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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26. 2022

나만 시간이 빨리 가나요?

#당신과는 천천히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 #시간 압축 효과 #새로움


퇴근 시간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집에만 오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쉬고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사랑의 꿈에 취해 뒤척이는 밤이라도

당신과 함께 순간만은 천천히

당신과는 천천히

당신과는 천천히 (중략)


장범준의 3집 <당신과는 천천히>라는 노래 가사를 들으면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듣는 사람의 마음속을 후벼파는 것 같습니다. 퇴근 후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주말과 휴가는 왜 항상 빨리 지나가는 걸까요? 똑같은 달인데 12월은 빨리 지나가는 걸까요?


TV를 보다가 지긋이 나이 드신 한 여성 노인분께서 "눈을 감고 떠보니 벌써 90세가 되었다"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팔순이 훨씬 넘으신  모친 "야야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구나. 눈 떴다 감으면 저녁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시간이란 게 나이 가속도가 붙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됩니다. 자신이 장자인 것조차 잊고 즐겁게 날다 문득 깨어나 보니 다시 장자가 되었죠. 그렇다면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된 걸까요?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걸까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화두를 던집니다. 이렇듯 인생의 시간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의 고사처럼 꿈인 듯 생시인 듯 부지불식간에 흘러가고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 시간은 또 다르게 흘러간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10대는 10km,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의 속도로 간다는 뜻이죠. 저는 현재 50km 중반 속도로 인생을 질주 중입니다.


낯선 곳을 차로 여행할 때도 갈 때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데 올 때는 같은 길이지만 더 빠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 물리적인 시간은 하루 24시간, 일 년은 8,760시간인데 주관적 시간은 왜 사람마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요?


출처 : Pixabay

미취학 아동일 때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가셔서 저는 단칸방 마루에서 온종일 어머니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해질녘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저는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고 있는 저를 깨워 일으켜서 밥도 챙겨 먹이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아주셨죠. 어머니를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애써 잠을 자지 않으려고 발버둥치 어머니는 피곤하신지 이내 소등을 하셨습니다. 그렇제 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지나고 나니 그 때부터 시간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시행착오가 많았던 이십대를 지나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는 삼사십대가 도래합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 직장내 생존경쟁, 아파트 평형 확대, 노후자금 준비 등 다양한 삶의 이슈들이 이 시기에 집중됩니다. 심신이 가장 지치는 시기이기도 하죠. 오십대가 되면 사회적 죽음인 퇴직을 경험합니다. 그 이후 인생이막을 준비하며 노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어찌나 시간이 빠른지 장자의 호접몽이란 고사가 자꾸 눈앞에 어른 거립니다.


 '시간 수축 효과(time-compresson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지각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가는데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심리를 말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시간의 수축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를 인식하는 시간의 길이와 속도가 뇌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젊은 시절 겪은 새로운 경험은 강렬하게 각인하는 반면 중년 시절 겪은 익숙한 경험은 일상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다우베 드라이마 교수는 시간 수축 효과의 또 다른 이유로 '생체 시계의 변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생체 시계는 흥분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영향을 받는데 도파민은 젊었을 때는 왕성하게 분비되는 반면 나이가 들수록 현격하게 감소 한다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젊었을 때는 도파민의 분비가 왕성해져 생체 시계가 빨리 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체 시계가 느려짐에 따라 행동과 생각도 느려져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시간의 가속도에 대한 또 다른 연구가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냐 아니면 익숙한 경험이냐에 따라 시간의 가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다른 말로 기억의 양이 시간의 속도에 비례한다는 뜻이죠. 어릴 때는 모든 순간이 첫 경험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기억의 양이 엄청 많아지게 되고 기억의 밀도가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반복된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뇌에서 처리하는 정보의 양이 줄기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하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삶의 경험이 매우 적은 아이들의 경우 사소한 외부 환경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난생처음 부모님과 동물원에 놀러 간 어린 자녀의 경우 매 순간 마주하는 낯선 동물들의 모습을 각각 하나씩 개별적으로 기억 속에 저장을 하게 됩니다. 반면 어른들의 경우 자주 동물원에 갔기 때문에 낯설거나 새로운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원에서의 여정을 하나의 큰 묶음으로 기억 속에 저장하게 되는 것이죠.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공항에서 수속하는 절차부터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매 순간들을 개별적으로 기억을 하게 됩니다. 반면 해외여행에 익숙한 어른들의 경우 공항에서의 귀찮을 수속 절차와 지루한 비행시간들을 '해외여행 절차'라는 큰 묶음으로 기억을 하기 때문에 같은 여행이라고 하더라도 개별적 경험을 하는 아이들과 묶음으로 기억하는 어른들이 지각하는 시간의 길이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출처 : Pixabay


칩 힙스와 댄 힙스가 지은 《순간의 힘》을 보면 도르트 번첸(Dorthe Berntsen)과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 연구진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과거를 떠올렸을 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기억은?"이라는 질문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 결과 자녀의 출생, 결혼, 초등학교 입학, 대학시절, 연애, 누군가의 죽음, 퇴직, 부모로부터의 독립, 부모의 죽음, 생애 첫 직업 등 총 10가지가 답변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답변을 분석해 보니 10가지 중 6가지가 15세부터 30세에 일어나는 일이며 대부분 생애 전반부에 일어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를 '회고 절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떻게 20%로 안 되는 짧은 세월이 우리 기억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것일까요? 회고 절정의 핵심은 바로 '새로움에 대한 경험'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 육아, 대학시절 연애, 부모로부터의 독립, 퇴직 등은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생애 핵심 사건들(lifetime ciritical incidents)'인 것이죠. 이렇듯 생애 핵심 사건들은 매우 강하고 선명하게 기억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새로움에 대한 경험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움'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베일러 의대의 바니 파리야디와 데이비드 이글먼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련의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사진을 일정 시간 동안 보여준 다음 사진을 보여준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이었죠. 세 번 갈색 구두 사진을 보여주고 그다음 알람시계 사진을 보여주고, 그 이후 세 번 갈색 구두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보여준 시간을 측정하였습니다.


결론은 알람시계를 보여준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가 노출된 시간은 동일했죠. 이것을 '괴짜 효과'라고 불렀는데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갈색 구두에는 뇌가 반응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인 알람시계에는 뇌가 활성화되면서 기억을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즉, 기억의 밀도가 높아진 것이죠. 밀도가 높으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움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킵니다.


45미터 그물망에 떨어지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30%의 피실험자가 실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번지 점포를 처음 할 때도 우리는 떨어지는 순간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이 또한 새로움에 대한 경험인 것이죠. 이렇듯 새로움에 대한 경험은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움에 대한 경험은 기억의 밀도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화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부자인 애드워드 콜(잭 니콜슨)과 가난한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라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명의 노인이 나옵니다. 이 두 노인들은 병실에서 친해지면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버킷리스트로 만들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병원을 탈출합니다.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줄이기 위해 두 노인은 버킷리스트를 한 가지씩 도전하면서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의 체험과 경험을 통해 삶의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움에 대한 경험들이 그들의 생체 시계를 길게 늘여 주관적 시간을 왜곡시킨 것이죠.


출처 : Pixabay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수록 빨라지는 시간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경험을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처음 공원을 놀러 갔을 때의 첫 느낌과 여김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듯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는 개인의 성향'새로움 추구 경향(novelty seeking tendency)'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유형은 도파민 분비가 왕성하고, 수치가 높으며, 기존의 익숙한 환경과 인간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인간관계를 탐색하고 경험함으로써 보상을 받는 것을 즐깁니다. 탐구심과 호기심도 많으며, 자주 돌아다니려고 하고, 흥분도 잘 하는 편이죠.


새로움 추구 경향이 높은 사람들은 여행을 가더라도 이전에 갔던 여행지가 아닌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말로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쓰는 유형이며,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평소에도 실행으로 옮기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움 추구 경향은 새로운 자극을 통해 기억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시간의 길이를 늘리는 것이죠.


출근을 하더라도 기존에 이용하던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그리고 익숙한 도보 길보다는 낯설고 생경한 길로 걸어가보는 것도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음식, 패션, 여행지, 취미활동, 어학공부, 인간관계, 봉사 활동 등도 이러한 경향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면 기존의 익숙한 환경을 새로운 상황으로 인식하고 재해석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겨울에 눈이 내리면 '어! 눈이 오네"가 아닌 "야! 눈이 내리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설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영화도 한편 봐야겠네!"라고 말하면서 상황을 재인식하고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하고 반응하면 새로운 경험으로 바뀌는 매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움 추구 경향에 덧붙여 그날 그날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한 것들을 기록하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이 어제와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죠. 매일 쓰는 일기의 내용도 다르듯이 기록된 내용을 보면 매일매일이 생각과 태도에 따라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다르게 기억하면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 새로움의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절대 주저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쑥쑥 커가는 자녀들은 절대 부모들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만약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자녀들이 다 성장한 후에는 시간 수축 효과를 제대로 체감하게 될 테니까요. 이제부터 살을 새로움의 영역으로 가득 채워 슬로모션 영상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네스 도전자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던진 조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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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랭크를 하세요. 2분이 엄청 느리게 갈 겁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 거주하고 있는 조지 후드(George Hood) 할아버지는 지난 2018년 60세 나이로 무려 10시간 10분 동안 플랭크 자세를 유지해 비공식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kungfu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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