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Aug 07. 2022

뜻밖의 여정(unexpected journey)

#텃밭가꾸기 #땅은정직하다 #사돈과의만남 #풍수지탄 #감자탕 #정내는 법

퇴직하고 실업급여를 받은지도 어느덧 8개월 차가 되어 간다. 임원 재직 시 받았던 급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신청절차 또한 매번 번거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계비(?)가 또박또박 통장에 입금되다 보니 나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남은 실업 급여도 이제 한 달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밑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8개월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퇴직 직후 자칫 게을러질 것을 염려해 나만의 사무실도 꾸미고, 일상 루틴도 수립해 엄격하게 준수도 해보았지만 어찌 보면 그건 인생이막의 실질적인 준비보다는 그냥 아무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는 자기만족 수준에 그친 것 같아 지나간 시간이 조금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직 시절부터 꿈꿔왔던 제주도 한달살기, 텃밭 가꾸기, 시간 구애됨이 없이 아내와 행복한 시간 보내기, 책 읽기와 글쓰기, 운동 하기, 집밥 실컷 먹기 등의 위시리스트도 맘껏 실천할 수 있어서 개인 인생사에 있어서는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한 기간이었다. 위시리스트 목록 중 의외로 가장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 활동은 다름 아닌 텃밭 가꾸기였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던 직장생활과 달리 반복적인 육체노동이 대부분인 텃밭 가꾸기는 다소 힘들긴 했지만 복잡하고 번거로운 모든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텃밭 가꾸기에만 몰입함으로써 퇴직 후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과 공허함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텃밭 환경에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수확하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힘들고 고된 육체노동 후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서 함께 간 모친, 짝꿍과 먹는 시원한 미숫가루와 간식은 '왕후의 밥, 걸인의 찬'처럼 소박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난 잦은 업무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세로 심신이 매우 지쳐 있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난 퇴직 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자연과 가까이 벗하며 살고 싶은 욕심에 오 년 전쯤 현 거주지와 그리 멀지 않은 청도군 이서면에 산을 깎아 조성한 전망 좋은 전원주택지 한 필지를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하며 사두었다. 부지 인근에 소나무 군락지도 있어 솔향이 가득한 것도 구매 이유 중 하나였다. 


직장생활이 힘들 때면 자주 그곳을 방문해 맑은 공기도 마시고, 멋진 조망도 줄기면서 훗날 전원주택을 지어 노후를 보상받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임원 승진을 하게 되면서 연고를 떠나 대전, 서울, 부산 등지를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전원주택의 꿈은 한동안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된 전원주택 부지는 이름 모를 잡초들과 산에서 내려온 칡덩굴이 한데 뒤엉켜 정글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퇴직 후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그간 배우고 싶었던 경매 기술도 배울 겸 경매 학원에 다니던 중 '개정된 농지법' 시행령의 '경자유전' 취지를 공부되면서 농지로 개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휴경 상태에서 벗어나 농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20년 텃밭 전문가(?)인 모친과 태어나 한 번도 농사를 지은 적 없는 아내를 데리고 정글 부지를 텃밭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농사와 관련된 아무런 장비도 없던 터라 간단한 몇 개의 농기구만 구매한 후 본격적으로 텃밭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힘든 건 바로 토지 개간 작업이었다. 150평의 남짓한 토지였지만 세발괭이로 땅을 뒤집어 개간하는 작업은 최근 경험한 일들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육체노동이었다. 산을 절토해 만든 토지라 세발괭이로 땅을 찍을 때마다 땅 밑에 가득 박혀있는 암석 때문에 불꽃이 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세발괭이의 날과 손잡이도 부러질 정도로 거칠고 힘든 작업이 계속 이어졌다. 개간 작업 시 골라낸 크고 작은 돌들이 텃밭 주위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힘든 개간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두둑과 이랑을 만드니 허접하지만 텃밭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식목일을 기점으로 12종의 유실수와 12종의 채소 모종도 심었다. 일부 모종들은 멀칭 작업과 지지대 세우기 작업이 병행되었다. 멀리서 봐도 누구나 텃밭이라고 볼 정도로 변한 것을 보면서 퇴직 후 처음으로 일의 성취감과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텃밭 개간 작업 당시 나, 그리고 고부간 다정한 모습.

작물은 부지런한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일주일 또는 열흘마다 텃밭을 방문하면 식물들은 몰라볼 정도로 크게 자라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함께 간 모친은 마치 놀이공원에 간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야야 이렇게 잘 자라주니 너무 고맙다"라는 말씀을 연신 내뱉으면서 식물과의 교감을 아낌없이 나누신다. 남들이 보면 연로하신 모친 모셔다 고생시킨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텃밭 농사에 임하시는 모친의 모습은 마치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텃밭 전문가답게 능숙하게 잡초도 뽑고, 주변 정리도 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부부 몰래 씨앗도 심으신다. 텃밭을 오래 경작하시다 보니 작은 땅덩이만 있어도 뭔가를 심으시는 게 습관이 되신 듯하다. 다음에 방문해 발아한 씨앗을 보면 또 즐거워하신다. 텃밭을 다녀온 후 전화를 드리면 언제 다시 텃밭에 가실 건지 물을 정도니 텃밭에 대한 애정만은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나 또한 예전부터 텃밭을 만들어 자급자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텃밭 일이 나름 즐겁고 의미가 있었다. 텃밭을 가꾸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땅과 식물만큼 정직하고, 받은 것 이상 내어주는 건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모종을 심은 후 가끔 잡초나 뽑아주고, 물만 주면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때문이다. 4월에 심은 일 년생 블루베리 묘목에서 블루베리 열매가 착과되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토마토 열매는 작았지만 맛이 달고 과즙도 풍부했다. 부드러운 부추는 다 잘라도 다음번 방문할 때면 그 이상 자라 있었고, 청양고추와 가지 또한 갈 때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깻잎과 콩잎, 호박과 고구마 줄기는 더위에 달아난 입맛도 찾아주었다. 햇빛과 바람, 이슬과 비, 그리고 농부의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로 만들어낸 텃밭 작물들의 향연은 소리 없이 계속 이어졌다. 


붉은 토마토, 가치, 고추
부추, 고구마, 호박
블루베리 착과, 텃밭 농사 수확물


최근 나는 짝꿍과 함께 모친을 모시고 아침 일찍 텃밭을 향했다. 최고 낮 기온 40도까지 기록하는 대프리카의 날씨에 익숙한 대프리카인이지만 가급적 텃밭 일을 빨리 마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만 했다. 뽑아도 뽑아도 작물보다 빨리 자라는 잡초에는 더 이상 재간이 없어 금번에는 낫으로 베어야만 했다. 하지만 금주의 작물 수확량은 여느 때보다 좋았다. 가지 8개, 토마토 20개, 고추 한 봉지, 부추 한 봉지, 고구마 줄기 한 봉지, 깻잎과 콩잎 두 봉지, 호박 5개 등으로 꽤 괜찮은 편이었다. 요즘 채소 사 먹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다.


모친은 남은 토지가 아까워서인지 다음번 방문 때는 가을 상주, 배추, 무를 심자고 제안하셨다. 난 흔쾌히 세발괭이를 들어 남은 토지 일부분을 개간하기 시작했고, 모친은 능숙한 호미질로 두둑과 고랑, 즉 이랑을 만드시는 작업을 진행하셨다. 더운 날씨 탓인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온 몸에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심지어 장화가 땀으로 젖어 물 사태가 날 정도였다. 늘 그렇듯 작업 후 소나무 그늘 아래서 먹는 얼음물과 간식은 꿀맛이었다. 

 



가는 길에 시즌 복숭아를 상자째 팔고 있는 가두판매대가 있어 잠시 차를 세웠다. 복숭아를 워낙 좋아하는 탓에 우리 집 한 상자, 부모님 한 상자 줄 요령으로 품질 좋은 황도 두 박스를 5만 5천에 구매할 타이밍에 모친은 얼른 쌈짓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던지다시피 하고 차에 오르셨다. 기가 막혔지만 모친의 고집을 말릴 수는 없었다. 모친은 집에 복숭아가 많아 필요 없으니 한 박스는 가는 길에 사돈집에 주고 가자는 제안을 갑작스럽게 하셨다. 처갓집이 부모님 댁과 10분 거리라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내가 휴대폰으로 장모님께 전화를 드리니 마침 집에 계신다고 하셔서 난 처갓집 방향으로 네비를 찍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모친은 복숭아만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차 안에서 조용하게 금일 수확한 무농약 채소들을 비닐봉지에 소분해서 차곡차곡 복숭아 상자에 담으시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키운 채소니 맛있게 드실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가는 김에 장모님과 식사라도 하면 어떻냐는 나의 제안에 차 안이 잠시 어수선해졌다. 세명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쩐내도 많이 났을 뿐만 아니라 옷도 흙투성이고, 외모도 생쥐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실 분이니 그냥 식사 스케줄을 감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제안에 짝꿍도 모친도 그렇게 하자고 명시적인 동의를 했다. 


이십여분을 달려 도착한 후 우리 부부 내외는 먼저 복숭아와 텃밭 수확물들을 집에다 갖다 드린 후 장모님을 모시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오랜만에 회동한 사돈지간의 두 모친들은 이산가족 마냥 감격스러운 상봉 장면을 연출하셨다. "아이고 사돈 이게 얼마만입니까. 그동안 건강하셨지요? 이렇게 뵈니 너무 좋습니다." 두 분의 주고받는 말씀을 보면서 진작 이렇게 못 해드린 게 죄송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운 날씨였지만 감자탕을 점심 메뉴를 정했다. 예상과 달리 넓은 식당은 감자탕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역시 삼계탕이나 뜨근한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무더위를 이겨내려는 선현들의 이열치열의 지혜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듯 보였다. 여기에서 잠깐! 감자탕을 맛있게 먹는 나만의 팁이 있어 잠시 소개하겠다. 


감자탕이 화로 위에 오르면 먼저 가위로 어린 깻잎과 시래기, 팽이버섯을 자른 후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물이 끓으면 제일 먼저 국자로 국물을 들어내어 접시에 담아 시원하게 마신다. 너무 끓어 염도가 높아지면 시원한 국물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기호에 따라 한 두 번 정도 반복한 후 국물을 다시 리필한다. 물이 다시 끓으면 시래기와 야채부터 먹는다. 그런 후에야 등뼈 고기를 본격적으로 발라먹으면 된다. 남은 국물에 라면 한 개로 입가심을 한 후 볶음밥을 먹으면 감자탕 풀코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날도 내 방식대로 감자탕을 먹었다. 평소 식사량이 현격하게 줄어든 모친도 이날은 평소 식사량의 두 세배 이상의 양을 드셨으니 내 방식이 통한 듯해서 매우 뿌듯했다.^^; 나이차가 일곱 살 남짓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자매처럼 두 분의 어머니는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다. 그간 살면서 자식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서슴지 않고 주고받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두 분의 케미가 좋았던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두 분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세상 남부러울 것 없었다. 지금처럼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모님은 식사 중간에 어설프게 계산을 하시러 가시다 아내에게 제지를 당하셨다. 역시 어른들 간의 정 표현은 밥값 계산이 아니던가. 물론 그날 점심은 당연히 자식들 몫이어야 했다. 장모님께서는 사돈이 귀한 복숭아와 좋은 텃밭 채소도 주셨으니 다음번에 꼭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사시겠다며 내게 별도의 약속 일정을 잡으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셨다. 


장모님은 교회 권사님을 하셨을 정도로 신앙심이 매우 강하신 분이다. 평소 종교가 없는 사위를 위해 항상 잘되라고 기도 하시는 모습이 늘 감사하다. 또 나의 모친은 나를 위해 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드리니 나는 복도 많고, 잘 될 수밖에 없는 놈이란 생각을 늘 하게 되는 건 삶의 보너스다. 


장모님은 예의가 참 바르신 분이다. 명절 전에는 항상 모친께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전하신다. 그런 장모님의 진솔한 모습에 모친 또한 예의 바르고 정 많으신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러다 보니 처갓집에 더 잘하라고 늘 말씀하신다. 우리 부부가 스무 살 때부터 양가 부모님을 뵈었으니 벌써 35년이 다 되어간다. 모친이나 장모님도 그냥 같은 어미니처럼 느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계획된 여정을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뜻밖의 여정을 즐길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금번에 진행된 뜻밖의 여정은 우리 부부 내외에게도, 두 분의 어머니에게도 멋진 여정의 즐거움과 기쁨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예전부터 난 아내와 두 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 여행을 하자는 얘기를 자주 했지만 이동이 불편한 구순의 부친 때문에 항상 계획이 이행되지 못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부모님 세대는 시대 상황이 만든 탓인지 사돈 간에 만나 정을 나누고, 친분을 쌓아가는 자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마 어렵게 살아온 당신들 세대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돈 관계라면 오히려 자주 만나 정을 나누는 게 오히려 자식들 관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대가 바뀌면 아마 나처럼 생각하는 동세대 사람들도 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거울을 보면 문득 내 얼굴에서 부모님의 얼굴이 간혹 보인다는 얘기를 짝꿍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얼굴을 닮아가는 내 모습이 때론 낯설고, 두려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여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고사성어가 주는 의미처럼 살아 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자주 찾아뵙고, 정을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조만간 전원주택을 짓게 되면 두 분의 어머니와 구순의 아버지를 함께 모시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무농약 채소와 부드럽게 삶은 고기를 정성껏 상에 올려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계획이다. 빨리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의도와 달리 갈등이 생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