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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Feb 25. 2021

대리만족의 정수! 나는 자연인이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돈을 모아야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까?

최근 한국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결과를 보면 항상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여성과 젊은 층보다는 40~60대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도시인들만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업적으로는 농업, 임업, 어업, 자영업, 은퇴 예정자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사실 평소 TV를 즐기진 않는데 사는 게 힘들 때 한 번씩 찾아보게 되는 게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본방 사수는 어려워 가끔 보고 싶을 때마다 여기저기 채널을 무작위로 돌리며 탐색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재방, 삼방까지 본 회차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자연인들이 전국의 야생산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이 들기도 하고, TV작가들은 어떻게 그런 자연인들을 발굴하고, 찾아가 방송 섭외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본격 야생 리얼리티 체험 삼시세끼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왜 그렇게 중년 남성의 허한 마음을 자극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자연인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예전에 도시에서 나름 성공하거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청년 시절을 보냈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돈, 건강, 인간관계 등으로 심한 좌절을 맞은 후 자발적으로 산에 들어와 고립을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실패의 공통점은 IMF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을 짓고 전기도, TV도, 이웃도 없이 자기들이 직접 경작한 과일, 채소와 산에서 채취한 약초로 식사와 건강문제를 해결하며, 대자연의 품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치유를 받으면서 다들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출연자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감정은 '외로움'과 '고독감'이 많았다. 싱글인 사람도 있었고, 돌싱도 있었지만 기혼자 대부분은 하루빨리 아내가 자신이 건설한 '자연의 왕국'에 오기를 간절하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지금은 오히려 삶의 편리함보다 복잡계라는 현실에서 주는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무질서, 모호성, 가변성, 불안감 등을 벗어나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강박적인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 청정 자연에서 스스로 자급자족하고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삶을 보면서 우리는, 아니 중년의 남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나오는 자연인의 대부분은 중장년 남성들이다. 가끔 여성들도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에 나오긴 하는데 아주 드물고, 희귀한 회차로 기억된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들에 만든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하면서 산다. 


물은 항상 일급수이고, 재배하거나 채취하는 모든 작물들은 자연산이고, 유기농이다. 그들 대부분은 산의 계곡물 근처에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씻고, 청결 관리를 한다. 항상 주는 것에 만족해하고, 먹을 만큼만 채취하고, 맑은 공기와 사는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하고 산다. 정해진 스토리는 없지만 매번 이런 진부한 시나리오에도 왜??? 많은 중년 남성들이 재방, 삼방도 모라자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계속 시청하는 것일까?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도래하면서 남성들은 은퇴 이후에도 계속 일자리를 구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은퇴까지만 일하더라도 남은 여생 동안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명이 짧았고, 그 시대에는 그게 일반적인 은퇴자들의 삶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뉴테크의 보급으로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기존 업무들 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면서 업무 간 통폐합과 융합이 확산되면서 이전과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를 요구하는 복잡도 높은 업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정된 두뇌 용량과 체력에 비해 과도한 에너지가 소요되는 업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장기화에서 오는 답답함, 인관관계의 피로도, 건강 문제, 상위 수준의 업무 요구, 직장생활에 대한 불안감, 미래의 불확실성, 금전적 부담감 등이 주는 스트레스들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복잡계의 모든 것을 벗어나 청정 대자연의 품 속에서 벌어지는 자연인들의 심플하고 미니멀한 삶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큰 공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형화되고 틀에 박힌 얘기가 아닌 의외성이 높고 돌발적인 스토리가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청정한 공기, 맑은 물, 깨끗한 밤하늘, 새벽 운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무영의 들꽃, 들풀, 산야초, 숲과 나무, 정상에서의 풍광, 새와 동물 등이 보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치유하고 힐링시켜준다. 또한 심플한 삶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미니멀 라이프'의 욕구도 한껏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대자연 속에서 자기만의 터전과 왕국을 건설해 안빈낙도하는 삶은 부럽기까지 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바쁘게 열심히 일해 겨울 먹거리와 땔감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혹한기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다. 농번기와 농한기를 구분하면서 일과 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할 수도 있다. 


특히 겨울을 나는 자연인들의 여유로움과 느긋함 또한 부럽다. 혹한의 겨울을 잘 견뎌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을 수 있듯이 자연인들 또한 혹한의 겨울 동안 몸속의 에너지와 영양분을 재충전시킨다. 겨울을 움츠리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도록 가르쳐 준다.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가장의 책임과 역할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자살자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심지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삶까지 살고 있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삶의 모순에 빠지고, 혼란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돈 없이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연인들은 자신만의 왕국에서 먹을 채소, 산야초, 버섯도 재배하고, 닭을 키워 필요한 계란과 고기를 얻고, 심지어 돈 되는 도라지, 더덕, 산양삼을 재배하고, 양봉까지 함으로써 소득도 창출한다. '자급자족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땔감으로 혹한의 겨울을 나니 별도의 난방비용도 필요치 않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마다 운동 삼아 오르는 산은 사계절 내내 자연산 약초를 무한 제공한다. 《산야초 동의보감》이란 책을 보면 산짐승들이 뜯어먹는 모든 풀들은 산야초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산야초들이 산의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가끔 산야초에 정통한 자연인이 나오면 볼거리가 풍부해진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먹고, 아는 만큼 살 수 있는 게 세상이란 말이 틀리진 않는 것 같다.


평소 우리가 잘 접하지 못하는 야생 멧돼지나 고라니, 그리고 계곡 민물에 사는 물고기와 미꾸라지까지 요리 재료로 쓰면서 건강을 챙기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먹방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들 대부분의 대체의학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해 보인다. 아마 현대 의학 치료로는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서 온 분들도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의학이 존재하는 한 산야초에 대한 약효의 믿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돈이 없어도 자급자족을 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몸소 증명하기 위해 월든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직소 농사를 지으면서 2년 2개월간 자발적 고립을 몸소 실천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일의 노예였다.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시작된 이런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부지런히 일해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을 뿌리째 흔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맡에 놓아둔 책이 바로 <월든>이라고 한다. 이렇듯 삶에서 재정적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연인의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엄밀히 말하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삼시세끼>처럼 먹방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 그날 채취하는 재료로 만드는 유기농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자연인 자신만의 레시피로 만드는 음식은 "늘 부럽다"는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더욱 호기심을 자아낸다. 재료가 없어서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가진 재료만으로 뚝딱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에게 배우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산야초를 발견해도 욕심을 내지 않고, 당일 먹을 것만 채취한다. 그리고 뿌리 채 가져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다시 재취할 수 있도록 한 뿌리를 남겨두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재취 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늘 불안해서 쌓아두고 쟁여두는 우리의 삶을 잠시 돌아보게 한다.  


그들에게 배우는 또 하나는 바로 그들이 가지는 산야초에 대한 믿음 즉 플라세보 효과이다. 상당수의 자연인들이 산에 들어오기 전 질병, 인간관계 악화, 감정의 상처 등이 있었지만 대자연인 산의 품에 살면서 대개는 치유가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비우고 버리는 삶,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의 삶에서 그들은 다시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얼마를 많이 벌어야 지금의 고단하고 지루한 월급쟁이의 삶을 멈출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수입이 끊길 것이고, 월급을 받는 지금처럼 나름 윤택한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이런 생각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 돈을 계속 벌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소득이 끊긴 우울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결국은 내가 어느 정도를 모으면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먼저 정의를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난 10억 또는 15억만 모으면 직장생활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사전에 해야 한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10억을 가진 사람은 15억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계속 돈을 모들 것이고, 30억 있는 사람은 50억 있는 사람을, 50억 있는 사람은 100억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돈 모으는 일을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그만두는 것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우리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 그만두는 능력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필요한 힘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만두는 것은 힘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음으로써 자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당할 수 있다. - 리치 칼가아드, '레이트 블루머' 중에서 - 


힘이 든다면 어느 순간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그만두는 것도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러니 벌 수 있는 데까지 벌자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얼마를 벌면 멈추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 금액이 모이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위만 보고 살면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노동의 굴레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남들과 절대 비교하면 안 된다. 비교가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자연인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가장의 역할과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해내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프레임을 바꾸면 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 말이다. 현재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서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소득으로도 50%를 저축하고 사신다. 생각보다 노후엔 쓸 돈이 많지 않다. 팔십 이후가 되면 별로 먹고 싶은 것도, 놀러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게 부모님 말씀이었다. 



삶은 깨달음의 역사요, 프레임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역사는 활자로 배웠지만 인생은 자연을 통해서 배운다고 한다. 또한 산은 스님들에게는 구도의 장소이기도 하다. 민둥산이 억새숲이 되는 것처럼 우리들의 의식도 성장과 배움을 얻고 정신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산은 관조하는 삶을 살게 한다. 자연과 사물 관찰을 통해 깊은 통찰력을 주기도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이를 껍질이 아닌 내부 나이테에 새긴다고 한다. 활엽수는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온전히 잎을 떨구고, 앙상한 몸을 유지한다. 자연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인간의 삶도 크게는 생로병사의 삶의 순환고리이고, 짧게는 수십 년간의 사계의 순환으로 이어진다. 자연을 배우면 삶이 더 겸손해질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인이 아니더라도 꼭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다. 내 오랜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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