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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Nov 24. 2022

삶의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폴고갱의마지막유작 #우리는어디서왔습니까 #삶에서길을잃었을때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긴 제목의 그림은 높이 약 140cm, 폭 4m에 이르는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대작입니다. 고갱은 왼쪽 상단 구석에 원래 프랑스어 제목인 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를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선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철학적 화두를 제목으로 가진 이 그림은 고갱(1848~1903)이 문명 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 타이티를 도피처로 방문했을 때 그가 그렸던 인생의 마지막 유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그는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그를 나병환자로 생각할 정도로 그의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시력이 나빠 반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도 못했습니다. 고갱은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기고 결심하고, 한 달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지막 남은 열정과 예술의 혼을 이 그림에 모두 담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탄생, 삶, 그리고 죽음의 세 단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그림은 두루마리 방식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봐야 스토리가 보인다고 합니다. 오른쪽 잠자는 아기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가운데 서서 선악과를 따는 성인은 '우리가 무엇인지?'를, 오른쪽 죽음을 앞둔 노인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암시하도록 그림의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노인이 절망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또한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못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갱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이 수수께끼 같은 이 그림에 대해서 그는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자신의 작품이 명상적으로 감상되고 느껴지기를 원했으며, 그가 평소 헛된 것이라고 여기는 언어로서 작품의 정의를 내리는 걸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목처럼 그의 삶과 예술혼이 담겨 있는 대작을 감상하다 보면 거꾸로 우리들에게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되묻는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올바른 질문은 언제나 삶을 올바르게 이끌기 때문입니다.


** 선악과(Vanitas) :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다는, 인생무상의 뜻으로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사실 위의 세 가지 질문은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즐겨 썼던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죠. 법정 스님 또한 "인간은 늘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런 물음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질문을 해야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유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유진이 오대수에게 던진 명대사 -




마르셀린 버트란드(엄마), 존 보이트(아빠)와 함께 있는 앤젤리나 졸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매우 불운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인 존 보이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한 대배우였는데 그녀가 2살 때 동료 배우와 불륜을 저질러 어머니와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오빠와 졸리를 돌보며 힘든 생계를 이어나갔죠. 가난과 고립에 시달리던 졸리는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렸고,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결국 자퇴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녀는 더욱 깊은 상실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GIA>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골든 글로브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이 영화는 80년대 중성적인 매력으로 각광을 받던 슈퍼모델 지아 커렌지의 비극적인 일생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인해 마약에 중독되어 결국 26살 때 삶을 마감했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졸리는 첫 번째 남편 조니 리밀리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자유>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졸리는 주인공인 위노라 라이더보다 더 주목을 받으면서 골든 글로브는 물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어진 졸리의 기행으로 두 번째 남편인 빌리 밥 손튼과도 이혼하게 됩니다. 그 후 <툼레이더>에 출연해 액션배우로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고, 모든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해서 최고의 액션배우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죠.



이 영화는 그녀에게 중요한 삶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이 영화를 통해 연기 호흡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까지 이른 상황에서 맡은 배역은 아이러니하게 애틋하기 그지없는 부녀 관계였습니다. 실제 그들 간의 악화된 상황이 촬영과 오버랩되면서 서로가 눈물 범벅이 되어 촬영 중단까지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 촬영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고, 이 부녀는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죠.



길을 잃고 방황하던 졸리의 삶을 극적으로 바꾼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툼레이더> 촬영을 통해 캄보디아를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은 불행하다고 굳게 믿으며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과거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가득했죠. 자신이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이들에게는 생사가 달려있는 것들이었고, 세상에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에 그간 우울함과 비관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삶이 후회를 넘어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졸리는 깨달음에만 그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10억이 넘는 돈을 유엔 난민 기구에 기부했고,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도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봉사활동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그동안 공허하게만 살아오던 자신의 삶에 드디어 살아갈 목표가 생겼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그간의 우울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밝음을 찾아가던 어느 날 졸리는 고아였던 한 아이를 발견하고,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 아이를 입양해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죠. 이후 졸리는 그녀를 황폐화시켰던 술, 마약을 비롯한 모든 행위를 끊었다고 합니다. 졸리는 봉사라는 한 차원 높은 목표 설정 및 실천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찾게 된 것이죠




살다 보면 가끔은 삶의 방향 키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가면(personna)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군인가?'라는 개념과 연결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이 원하는 혹은 타인이 정해놓은 행복이나 성공의 기준을 쫓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애초부터 나라는 기준보다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오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죠. 급기야 번아웃과 매너리즘, 무기력감이 함께 몰려와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저마다 버겁고 치근치근한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버거워도 '영차영차' 힘을 내며 살아가야 하니깐요. 덜어내고 싶어도, 내려놓고 싶어도,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더 이상 꿈꾸지 못하게 하는 사회 환경도 문제입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MBTI, 에니어그램, 버크만 진단, DISC 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은데 이 또한 자기 성격이나 성향 파악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 즉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있어 철학적 세 가지 질문은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업도 사명(mission), 비전(vision), 핵심 목적과 가치(core purpose & value) 등을 수립해 원하는 방향을 나아가듯 우리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내면의 숨겨진 욕구와 열정들을 끄집어 내야 할 겁니다.


출처 : Pixabay


삶의 길을 잃었을 때는 잠시 멈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재충전을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향하는 곳이 내가 정말 가고 싶어 하는 곳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가야 할 곳이라면 다시 발을 내디디면 되는 것이죠. 혹시 혼자서 길을 찾기 어렵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 길을 찾기는 어려운 법이죠.


걷더라도 너무 앞만 보고, 위만 쳐다보고 걸으면 안 됩니다. 나보다 앞서고 올라선 사람들과의 비교는 늘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아래도 살펴야 합니다. 앤젤리나 졸리가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느낀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보다 더 힘들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방향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방향만 제대로 찾는다면 원하는 목적지까진 조금 느리더라도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누가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없다고 하더군요. 행복이 길이기 때문이죠. 혹시 길을 잃었다고 자책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방향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따라왔을 뿐이고, 또 계속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바로 그게 바른 길이야. 넌 어디든 네 의지로 갈 수가 있어. 올바른 길이란 진리는 없어. 그러니 네가 스스로를 믿고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단다.’ -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


빌 게이츠는 일 년에 두 번 자기만의 공간에서 '생각의 주간(Think Week)'을 갖는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앞으로의 일과 삶의 방향을 점검한다고 하죠. 어쩌면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 않을 때,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혼자만의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은 의도적 휴식이자 적극적 고독일 겁니다. 단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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