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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29. 2022

권위의 법칙을 역행하는 법

#설득의 심리학 #의료사고 통계 #권위와 권위주의 #메이요 클리닉 #명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할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권위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뜻하는 권력(power)과 달리 권위는 사람들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도 권위'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을 의미한다.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므로 권위는 조직사회 또는 조직관리 측면에서 꼭 필요한 리더십 항목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전문가 즉, 권위자의 의견과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인 로버트 차알디니 교수는 "인간의 행동은 권위자의 명령이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위의 법칙에 대한 인간의 비이성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말이다.




권위의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가 바로 의학계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를 지시를 의심 없이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복종하게 된다. 의학지식의 전문성과 비대칭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권위의 법칙이 강력하게 적용된다. 


얼마나 강력한지 의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해도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그 배우가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고, 그 약 또한 배우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배우가 연기했던 의사라는 권위의 이미지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함으로써 그 배우가 광고하는 제품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권위에 관한 미국의 한 실험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말도 안 되는, 심지어 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거짓 처방을 지시했을 때 간호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당한 경험과 그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간호사들 대부분이 의사를 처방 지시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을 뿐 의사에게 다시 한번 묻지도 않고 그 처방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물론 그 약은 환자들에게 처방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 병원이야 CT든 조직이든 차트든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러니깐 말해" - 드라마 <하얀 거탑> 마지막 회 중에서 -


권위의 법칙에 대한 위험성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바로 의료사고이다. 법원의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의료사고로 인해 손해배상 소송이 접수된 사건의 수는 9,654건이라는 통계수치가 나왔지만 승소한 건수는 단 86건(0.9%)에 불과했다고 한다. 의료사고 손해배상의 경우 그 과실을 입증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운데 원고인 환자 측에서 입증된 증거를 통해 그 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상업화로 인한 병원의 과잉진료와 의료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며, 제대로 된 의료사고에 대한 통계 자료를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사회적 권위 집단이자 권력기관이 의료업계의 반발로 진행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오 년 전쯤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지인이 10kg 이상 체중이 빠지고, 몸 전체가 붓는 등 심각한 건강 이상 증세가 나타나 병원 진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1차 진료기관에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3차 진료기관에서 정밀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 림프종 관련 희귀 악성 종양으로 판명되었고, 생존율이 낮아 완치도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았다. 집안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심지어 다니던 직장도 정리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 내려가 자연치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물론 좋아하던 술도, 담배도 모두 끊었으며, 매일같이 명상과 운동 루틴을 실천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을 예약해 정밀검진을 한 결과 가벼운 림프종 관련 질병으로 진단 결과가 나왔고,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되었다.


만약 그 지인이 재검진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권위의 법칙에서 비롯된 오진에서 비롯된 맹목적 믿음이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강화시켜 실제로 병이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 해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학신문(2021.10.20)에 따르면 호흡기 내과 의료사고에서 진단 지연과 오진으로 인한 과실 발생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최근 공개한 '호흡기내과 관련 의료분쟁 조정 현황'에서 이 같은 내용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왜 의사들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직 모릅니다.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렇게 애매한 말만 다 하는 줄 알아요? 의사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하거든. 말을 조심해야 하니까. 의사가 환자에게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예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하나밖에 없어요." 환자 보호자에게 거르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는 겨울(신현빈)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정원이 겨울에게 따끔하게 한 말이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에서 -


우리나라의 경우 애석하게도 대부분 한 명의 의사가 여러 명의 환자의 치료를 전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론적으로 의사가 가진 개별적 경험과 전문적 지식에만 의존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의학계는 더욱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으며 신기술과 지식의 등장으로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예전에 통하던 경험과 지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의사의 경우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하는 지식을 섭렵함으로써 더 나은 진단이나 치료 방법을 모색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열악한 의료계의 환경을 볼 때 권위의 법칙에 따른 의료사고의 개연성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EBS 시사교양 다큐 <명의>란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소문난 명의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명의를 만나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임은 누구나 알 것이다.   

 

사진출처 : The Psychology Times, 연합뉴스


나 또한 의학에 대해 전무하지만 어떻게 하면 오진에 따른 의료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박사과정 중 <서비스 마케팅>의 사례 연구(case study)에서 어렴풋하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선진 의료체계를 구축한 세계 최고의 종합병원이라고 불리는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사례다. 


메이요 클리닉은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시에 위치한 종합병원으로 1883년 메이요 박사가 자신의 두 아들, 그리고 수녀들과 함께 설립했다.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메이요 클리닉은 미국 최초 환자 중심 통합 의료서비스를 도입했다. 메이요 클리닉이 위치한 로체스터시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다. 주민 7만 명이 메이요 클리닉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로체스터 시내 전체에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60개의 호텔들이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셔틀버스와 스쿠터가 마련되어 있다. 로체스터 시내 전체가 메이요 클리닉과 관련된 시설이기 때문에 이동하기 편리하게끔 건물들은 모두 구름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어 이 구름다리를 이용하면 누구나 병원, 호텔, 식당 등 시내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병원 로비에는 대형 피아노가 마련되어 있는데 환자와 보호자 누구나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조각과 미술품들도 마련되어 있는데 환자와 보호자들의 심신을 달래기 위함이라고 한다. 메이요 클리닉에는 교수, 전문의, 박사 3,700명이 진료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고,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전체 의료진이 5만 5,9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한해 11만 8,000여 명이 병원에 2,600억 원을 기부하며, 1인실 기준 2,059개의 병상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핵심은 바로 환자 중심의 특별한 진료서비스인 '협진(協診) 시스템'이다. 메이요 클리닉을 방문한 환자는 1시간 동안 상담을 받은 뒤 1시간 30분 정도 초정밀 진찰을 받게 된다. 상담과 진찰이 끝난 뒤 입원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를 위한 하나의 팀이 꾸려지게 된다. 10여 명의 의료진이 하나의 팀이 되어 환자의 수술 여부에 대해 회의를 하며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진 및 의료사고에 대한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치료계획에는 의사와 간호사 외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데 영양사와 물리치료사, 장기간 치료 후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사회복지사까지 참여한다. 메이요 클리닉은 의학과 관련된 세계 최초의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산소호흡기 사용, 최초의 CT촬영, 최초의 혈액은행 개설, 최초의 빈혈 측정법 개발, 항 결핵제 최초 사용 등 의학과 관련된 메이요의 업적은 끝이 없다.


메이요는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외과, 신경과, 류머티즘과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병원이다. 외국인 환자를 위한 진료체계도 최고 수준이다. 35개국 통역서비스가 마련되어 있고, 메이요에 근무하는 레지던트와 전임의의 25%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메이요에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있으며 기부금은 의료장비와 진료 센터를 짓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메이요 클리닉이 이처럼 환자중심의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메이요 박사의 환자를 위한 철학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여름 에어컨이 없던 시절 8인실에서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80대 할머니를 위해 메이요 박사는 자신의 돈으로 할머니를 1인실로 옮겼으며, 병원 설립 초창기 때부터 꾸준히 자신의 월급 절반을 반드시 재단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130년 동안 이어진 환자중심의 서비스와 의료진들의 헌신이 메이요 클리닉을 세계 최고의 종합병원으로 우뚝 서게 만든 이유인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 병원의 사례를 보면서 협진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참고로 한국의 대형병원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의료서비스 디자인을 혁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에서는 권위의 법칙을 거스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병에 걸렸을 때 권위자의 전문성에 대한 증거를 주의 깊게 살피게 될 때 권위자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복종하는 폐단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설득함으로써 전문가들이 어떤 혜택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권위의 법칙을 폐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중대한 병에 걸렸을 때는 한 곳의 전문의의 의견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고, 최대한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증거가 뚜렷한 전문의(명의)를 찾아가 재진료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최소 세 곳 이상은 찾아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단한 충치치료도 치과의사의 양심에 따라 보존치료를 할 것인지 아니면 발치한 후 임플란트 시술을 할 것인지 결정이 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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