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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30. 2022

성장에 지친 직장인을 위한 헛헛한 위로

#성장추구형 #안정추구형 #승진과 평가 #번아웃 #탈진

사는 것은 고통을 받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은 그 고통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는 거예요. (프리드리히 니체)


직장인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직장 상사의 마음을 움직여 상사와의 관계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상사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어 하는 '성장 추구형'입니다. 다른 하나는 직장 생활에서 온순한 양이 되어 무기력하게 상황을 수용하고 노력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보내는 '안정 추구형'이죠. 얼핏 보면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성장 추구형'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인정과 성장의 욕구는 직장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원초적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원하고 추구한다고 '성장 추구형'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능력은 안되는데 의욕만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의욕이 병행되어야만 실질적인 '성장 추구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장 추구형'과 '안정 추구형' 둘 다 나름 자기만의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장을 추구하는 유형일수록 현실과 이상과의 큰 괴리 앞에서 자주 무너지고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성장 추구형의 경우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늘 쫓기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의 직속 상사와의 적합도(適合度), 아니 상사와의 궁합(宮合)이 맞지 않아 평가나 승진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로 인한 우울증, 번아웃, 무기력, 불안감, 절망감, 수면장애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성장 추구형의 경우 안정 추구형처럼 무기력하지만 나름 상황을 수용하고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선택해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오른쪽 주머니에 사직서를 매일 넣어두고, 술자리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ㅅㅂ, 더러워서 직장 때려치우고 싶다", "까짓것 그만두면 되지"라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하지만 삶의 무게와 책임을 짊어진 가장의 입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건 차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홀로 애끓는 마음을 딱히 표현할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추락하는 건 날개가 없다고 하지요.


출처 : Pixabay


그럼 안정 추구형은 현명한 직장인일까요? 그것 또한 아닐 겁니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는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가장 원초적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평가에서, 승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정 추구형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과 욕심을 비우지만 마음속에는 늘 성장 추구형의 욕구가 남아 꿈틀거립니다. 기회가 닿아 자신을 인정하는 상사를 만나게 되면 안정 추구형도 성장 추구형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면 성장 추구형으로 사는 게 좋은 걸까요? 아니면 안정 추구형으로 사는 게 좋은 걸까요? 이분법이라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28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름 제가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다르다고 너무 비난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면 된다는 것이죠.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성장을 추구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안정을 추구하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장 추구형으로 살았습니다. 30대 초반에 점포의 부점장을 맡았고, 30대 후반에 점장을, 그리고 40대 후반에 본부장이란 중책을 맡았습니다. 관리자로 근무할 때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힘도 들었지만 서로 존대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일하다 보니 나름 얻은 경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속 승진을 하면서 직장 생활이란 장거리 마라톤에서 너무 전력 질주를 하다 보니 중책을 수행할 50대 초반에 우울증과 번아웃이란 불청객이 함께 저를 찾아왔고, 온전한 제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 퇴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요즘 결혼한 친구가 미혼 친구에게 하는 진심 어린 충고가 있다고 합니다. "결혼은 꼭 해야 한다"라는 말이죠.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나만 죽을 수 없잖아!" 일명 물귀신 작전이죠. ^^ 이쯤 되면 결혼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기혼 친구의 진정 어린 충고를 미혼 친구는 최대한 빨리 알아차려야 할 겁니다. 하지만 미혼인 친구는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를 선택하고 싶은 거죠.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법보다 더 강력한 관습의 문제입니다. 관습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은 예로부터 법적인 효력보다 더 강력한 관습이란 사회적 규범을 암묵적으로 따르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결혼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국가의 존망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강요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 Pixabay


저는 퇴직 전 임원으로 근무할 때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었습니다. 승진과 평가, 그리고 상사의 인정에 눈멀어 너무 앞만 보고 살지 말라고 말이죠. 그리고 기회가 되더라도 가급적 임원은 달지 말라고도 충고를 했습니다. 일부 후배들은 결혼 문제처럼 '지는 다 해놓고 후배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한다'라고 속으로 저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겁니다. 능력과 기회가 닿아 임시직(?)을 단다면 말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임원이라는 무거운 책임과 역할을 버거워하며 심(心)만 쓰다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한 선배들을 저는 많이 목도했기 때문에 가급적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오래오래 직장을 다녔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습니다. 퇴직 시점이 공교롭게도 인생에서 가장 지출이 많은 시기라는 게 더욱 안타까웠죠. 존경했던 한 직장 선배의 말처럼 직장 생활은 '짧고 굵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 하는 사람이 현명하다는 말이 여느 때보다 진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우리 사회는 관습적으로 맞춰 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마치 그 사람이 사회에서 도태된 것인 마냥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데도 주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믿어왔던 가족들조차 이런 시선을 던진다면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없어지죠. 이때 필요한 건 바로 좌절과 상심에 대한 감정의 면역력일 겁니다. 크고 작은 부정적인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소화력이 필요한 것이죠.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왔던 자신의 삶의 오르막길을 잠시 멈추고, 내딛던 길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향해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길 때입니다.


"이 정도면 수고했다. 그간 고생 많았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라는 것이죠. 이럴 때 자신의 인생은 초라한 내리막길이 아니라 설레고 가슴 뛰는 소풍길이 될 수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라는 에세이를 보면 인상 깊은 얘기가 나옵니다.


평소 마라톤 경기에서 선두 그룹에서 가장 먼저 치고 나온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속도에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선수의 속도에 자기 속도를 편승한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죠. 마라톤 선수에게 있어 레이스 끝까지 자신만의 스피드와 페이스를 유지하는 지구력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성장 추구형'이나 '안정 추구형' 중에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능력과 형편에 맞는 속도를 찾고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부의 추월차선'이 정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서행차선'이, 아니 '인도'가 정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페이스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정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abay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차를 몰다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지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일어납니다. 터널 시야에서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능력이 저하됩니다.


등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험준한 산을 오르다 보면 앞사람의 뒷모습과 등산로만 쳐다보며 산을 오르는 터널 시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인 채 정상을 오르면 고생 끝에 찾아오는 꿀맛 같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죠. 하산을 할 때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란 고은의 시처럼 등산할 때 나타났던 터널 시야가 어느새 사라집니다. 계절에 따라 형형색색 옷을 바꿔입는 등산로 주변의 이름 모를 들꽃과 야생초, 그리고 나무들의 늠름한 자태도 선명하게 보이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이 교차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며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마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직장과 가정이라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쉬지 않고 과속으로 달리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쉼과 여유라는 적색 신호등을 만나면 잠시 멈춰야 하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휴게소를 만나면 들러서 쉬기도 해야 합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불확실성과 변동성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바로 쉼과 여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며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희극 배우 에디 캔터의 말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경관뿐만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작가님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브런치를 통해 많은 좋은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다가오는 2023년 계묘년에는 모두들 행복하시고, 원하시는 일들이 성취되는 한 해가 되길 기원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_)



오늘의 추천곡 : Bruno Mars -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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