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얼마만큼 돈을 모아야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까?
그런데 가끔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자연인들이 전국의 야생산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이 들기도 하고, TV작가들은 어떻게 그런 자연인들을 발굴하고, 찾아가 방송 섭외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본격 야생 리얼리티 체험 삼시세끼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왜 그렇게 중년 남성의 허한 마음을 자극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의 나오는 자연인의 대부분은 중장년 남성들이다. 가끔 여성들도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에 나오긴 하는데 아주 드물고, 희귀한 회차로 기억된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들에 만든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하면서 산다.
물은 항상 일급수이고, 재배하거나 채취하는 모든 작물들은 자연산이고, 유기농이다. 그들 대부분은 산의 계곡물 근처에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씻고, 청결 관리를 한다. 항상 주는 것에 만족해하고, 먹을 만큼만 채취하고, 맑은 공기와 사는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하고 산다. 정해진 스토리는 없지만 매번 이런 진부한 시나리오에도 왜??? 많은 중년 남성들이 재방, 삼방도 모라자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계속 시청하는 것일까?
하지만 기술개발과 뉴테크의 보급으로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기존 업무들 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면서 업무 간 통폐합과 융합이 확산되면서 이전과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를 요구하는 복잡도 높은 업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정된 두뇌 용량과 체력에 비해 과도한 에너지가 소요되는 업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장기화에서 오는 답답함, 인관관계의 피로도, 건강 문제, 상위 수준의 업무 요구, 직장생활에 대한 불안감, 미래의 불확실성, 금전적 부담감 등이 주는 스트레스들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복잡계의 모든 것을 벗어나 청정 대자연의 품 속에서 벌어지는 자연인들의 심플하고 미니멀한 삶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큰 공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 속에서 자기만의 터전과 왕국을 건설해 안빈낙도하는 삶은 부럽기까지 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쁘게 열심히 일해 겨울 먹거리와 땔감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혹한기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 농번기와 농한기를 구분하면서 일과 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할 수도 있다.
특히 겨울을 나는 자연인들의 여유로움과 느긋함 또한 부럽다. 혹한의 겨울을 잘 견뎌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을 수 있듯이 자연인들 또한 혹한의 겨울 동안 몸속의 에너지와 영양분을 재충전시킨다. 겨울을 움츠리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도록 가르쳐 준다.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가장의 책임과 역할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자살자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심지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까지 살고 있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삶의 모순에 빠지고, 혼란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돈 없이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연인들은 자신만의 왕국에서 먹을 채소, 산야초, 버섯도 재배하고, 닭을 키워 필요한 계란과 고기를 얻고, 심지어 돈 되는 도라지, 더덕, 산양삼을 재배하고, 양봉까지 함으로써 소득도 창출한다. '자급자족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땔감으로 혹한의 겨울을 나니 별도의 난방비용도 필요치 않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마다 운동 삼아 오르는 산은 사계절 내내 자연산 약초를 무한 제공한다. 《산야초 동의보감》이란 책을 보면 산짐승들이 뜯어먹는 모든 풀들은 산야초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산야초들이 산의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가끔 산야초에 정통한 자연인이 나오면 볼거리가 풍부해진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먹고, 아는 만큼 살 수 있는 게 세상이란 말이 틀리진 않는 것 같다.
평소 우리가 잘 접하지 못하는 야생 멧돼지나 고라니, 그리고 계곡 민물에 사는 물고기와 미꾸라지까지 요리 재료로 쓰면서 건강을 챙기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먹방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들 대부분의 대체의학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해 보인다. 아마 현대 의학 치료로는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서 온 분들도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의학이 존재하는 한 산야초에 대한 약효의 믿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삼시세끼>처럼 먹방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 그날 채취하는 재료로 만드는 유기농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자연인 자신만의 레시피로 만드는 음식은 "늘 부럽다"는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더욱 호기심을 자아낸다. 재료가 없어서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가진 재료만으로 뚝딱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에게 배우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산야초를 발견해도 욕심을 내지 않고, 당일 먹을 것만 채취한다. 그리고 뿌리 채 가져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다시 재취할 수 있도록 한 뿌리를 남겨두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재취 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늘 불안해서 쌓아두고 쟁여두는 우리의 삶을 잠시 돌아보게 한다.
그들에게 배우는 또 하나는 바로 그들이 가지는 산야초에 대한 믿음 즉 플라세보 효과이다. 상당수의 자연인들이 산에 들어오기 전 질병, 인간관계 악화, 감정의 상처 등이 있었지만 대자연인 산의 품에 살면서 대개는 치유가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비우고 버리는 삶,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의 삶에서 그들은 다시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만두는 것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우리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 그만두는 능력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필요한 힘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만두는 것은 힘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음으로써 자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당할 수 있다. - 리치 칼가아드, '레이트 블루머' 중에서 -
힘이 든다면 어느 순간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그만두는 것도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러니 벌 수 있는 데까지 벌자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얼마를 벌면 멈추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 금액이 모이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위만 보고 살면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노동의 굴레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남들과 절대 비교하면 안 된다. 비교가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자연인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가장의 역할과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해내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프레임을 바꾸면 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 말이다. 현재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서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소득으로도 50%를 저축하고 사신다. 생각보다 노후엔 쓸 돈이 많지 않다. 팔십 이후가 되면 별로 먹고 싶은 것도, 놀러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게 부모님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