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Feb 25. 2021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시간과 죽음의 유한성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옛날 로마시대 원정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깐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중세의 수도승들은 만나면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고 한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지만 내일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오래전 그 시대 살았던 젊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안겨주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이 미국의 영문 웰튼 아카데미 새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첫 시간부터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며 파격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흔히 '현재를 즐겨라'라고 번역하는 이 라틴어에 대해 얘기하면서 키팅 선생님은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의 시를 인용하였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간은 흘러 오늘 핀 꽃이 내일이면 질 것'이니 우리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살아야 한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러니 단 한 번 사는 인생, 가능한 한 특별하게 살아야 한다(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그동안 오랜 관습에 길들여온 학생들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자살 시도자들은 대부분 계속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에 몸 상태에 대해 거짓 진단을 했고, 내가 믿는 유일한 치료책을 시도한 거였소. 삶을 자각시킨 거죠. 건강에 이상이 없었단 사실을 알기 전까진 매일 기적적으로 여기고 살겠죠. 내 생각엔 이런 게 바로 기적 같소."


<베로니카 죽기도 결심하다>는 영화에서 자살을 시도한 한 여자가 있다. 물론 이름은 베로니카다. 그녀의 삶이 너무 무기력했고,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살에 실패한 그녀는 빌레트 정신병원으로 오게 되었고, 무기력한 일상의 삶으로 다시 깨어난 그녀에게 의사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심장병이라고 얘기하며, 남은 시간이 일주일 뿐이라고 시한부 선고를 하게 된다. 처음 그녀는 일주일 후에 다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빌레트 정신병원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 다른 한쪽은 병은 완쾌되었지만 다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두려워해서 여전히 미친척하는 사람들이다. 빌레트 정신병원은 죽음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시한부 삶을 살게 된 그녀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을 앞두자 그녀는 그전의 모든 가식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화도 내고, 'No'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그녀에게 기존의 삶을 반복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짧았다. 자기에서 예술적 혼을 보게 되었고, 사랑도 찾게 되었다.


베로니카는 이곳에 입원한 뒤 그녀의 선택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다시 평가하고,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지루하고 의미 없던 하루하루가 결국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바뀌지 않은 어제와 오늘, 내일을 불평하곤 한다.


과거의 베로니카도 자신의 삶을 탓하고 불평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감을 잃어갔다. 마침내 죽음을 몇 시간 앞두고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정신병원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베로니카의 이런 행동을 지켜본 정신병원의 입원 환자들은 충격을 받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베로니카와 달리 아무도 그동안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베로니카와 달리 삶의 기회들이 있었고, 그 기회를 잘 붙들고자 하는 욕구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죽기로 예정되었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그녀는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녀에게는 또 하루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느끼고 살았다. 사실 베로니카는 시한부 선고를 받을 만한 병이 없었다. 심장병도 거짓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정신병원 의사의 의도된 계획이었다. <죽음을 자각을 통한 정신적 효과>라는 그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멀쩡한 베로니카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고, 그녀의 삶이 어떻게 바뀌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삶과 죽음의 성찰과 자각을 통해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바뀌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베로니카는 온몸으로 이렇게 말한다. "남들의 시선을 느끼며 살기엔 생이 너무 짧아. 인생의 오르가슴을 느껴!" 결국 죽음에 대한 자각이 베로니카를 포함한 다른 환자들로 하여금 삶을 자각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우리들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기력감과 우울증을 느낀다. 눈만 뜨면 출근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며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런 반복적인 삶에서 우리는 베로니카처럼 무기력하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남들이 보기에도 잘 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한다. "오늘이 남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라는 말은 그렇게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죽음은 아주 멀리 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처럼 죽음을 인지하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죽음을 매일 생각하고 살자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주변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인식할 필요도 없다. 메멘토 모리처럼 죽음을 기억하면 된다. 유한한 삶의 시간들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평범해지지 않는다.


삶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가능성, 사랑의 설렘, 일상의 아름다움, 소중한 가족과 지인 등의 감정은 더 이상 이전과 다를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생기게 된다. 죽음이라는 기준 앞에서는 다른 모든 기준은 하찮게 된다. 곧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기존에 매일매일 신경 썼던 타인의 시선, 부모님의 기대 등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금 당장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 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오늘 하루는 무기력했는가? 오늘 하루가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했는가? 내일 하루를 빛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죽음을 한번 기억해보라. 췌장암으로 힘든 생을 살았던 스티브 잡스는 죽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을 것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도움이 되었던 도구이다. 왜냐하면, 외적인 기대, 자부심,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다 사라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언젠가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피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이 이미 가식의 옷을 벗고 나체로 있다. 그러니 당신은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죽음이라는 절박함을 맞을 때 우리는 삶의 새로운 측면을 깨닫게 된다.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자!!!


작가의 이전글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