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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23. 2021

행복한 겨울 나들이

#나들이 #행복 #갓바위 #관봉 #기도 #엄마 #보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날 아침, 난 엄마를 모시고 단둘이 절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팔공산 갓바위. 오랜만에 이뤄진 둘만의 동행이었다. 겨울이불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날씨가 우리 모자를 반겨주었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면 나들이 가기 며칠 전부터 난 기온이 따뜻한 날을 미리 확인하고, 가장 기온이 높았던 동짓날을 일부러 점찍었던 터였다. 행여 83세의 노모가 추운 날씨로 산행이 힘들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위해 갓바위까지 최단거리인 '관음 휴게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막내아들과 단둘이 차를 타고 휴게소로 이동하는 동안 노모는 90세 아버지를 돌보는 고충과 어려움을 쉴 새 없이 내게 토로하셨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권위를 가지신, 그리고 625 전쟁을 직접 참여하신 아버지와 함께 장장 60년을 부부로 함께 살아온 것은 어찌 보면 당신에겐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마치 국민학교 소풍에 들뜬 아이처럼 엄마는 막내아들인 나와 그간 말 못했던 이런저런 일상의 얘기를 나눴다. 가끔은 엄마의 얘기에 맞장구도 쳐주면서 들뜬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결혼해서 분가하기 전까지는 막내아들인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만큼 엄마와 나는 네 명의 자식 중에서 가장 친밀하고,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둘만의 여정이 즐거우신 것 같았다. 


어릴 때 난 엄마가 싫었던 적이 많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네 남매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엄마는 억척같이 일을 해야만 했다. 소, 개, 토끼 등 짐승이면 가리지 않고 키웠고, 그 때문에 난 고삼 수험생 시절에도 엄마와 함께 소꼴을 베러 나가야만 했다. '아무리 못 배워도 그렇지. 어떻게 고삼 아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을까' 그 때 당시 난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그런 억척스러움은 생존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난 엄마의 삶을 여자의 삶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엄마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정신없이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드디어 목적지인 관음 휴게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도우신 건지 눈부신 햇살과 포근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출발하기 전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부처님을 뵐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전날 밤잠도 설치셨다고 하니 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70대 후반까지는 자주 가시던 절을 최근 몇 년간 못 가셨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거동이 불편해 갓바위로 이르는 계단도 제대로 올라가시지 못해 많이 속상하셨다고 한다. 문득 엄마를 보니 엄마는 이미 굽은 등,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살이 가득한 80대 상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기만 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내게 더 걷기 힘들기 전에 꼭 한번 절에 더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엄마의 그런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난 연고지를 떠나 10년 이상 떠돌이 직장생활을 했던 터라 좀처럼 엄마의 요청에도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다. 사실 맘만 먹으면 뭔들 못했겠는가. 다만 그 당시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고, 무신론자 입장에서 굳이 절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난 정말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겨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 엄마의 러브콜에 제대로 화답하지 못한 것이 내심 미안했다. 생각이 나자마자 난 주간 날씨를 확인하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길들여진 '즉각 실행'의 습관이 여전히 몸에 배인 탓이다. 엄마는 "야야 고맙다. 오기 전에 전화하면 내가 정류장으로 나갈께."라며 수화기 너머로 들뜬 엄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엄마의 오랜 숙원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무료 셔틀을 운행한다'는 간판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양초나 향초와 같은 공양물을 인당 한 개 이상은 구매해야 한다는 황당한 조건이 붙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엄마는 공양물 구매는 직접 해야 한다며 내가 계산할 시간도 안 주고 쌈짓돈으로 양초 네 개를 이미 구매하셨다. 


갓바위로 오르는 계단


승합차에 올라 타 삼사분을 달리니 이내 갓바위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갓바위까지는 0.9km 정도 되는 거리지만 계단이 가파르고 경사가 높아 노인이 올라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갓바위를 향해 오르는 길은 계속해서 오르막 길과 계단이 중첩되어 이어졌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삼사분 정도 오르다 잠시 쉬고, 다시 올라가는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성격도 급하고, 욕심도 많아 한번도 안쉬고 올라갔을 텐데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짠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힘들지 않나"라고 반복해서 묻는 말에 엄마는 "부처님을 향해 오르는 계단도 다 수행의 일환이다. 전혀 힘들지 않다."라고 연신 화답을 해주셨다. 아마 오랜만에 부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불심이 맘 속에 충만하신 게 분명했다. 계단에는 눈이 아직 덜 녹아서 물기가 흥건했다. 혹시 미끄러지실까 옆에서 한 팔을 부축해서 한 계단씩 올라갔다. 


힘든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면서도 "야야 오늘 내가 절에 오게 된 것도 다 부처님의 공덕 때문이데이."라고 계속 말씀을 하셨다. "뭐라고 하니. 막내아들 때문에 왔는데 부처님 공덕이라니. 자꾸 그라믄 담부터 안 델꼬 온데이."라고 아무리 협박해도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누구 덕택이면 어떤가. 엄마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가다 보니 어느새 약수터에 도착을 했다. 절에 오면 꼭 마셔줘야 하는 게 바로 약수 아닌가. 난 엄마에게 먼저 한 바가지를 떠 드렸더니 시원하게 한 사발 원샷으로 드셨다. 그렇게 서다 가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우리 모자는 갓바위 정상인 관봉에 도착하게 되었다. 해발 815m 꼭대기에 위치한 관봉에 올라서니 팔공산 능선과 구불구불한 길이 겹겹이 펼쳐졌다. 눈앞의 시야가 확 트였다. 


관봉에서 내려다본 전경



흔히 알려진 갓바위의 '갓'은 원래 돌을 8각형으로 가공하고, 보상화 무늬로 새긴 다음 흠을 내서 부처의 머리에 올린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되고, 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등의 훼손으로 현재는 불규칙한 '갓'의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갓바위는 정성껏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 한 가지씩은 들어준다는 '기복신앙지'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수능일 전후에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기도객으로 정상부 100평은 발 디딜 팀조차도 없을 정도이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사온 양초를 피워서 양초 공양함에 넣었고, 엄마는 집에서 정성스럽게 가져온 쌀을 부처님 전에 올렸다. 그리곤 마음이 급하신지 절을 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굽은 허리를 곧게 펴고 정성스럽게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난 잠시 갓바위 정상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갓바위에서 108배를 드리다


시간이 흘러 108배가 끝난 엄마는 다시 공양물을 파는 가판대로 이동해서 갑자기 형형색색이 복주머니를 고르기 시작했다. 네 개를 고르신 후 내가 돈을 낼 시간적 틈도 안 주고, 기어이 쌈짓돈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계산을 마치셨다. 알고 보니 부적이 든 복주머니였다. 한 개는 퇴직한 나를 위해서, 나머지 세 개는 올해 용띠해 손주들의 삼재를 막기 위해 구매를 하신 것이다. 


아직도 난 부적을 구매하는 엄마의 맘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아마 부적은 가난했던 삶을 살아왔던, 오직 자신만을 바라봤던 엄마로서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부적을 구매한 후 엄마의 표정은 한결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거동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단 말인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생 동안 자식만을 위해서 살아오신 엄마의 억척스럽고 고된 인생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가판대 아줌마는 부적을 분주하게 고르고, 쌈짓돈을 꺼내는 80대 노모가 측은했는지 사탕 봉지 세 묶음과 팥떡, 그리고 생수 한통을 답례품으로 주었다. 난 바랑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엄마는 바로 내려가지 않고 석축 단 아래 대웅전으로 가서 5층 석탑에서 다시 탑돌이 의식을 진행했다. 세 번을 돌면 된다고 해서 함께 돌았다. 엄마는 또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듯 보였다. 



갓바위를 내려오는 길은 예상외로 수월했다. 힘들게 올라오는 것과 달리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려오셨다. 중간에 우리는 잠시 계단 옆 나무 벤치에 앉아서 바랑을 풀어 얻어왔던 팥떡을 손으로 찢어서 나눠먹었다. 배가 고픈 탓에 목은 메었지만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배도 어느 정도 채워져 내려오는 길은 한결 순조로웠다. 


주차장까지 단숨에 내려와 차에 오른 엄마는 갑자기 "오늘 네 덕분에 잘 다녀온 것 같다. 얘야 고맙다."라는 말로 이전의 나의 섭섭한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정초가 되면 너와 함께 이곳에 꼭 다시 오자꾸나."라며 이어지는 말씀에 난 적잖게 당황했다. 아마 내 비위를 맞춰서라도 다시 갓바위에 와야겠다는 엄마 나름의 고도화된 답변이셨던 것 같다. ^^; 뭐 아무려면 어떤가. 엄마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난 이제부터 엄마의 머슴이 되어도 좋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아버지 빼고 우리끼리 맛있는 것 먹자." "뭐 드시고 싶은데?"라고 물으니 "칼국수 어떤노?"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아마 국물도 있고 속이 시원한 음식이 드시고 싶었던 것 같다. 차를 타고 계속 찾아봐도 삼계탕이나 오리 불고기와 같은 토속 음식점만 눈에 띌 뿐 칼국수 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쉽게도 우린 작당모의는 무산되었다. 사실은 엄마를 애타게 기다릴 구순의 아버지가 눈에 아른거렸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집에 모셔다 드린 후 바로 가려던 나를 막고 엄마는 잠시만 들어와서 닭곰탕 한 그릇 먹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잠에 취해서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는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워 기어이 닭곰탕을 차려 주셨다. 근데 왜 이렇게 쓴 것일까? 엄마 말을 들어보니 아무 약초나 넣다 보니 그랬다는 거다. 양약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까진 쓰지 않는데. 난 살기 위해서 꼭 참고 먹었다. 하지만 닭곰탕과 함께 먹었던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 그리고 식사 후에 먹었던 단술(감주)과 곶감은 닭곰탕의 쓴 맛을 잠재우기엔 그만이었다. 


오늘 길에도 역시 엄마는 직접 만든 단술, 곶감을 비롯해 이것저것 한 보따리 음식을 싸 주셨다. 여태까지 경험으로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보따리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야야 요즘처럼 좋은 시절 없데이. 아버지도 이제 말 잘 듣고, 난 요즘 정말 살만하데이."라는 엄마의 말과 모습이 눈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60년간 성격도, 궁합도 맞지 않는 아버지라는 '적과의 동침'이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또한 아버지 부재 시 엄마 홀로 단칸 셋방살이를 하면서 2남 2녀 자식들을 어떻게든 먹여 살리느라 젊은 청춘을 모두 보내셨지만, 이제 자식들도 모두 성장해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야 말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퇴직을 한 후 나도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와 말이다. 부처님을 만나러 갔다 오면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가벼울 수 없다는 엄마의 말씀이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내년에도 꼭 엄마를 모시고 행복한 겨울 나들이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래야 나도 어느 정도 엄마에게 보은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카메라에 담은 엄마와 나의 나들이 모습을 다시 한번 보며 나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엄마,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세 사세요.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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