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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Feb 25. 2021

세상을 현명하게 보는 방법

해석 수준 이론의 이해 (망원경 vs 현미경)

국민학교 시절, 봄소풍 전날은 다음 날 있을 소풍에 대한 설렘과 기다림으로 잠 못 이룰 때가 참 많았다. 평소 먹지 못하는 김밥, 과자, 음료수, 계란 등 가방에 잔뜩 싸들고 목적지로 출발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목적지라고 해봐야 인근 야산이었는데도 가는 동안 뭐가 그렇게 좋은지 가방에 싸온 주전부리를 몰래 꺼내 먹으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수건 돌리기, 장기자랑, 보물찾기 등 늘 똑같은 레퍼토리였지만 우리들은 학교를 떠나 자연에서 평소 못 먹던 걸 실컷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소풍 당일은 전날의 설렘과 기다림에 비해 그냥 하루 학교 일과처럼 단체 행동을 해야 하고, 소풍날 벌어지는 각종 게임과 장기자랑은 내성적 성격 탓에 부끄럽게 참여했고, 그토록 기다리던 점심시간도 김밥이나 계란, 음료수를 순식간에 먹고 나면 배가 불러 얼마 먹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봄 소풍의 기억은 늘 '추억의 보정 현상'처럼 좋게만 포장되어 기억나는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 가끔씩 떠나는 해외여행 또한 국민학교 봄소풍처럼 기다림은 늘 설레고 좋았던 것 같다. 특히

가기 전 목적지 주변의 관광지와 맛집, 숙소, 여행 코스 등을 계획하고 관련 자료들을 탐색할 때는 설레기도 하고, 빨리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며칠 앞두게 되면 여행 소품, 옷가지, 여권, 기타 등등 뭐 그리 가져갈 게 많은지? 무지 큰 캐리어에도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짐의 양이 많은 것에 놀라게 된다. 막상 당일이 되면 휴대폰 로밍 신청, 탑승 절차, 여권 확인 등 번거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한다. 대장과 위장은 더 민감해지고, 낯선 환경과 음식, 그리고 시차로 인한 젯 래그(jet lag)까지 겹치니 즐거워야 할 여행은 여독만 더 쌓이게 된다. 


어찌 보면 국민학교 시절 봄소풍이나 성인이 된 후 떠난 해외여행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바로 여정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어하던 기억 때문은 아닐까. 첫사랑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동창회 모임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만남의 순간보다는 만나기 전 첫사랑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기다림의 설렘이 더 큰 것은 아닐까. 

 



이렇듯 어떤 일이든 멀리 있을 때와 막상 눈앞에 닥쳤을 때 여러분의 느낌과 평가가 달라진 적은 없는가? 예를 들어 해외여행을 간다고 할 때 1) 6개월 후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생각할 때와 2) 2~3일 후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가? 똑같은 질문이지만 시간적 거리의 차이만 달라지는 것이다. 


6개월 후에 여행을 간다고 생각할 때에는 먼 거리로 생각되어 여유 있게 휴식을 하러 간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2~3일 앞으로 여행 일정이 다가오면 여행 소품 및 옷가지, 여권 챙기기부터 호텔 및 비행기 예약을 체크하고, 또한 휴대폰 로밍 신청과 더불어 여행 일정을 확인 등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구체적이고 과정에 초점을 두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시간적 거리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이처럼 인식하는 대상에 따른 시간적 거리에 따라 후속되는 판단, 태도 행동 등이 달라지는 현상을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이라고 한다. 해석 수준 이론은 초기에는 시간적 거리 연구에서 시작했지만 그 이후 사회적 거리, 공간적 거리, 확률적 거리 등으로 확대되었다. 해석 수준 이론에서는 이 4가지 거리를 '심리적 거리(psychologocal distance)'라고 지칭한다. 


해석 수준은 상위 수준과 하위 수준의 해석으로 구분한다. 상위 수준은 추상적 의미 본질적이고 목적적인 것에 주목하는 반면, 하위 수준은 구체적인 방법표면적이고 즉각적인 속성을 중심으로 의사결정과 평가를 진행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과 난민에 대한 소식을 TV를 통해 볼 때는 생명에 대한 심각성과 존중과 같은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에 가서 보면 TV에서와 달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일한 현상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식별을 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단순히 배가 고파 씹고 삼킨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영양분을 섭취하는 고결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사람들은 심리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되고, 이러한 식별 수준, 곧 해석 수준 차이를 통해 행동 반응과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규명하는 이론이 바로 '해석 수준 이론'이다.




초기의 해석 수준은 시간적 거리에 의해 변화하는 해석 방법과 선호도 연구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동일한 대상임에도 시간적 거리가 멀어지면 사람들은 바람직함(desirability)과 중심적·핵심적·결과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선택하고, 시간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실행 가능성(feasibility)과 주변적·비본질적·과정 중심적 속성에 더욱 가중치를 두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즉, 시간적 거리가 멀수록 상위 수준 해석에 가깝고 시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하위 수준 해석에 근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수준의 해석은 행위의 근본적 목적인 '왜(Why)'에 중점을 두는 반면, 하위 수준 해석은 구체적인 방법인 '어떻게(how)'에 중점을 두게 된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해외여행이 6개월이 남았다고 생각할 때(시간적 거리가 멀 때)는 여유 있게 휴식을 하러 가야 한다는 '추상적이고 바람직함'으로 해석하지만, 해외여행이 2~3일 남았을 때(시간적 거리가 가까울 때)는  각종 여행 준비 등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는 말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이 대부분 겪는 심리적인 변화 또한 비슷하다. 결혼을 약속하거나 프러포즈를 받을 때만 해도 모든 남녀들은 핑크빛 결혼생활의 미래(바람직함)에 대해서 막연한 행복감을 가지게 된다. 이제 데이트한 후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 평생 동안 내 편이 생긴다는 설렘과 안정감에 행복한 미소가 퍼져나간다. 


하지만 점점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생각지 못한 작은 현실(실행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단점들도 현저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내가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일까?'라는 회의감마저 커진다. 나 혼자일 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마저도 큰 문제로 부각되어 보이기도 한다. 일본 작가 유이카와 게이는 이런 결혼을 앞둔 남녀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라 명명하기도 했다.


초기의 해석 수준 이론은 시간적 거리에서 시작했지만 연구가 거듭될수록 사회적 거리, 공간적 거리, 확률적 거리 등으로 확대되었는데 통상적으로 이 모든 거리를 포함해서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라고 칭하고 있다. 소비자 선택의 변화를 보면 TV를 구매할 때 사전예약과 즉시 구매를 할 때 소비자 태도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사전예약을 할 때는 고품질 대안(high-quality option)을 많이 선택하고, 즉시 구매 시에는 저가격 대안(low-price option)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KT에서 판매된 아이폰 3GS 판매량을 분석해 본 결과 내부 메모기 32G 모델은 즉시 구매 기간에 비해 사전예약 기간 시 훨씬 많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여행 준비를 할 때 '바로 지금' 또는 '6개월 후'냐에 따라서 여행의 유형이 바뀐다고 한다. 먼 미래 조건에서는 중심 속성인 즐거움(Hedonic)을 더 선호하고 옵션 선택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적 거리가 가까우면 부차적인 것의 선호도가 높은 반면, 시간적 거리가 멀어지면 본질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 연구에서 보면 사회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동료 추천의 영향력을 조사했다. 결과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에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동료의 추천'이 더 큰 영향을 미쳤고, 먼 미래에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사회적 거리가 먼 동료'의 추천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추천이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해석 수준을 알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삶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사물을 ‘현미경’으로 볼 것인지, ‘망원경’으로 볼 것인지는 개인이 가진 해석 수준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은 숲을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은 나무를 집중해서 보게 된다. 사람을 대하고, 평가하거나 상품을 구매할 때 우리는 본질적보다는 비본질적 요소에 초점을 두기도 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는 먼 미래의 바람직성만 생각하게 되지만 당장 시작하게 되면 구체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근시안적인 사물과 현상을 원시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가족과 여행을 갈 때도 가능한 멀리, 낯선 곳을 선택해서 떠나보자.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을 일부러 찾아 나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 통제나 자기 조절에 있어 상위 수준의 해석을 하게 되면 충동을 더 많이 억제하고, 더 많은 인내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늘 가까이 있는 ‘일상’이란 우물에서 벗어나 가급적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볼 때 삶의 긍정적 측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숲과 나무, 망원경과 현미경, 둘 중의 어느 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가? 이제부터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때로는 따로,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반대로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바로 다양한 관점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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