 선생님


내가 어릴 때, MBC에서 방영한 '호랑이 선생님'이란 TV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81년부터 87년까지 무료 7년 동안 MBC 인기 드라마였던 '호랑이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 드라마이자 청소년 드라마기도 했다. 호랑이 선생님인 허봉수 교사 역에는 <수사반장>이라는 드라마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배우 故조경환 님이 맡으셨는데 헬스와 유도로 다듬어진 우람한 풍재와 굵은 목소리톤은 그 역할과도 딱 어울렸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호랑이 선생님과 그가 맡은 5학년 5반 어린이 주인공들이 함께 겪는 좌충우돌 성장기를 현실감 있게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청소년 드라마도 변변한 게 없었던 시절이라 중고등학생들도 이 프로그램을 즐겨봤다는 웃픈 얘기도 있다.


분필과 지우개가 날아다니고, 뾰족하게 깎아 페인트칠 한 지시봉과 검은색 출석부가 체벌 도구로 난무하던 시절! 교권은 하늘을 찌르고, 학생들의 인권은 철저히 유린되었던 그때 그 시절! 학교마다 '호랑이 선생님'들이 계셨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 화장실 간다는 소리를 못해 오줌을 지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서로 부대끼며 생활했다. 먹고살기가 힘들었고, 물질적으로 가진 것도 없었을뿐더러 지금처럼 사교육은 꿈도 못 꾸었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과 놀 것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호랑이 선생님'을 보면서 감정 이입도 했고, 꿈과 희망도 키웠더랬다. 특히 조경환 님은 엄격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상하고,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우는 '호랑이 선생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면서 그 당시 모든 어린이들의 '호랑이 선생님'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자상하고 배려 깊은 '천사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천사 선생님'보다는 '호랑이 선생님'이 왜 더 인기가 좋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일까? 그건 우리들 기억에 남아있는 호랑이 선생님은 단지 엄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게 만드는 엄격함과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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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또한 마찬가지다. 조직의 특성상 프로젝트전략 수립 등과 같이 '단기간 고성과'를 만드는 업무를 진행할 때 상사는 조직 구성원들이 업무적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게 업무를 관장해야만 한다. 한 마디로 '호랑이 상사'가 되어야 한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으로 자칫 조직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사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상사 업무도 부하 직원들에게 이양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업무의 방향성을 찾으려고 애쓰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은 '성장통'을 겪게 되고, 실질적으로 성장도 하게 된다. 굵고 선명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임계치를 넘나드는 강도 높은 근육 펌핑을 통해 근육이 찢어졌다 재생했다는 반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도전과 시련만큼 조직의 구성원들을 담금질하고, 성장시키는 좋은 도구는 없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주는 것은 오히려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그들로 하여금 번아웃 상태에 이르도록 만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고 성과를 향상시킴으로써 '최적의 성과 지대(optimal performance zone)'를 만들기도 한다.




현역 시절 난 인사와 교육업무를 병행한 적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진행된 중간관리자 교육을 직접 주관하면서 난 그들의 '인생 멘토'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선정했는지를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내심 나도 그들의 인생 멘토로 선정되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가혹했다 ^^;


인생 멘토로 선정된 상사들은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천사 상사'들이 아니라 어느 정도 카리스마도 있고, 업무적으로 엄격하고 까다로운 워커홀릭(workaholic) 유형의 '호랑이 상사'들이 많았다. 업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는 게 공통된 선정 이유였다.


난 솔직하게 그들의 피지배적인 사고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자상하고 배려 깊은 '천사 상사'들 밑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을 하면서 성과도 만들고, 인정까지 받으면 금상첨화인데 왜 굳이 힘든 '호랑이 상사'밑에서 욕먹고, 야단맞으면서 일을 하는 게 그들은 좋았던 것일까?


하지만 훗날 난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확실한 직장생활의 여정에서 착하고 우유부단한 상사보다는 도전과 시련을 주지만 해야 할 일들을 반드시 하게 하고, 그들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냄으로써 성장하도록 돕는 엄격한 상사들이 장기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책임을 회피하고,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들이 적지 않았던 점도 그들의 멘토 선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회사처럼 명령과 복종,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의한 질서가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조직은 드물다. 만약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있다면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고, 나가게 하는 것은 피지배자들(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기 즉, 팔로어십일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해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수동적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업무의 방향을 수립하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면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말투로 나를 따르라고 할 때 팔로어십이 크게 발현되는 것이다.


최근 직장인들이 뽑은 좋은 상사 유형을 살펴보면 '부하 직원들에게 일을 미루지 않는 솔선수범형 상사', '공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상사', '방향을 제시하는 상사', '공을 가로채지 않는 상사', '서로 성장하는 교학상장형(敎學相長) 상사'가 상위 순위로 뽑혔다. 반면 나쁜 상사 유형으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상사', '감정 기복이 심한 상사', '권위적인 상사', '공사 구분 못하는 상사', '인격 모독을 서슴지 않는 상사'가 뽑혔다


엄격한 '호랑이 상사'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인지도 모르겠다. 급변하는 기술의 속도와 달리 조직관리와 리더십의 영역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인 기록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애들이 어른 말을 듣지 않고 속 섞이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인간관계적인 측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사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자기가 닮고 싶어 하는 상사의 모습을 무작정 따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카리스마 있는 상사를 따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타고난 성격과 성향에 맞는 '리더십의 옷'을 입어야 어색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과 잘 맞는 상사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리더십이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업무적 성과도 만들고, 구성원들의 성장도 함께 도모할 수 있는가이다.


업무의 성과를 높이고 싶다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도록 하면 된다. 혹독한 과정보다는 충실한 과정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서툴고 힘들었던 새내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서툴고 힘들어할 때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성장시킨 상사들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사가 내 성격과 성향에 맞으면 그 사람의 리더십의 옷을 걸치면 된다. 그게 바로 맞춤식 리더십의 옷인 것이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 티베트 격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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