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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ug 30. 2022

펭귄은 이빨이 없다!!!

#나이를먹는다는것 #인생이막창업 #창준생 #후회최소화의법칙 #불혹지천명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나 '하늘이 내게 준 천명(天命)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지만 난 여전히 불혹과 미혹 사이를 헤매고 있고, 천명은 커녕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오리무중(五里霧中) 상태에 머물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불혹(不惑)의 '혹(惑)'은 '유혹(誘惑)'이 아닌 '의혹(疑惑)'을 말한다. 사십 대가 되면 세상 만물의 이치에 대한 의혹이 없어야 하는데 지나간 나의 사십 대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욕망과 좌절, 의혹과 진실 사이를 오가며 삶의 정체성과 방향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연륜과 경험이 쌓여 세상을 바라보는 분별력과 삶의 지혜가 생기고, 인자하게 꾸러미에서 선물을 꺼내는 산타클로스처럼 말과 표정이 온화해지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롭게 사유하는 일인 줄 알았다. 힘든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넘겼으니 노련하고, 완숙해질 거라 생각했다. 21년을 공부했고, 28년을 일을 했고, 26년을 짝꿍과 살아왔고, 게다가 반백년을 더 살았으니 웬만한 시련에도 견뎌낼 혜안을 가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삐꺼덕거리는 몸은 갑작스러운 갱년기를 맞았고, 의혹 투성이 정신은 여전히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질주하고 있다. 여태껏 뭐 했나 싶고, 맘대로 되는 일은 없고, 삶은 여전히 하드코어(hardcore)하고, 세상은 어찌나 빨리 돌아가는지 쫓을 여유조차 없는 냉담한 현실은 퇴직 후 노후생활을 준비하라고 또 다그치고 있다. 한없이 젊을 줄만 알았는데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몸의 장기들은 순서 없이 이상 신호를 송출한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진 지금 나는 여느 때보다 다가올 삶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디론지 가야 할 시점이다.


요즘 또래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요즘 맘 비운 지 오래다. 다 내려놓고 산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내려놓았다기보다는 속마음은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원하는 결괏값이 이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라는 아쉬움과 체념의 감정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말처럼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어디선가 읽은 글의 내용인데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마음은 비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이라고 한다. 채우는데 무엇으로 채울까 가 중요하다. 선한 것, 귀한 것, 가치 있는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채워야 한다. 이러한 것으로 채우면 삶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 또한 비어있는 마음을 그대라는 생각으로, 그대와 함께 한 시간으로, 그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으로, 그대에게 던진 긍정적인 언어들로 채우는 과정이라고.




오십 대가 되니 이삼심대처럼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털고 일어서서 도전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처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실패하고 또 도전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패는 다른 뜻으로 실을 감는 도구란 뜻이 있다. 실타래에 실을 감을 때 엉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감으려면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실패(reel)라는 도구가 있어야 실패(failure)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퇴직 후 오십 대 창준 생(創準生), 창업이란 치열한 인생이막의 길목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좌충우돌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친형이 먼저 제안하고 지원해주겠다던 산업장비 판매, 유통 사업의 희망고문은 2주간의 현장 체험을 통해 마침내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형과 같은 사업가 기질과 마인드셋이 부족한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플랜비(Plan-B)나 백업플랜(Backup Plan)이 필요했다.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은 국민자격증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는 공인중개사 창업으로 선정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5년 전 짝꿍을 설득해 취득해 놓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파른 금리 상승과 부동산 시장의 거래 절벽이 맞물리면서 공인중개사들의 폐업이 급증하고 있는 시점에 과연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현재 국내의 공인중개사는 2021년 기준 11만 5천 명 수준으로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상가의 1층이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즐비한 풍경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닐 것이다. 공인중개사 합격자 수는 매년 2만 명이 넘는 수준으로 현재 누계 시험 합격자는 40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니 국민 자격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시기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창업하는 것은 어쩌면 불구덩이를 향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형세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매수 절벽이 심화되어 폐업 공인중개사가 급증하고 있는 이런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권리금이 여느 때보다 줄어 창업 초기 비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 끝없는 추락 후에 다시 반등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매수자 우위 시장에서 볼 때 원하는 부동산을 골라서 픽(pick)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평소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관점에서 볼 때 공인중개사 업무를 보조하면서 좋은 투자 기회를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후회 최소화의 법칙(regret minization framework)'의 일화로 매우 유명하다. 그가 아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겠다는 생각을 사장에게 말하자 사장은 "그건 좋은 생각이지만 이미 좋은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이 하면 더 좋을 것 같네. 조금만 더 고민해 보라"는 말을 그에게 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후회 최소화의 법칙'이란 개념을 세웠다고 한다.


그 법칙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순한 과정을 따르는 것이다. 첫째 여든 살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둘째, 최대한 후회를 적게 하고 싶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인생을 되돌아본다. 셋째,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어떤 행동을 한 것을 혹은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가?"라고 자문한다. 이 방법은 현재 상황에서 겪는 혼란을 줄여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가장 핵심적인 관점에 집중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그가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창업한 게 바로 아마존이다.


나 또한 아마존 창업자가 결정한 방식으로 '후회 최소화의 법칙'을 따르고자 했다. 아니 본질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남은 시간 동안 부여된 삶의 가치와 밀도를 높이는 선택이기도 했다. 예상한 대로 이 이후의 내 삶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지옥과 천국을 오갈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내게 그럴듯한 선택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후회 최소화의 법칙'에 근거하기 때문에 나름 내게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선택한 고생길이었으니 후회는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을 살다 보니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고르는 상황에 많이 처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분명 후회할 여지는 많다. 하지만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죽음 앞에서 나는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보다 해서 후회하는 삶을 산 것에 더욱 높은 삶의 가치를 둘 것이라 생각한다.


난 이제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지킬 게 많은 사람과 잃을 게 많은 사람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확률이 높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지킬 게 많은 사람은 방어적일 것이고,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끝까지 가보자'는 식의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후자 쪽이 이길 승산이 높을 것이다. 잃을 게 없다는 말은 심리적 각오를 의미하는 것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펭귄은 이빨이 없다. 그런데 물고기를 잘 잡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펭귄의 부리 속에 촘촘하게 난 털 때문이다. 부리 안에 난 털은 모두 입 안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 털이 합쳐지면 매우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일단 펭귄에서 물린 물고기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 차카코시 히로시, 《오래가면 천천히 가라》중에서 -


남은 과제는 일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짝꿍을 설득하는 일이다. 짝꿍이 싫다고 하면 도전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생 후반전을 위한 창업을 한다면 꼭 짝꿍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짝꿍은 나와는 동상이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람과 염원을 잘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잘해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 또한 남편 바라기이기 때문이다. 내 착각이 아니 길 ㅠㅠ 이제 남은 인생의 여느 때보다 펭귄의 물고기 잡이처럼 서로 간의 협업(teamwork)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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