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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Nov 30. 2022

인생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나는 자연인이다 #유사 자연인 친구 #포항 방문 #방아회


한산도에서 혼자 기거하면서 자칭 '유유자적 신선(神仙)'으로 불리길 원하는 유사(類似) '자연인' 친구 한 명이 오랜만에 포항 자가(自家)에 들렀다가 제가 제일 싫어하는 화상 통화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화상 통화가 여전히 낯설었던 전 몇 번의 거절 버튼을 눌렀음에도 반복해서 걸려오는 전화에 결국 '수락'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습니다. 얼굴 표정과 어투까지 어느 것 하나 범상(?)치 않은 친구였기에 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


"OO야, 우리 집에 놀러 와. 나 지금 포항 집이야. 제수씨는 잘 있구?"

"웬일이냐? 자연인이 집엘 다 오구. 혹시 완전 복귀한 거냐? 근데 갑자기 집엔 왜 놀러 오라는 거니?"

"요즘 방어가 제철이잖아. 내가 퍼뜩 준비해 놓을 테니 제수씨 데리고 빨랑 넘어와"

"야! 아무리 내가 백수라도 갑자기 넘어오라는 게 말이 되냐. 짝꿍에게도 허락을 받아야지"

"제수씨와 화상 통화 좀 하자. 내가 얘기할게"


물론 아내도 나처럼 화상 통화에 대한 알레르기가 심했기 때문에 결국 아내와의 연결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하지만 평소 그 친구의 황소고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아내는 이내 체념하면서 "알았다 캐라!"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답변을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었고, 또 숙박을 해야 하다 보니 짐 보따리와 집들이 선물, 친구 자녀 용돈 등 은근히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선물로는 주방 칼 세트, 고급 와인 한 병, 케이크, 함께 먹을 더덕 담금주 등을 준비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예의가 바르니깐요! ^^;


한 시간 정도가 걸려 친구 아파트에 도착하니 친구가 친히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 덥수룩한 수염이 한산도에서의 그의 삶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서로 해후한 우리들은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수씨는 벌써 식탁 위에 맛있는 방어회와 등 푸른 생선 무침회를 미리 세팅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술자리가 이어졌습니다. 더덕 담금주수제 와인을 필두로 그간 나누지 못했던 근황 토크가 맛있는 안주와 함께 점점 무르익어갔습니다. 원래 경상도 보리 문둥이들은 정내는 방식이 그냥 술 먹고 큰 소리로 얘기하는 거지요. 너무 시끄러워서 탈이죠! ^^


방어회와 등푸른생선회 무침
술자리 시작 전 VS 우정 러브샷


근데 말입니다! 담금주→수제 와인→수제 맥주→소주 순으로 주종이 확대되고, 하교했던 대학생 자녀들 2명까지 자리에 합세하자 술자리의 분위기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자연인 아빠를 둬서 너희들이 고생 많구나! 이렇게 잘 컸다니 참 대견하고, 고맙다!" 우리 부부는 군대를 제대한 친구의 두 아들과 오랜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어릴 때 포항에서 가끔 만나서 우리 애들과도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전혀 거슬리는 게 없었죠.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른스럽고 예의도 발라서 내심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아들을 왜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는지...... 비교의 삶은 끝이 없습니다. ㅠㅠ


벌써 6년!!! 평소 자연인의 삶을 꿈꾸던 제 친구가 사십 대 중반에 용기를 내서 '짧은 인생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데이'라고 외치면서 희망퇴직을 감행한 후 섬으로 기들어가 혼자 산지가 벌써 6년이나 되었단 뜻이죠. 통영 학림도에서 만 4년, 그리고 지금 한산도에서 만 2년! 합치면 자연인이 된지 어언 6년이나 되었습니다.


제 친구는 한산도에서 펜션을 운영 중인 이웃 형님의 잘 만나서 그분의 배려로 무상 토지 위에 농막 한 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한산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근 펜션 인근 토지 중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약 200평 규모의 토지를 싼값으로 구매를 했다고 합니다. 제수씨만 허락하면 함께 그곳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함께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죠. 여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친구의 소망은 마눌님의 하늘 같은 승은(承恩)을 얻어서 하루빨리 그곳에 정착하고 싶었던 겁니다.


"제수씨는 언제 저놈 따라 한산도로 갈 거예요?"라는 나의 질문에 제수씨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 뜨뜻미지근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도 있고 해서 당장 갈 수 없다는 답변이 이어졌죠.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가면 고려해 보겠다는 일명 '물귀신 작전'도 시전했습니다. 순간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 같은 느낌이 싸하게 들었죠. 사실 통영의 학림도에서 살다 친구가 중간에 잠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해서였습니다.


MBN '야생 날조(?) 리얼리티 체험 삼시세끼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 짝꿍 없이 혼자 사는 주인공들 대부분이 늘 짝꿍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걸 상상하시면 그 느낌 그대로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제수씨가 가지 않는다면 '한산도 프로젝트(?)'는 다시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다만 땅 구매가 강력한 쐐기 변수(?)가 되었으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겁니다. 오랜만에 신선계에서 인간계에 내려와 술을 많이 먹은 친구가 취기가 많이 오르는지 갑자기 뜬금포(?)로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살아보니 친구도 필요 없더라.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짝꿍이 되어야 하는기라. 평생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결혼한 건데 마눌님이 나와 제일 친한 친구면 인생이 얼마나 멋지겠노!" (갑자기 그 친구가 살짝 멋있었습니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태까지 저는 배우자는 배우자고, 친구는 친구라고 분리해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퇴직 후 서로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기존에 알고 지내던 직장 지인들과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고, 연락도 끊기면서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 건지 고민하던 때에 이 말을 듣게 된 거죠. 흔히 오십 대 부부들이 농담 삼아 "부부는 전우애로 살아간다"라는 말을 합니다. 단어 뜻으로 보면 동성(?)들 간의 의리로 산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우애'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죠. 어쩌면 '부부애'보다 더 딥(deep)한 관계일 수도 있는데도 우리는 여태껏 '전우애'를 너무 폄하해서 써왔던 것 같습니다. ^^;


온전한 나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 영화 <계춘 할망> 계춘의 대사 중에서 -
영화 <계춘 할망> 스틸 컷


익일 깨질듯한 머리와 허한 속을 부여잡고 일어난 저는 제수씨가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아침 밥상을 게걸스럽게 비워냈습니다. 주당인 제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한 비결입니다. 자연인 친구는 그때까지 꿀물만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침대 위에서 여전히 버티기 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후 우리 부부는 제수씨의 안내로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 중 한 곳인 청진항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홍반장과 혜진이가 데이트도 하고 마을 주민과도 다양한 스토리가 많았던 빨간 등대를 제일 먼저 보러 갔습니다. 벽화 그림으로 꽉 채워진 방파제를 따라 쭈욱 걸어가니 끝자락에 빨간 등대가 바다를 배경으로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었습니다. 여느 부부 계모임처럼 다정한 포즈로 사진도 몇 컷 촬영을 했습니다.


포항으로 오는 길에 칠포리에 위치한 해오름 전망대도 잠시 들렀습니다. 벼랑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뱃머리 형상의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겨울바다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벼랑 아래에서는 성난 파도가 흰 포말을 뿜어가며 바위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속은 이미 문드러져 해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죠. 제수씨의 소개로 우린 포항에서 얼큰하기로 소문난 모리 국숫집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급했습니다.


청진항 등대 vs 해오름 전망대


모리국수는 갖은 해물과 칼국수를 넣고 고춧가루에 얼큰하게 끓여 내는 포항시 구룡포읍의 해물칼국수를 말합니다. 아귀 내장을 간 것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국물을 우려낸 뒤, 아귀와 새우, 홍합(미더덕, 대게), 콩나물을 넣고 한참을 끓여 국물을 만들어 마무리로 칼국수를 넣고 다시 팔팔 끓이면 완성된다고 합니다. 포항시 구룡포읍에서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며,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얼큰하게 끓여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지역 상인들뿐만 아니라 구룡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보시면 알겠지만 세숫대야에 담아줍니다. ^^; 저와 친구는 정신없이 국물을 들이켰습니다. 뜨겁고 매운 빨간 국물이 위장을 타고 내려가니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죠.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군요. 해장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뚝뚝 떨어진 땀방울이 국물과 뒤섞여도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국수를 들여켰습니다. 평소 대식가인 제가 음식을 남길 정도로 정말 양이 많았습니다. 해장을 마친 후 우리 부부는 포항 친구네 집으로 돌아와 친구 부부 내외와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짧았지만 임팩트 강했던 1박2일의 포항 여행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친구네 부부의 세심하고 정성 어린 대접이 너무나 고마웠기도 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친구가 술이 취해 제게 했던 멋있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정답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물론 위의 대화에서도 나왔던 말입니다. 정답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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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짝꿍(깐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생 동안 외롭지 않을 테니깐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오른쪽·이정재)과 오일남 할아버지(오영수).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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