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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23. 2022

인생은 한판 잘 놀다는 가는 소풍이다

#중년 남성의 외로움 #코슈족 #젖은 낙엽 #삼식이 #회사형 인간


1933년 홋카이도 출신의 의사 작가이며, 《실락원》의 저자이기도 한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코슈(孤舟)》라는 책은 2010년 일본에 출간되자마자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의 경기가 불황인데도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죠. '고독한 배'라는 뜻의 한자인 코슈(孤舟) 중년 퇴직 남성의 고독그려낸 책입니다. 당시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노인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시점이었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고독한 쪽배처럼 퇴직 후 인생이막을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중년 남성들의 어둡고 힘든 일상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해 독자들의 많은 공감대를 자극했고,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코슈(孤舟)》는 대형 광고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낸 주인공 이치로가 퇴사를 하면서 겪게 되는 일상을 우울하고 처절하게 그려냅니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처럼 주인공 이치로는 오직 회사에서 성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회사형 인간'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취미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딱히 없었죠.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이한 주인공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비참합니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그에게 그간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까지 소홀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회사에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주인공은 가족의 품으로 복귀하지만 환대는커녕 가족들의 냉대와 무관심은 계속되고, 그로 인해 삶의 목적마저 잃은 그는 눈물과 후회로 무쓸모의 인생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동안 친한 척하던 직장 부하직원들도 그를 외면합니다.  업무로 알게 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마음을 나눌 친구조차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설상가상 남편의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에 걸린 아내는 참다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참기 힘든 하루를 견디는 것뿐입니다. 회사형 인간으로 존재할 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을 얻은 것처럼 보였지만 퇴직 후 그가 깨달은 것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었던 것이죠. 이 소설은 보이지 않은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아 많은 소중한 것들을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잖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이 책의 제목을 착안해 '코슈(孤族)'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이후 '코슈족(孤舟族)'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슈족은 은퇴 이후 인생이막의 삶을 버거워하는 남성들이 정년퇴직 후 집에서도 정붙일 공간도 없이 사회에서 병균처럼 취급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현재 한국도 '코슈족'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전쟁 후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출처 : Pixabay


전후 세대로서 국가를 재건한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큰 인구 성장에 기여했고,  헝그리 정신으로 한국의 눈부신 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경험하면서 살아온 주역 세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당시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청년기에는 한강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직업을 가지면 곧바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을 당연시 여겼습니다. 대부분 4인 가족이 주축을 이뤘죠. 이들에게 있어 대학 진학은 곧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의미했습니다. 자식들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고 모든 걸 희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산업 성장 수준에 비해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 환경은 한참 뒤처져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직장인들은 가족 중심이 아닌 회사 중심형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을 더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억누르고, 내일로 미루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따위는 후순위였고, 잘 살기만 하면 그들의 삶을 충분히 보상받을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퇴직을 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잃어버린 가족과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말이죠. 자식은 자식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기존에 구축해놓은 삶의 영역을 침범당하길 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삼식이'와 '젖은 낙엽'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부모님이 시키고, 학교가 시키고, 사회가 시키는 일들만 하고 살아오다 보니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겁니다. 제대로 삶을 즐기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해야 할 말은 줄이고,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말이죠.


삶을 희생해서 얻는 성공은 허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너무 거창한 목표를 하지고 있거나 아니면 목표가 없는 양극단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있다면 목표의 대부분의 돈과 관련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게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돈을 벌면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안되겠지요.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때는 불안하기 때문에 돈을 충분하게 환전해서 갑니다. 쓰다 남으면 다시 환전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삶의 마지막 여정에는 충분한 돈이 남아 있더라도 환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여정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좋은 기억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 때문에 삶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삶의 여정에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피곤에 절어 파김치가 된 내가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고, 친구와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요? 먼저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면 힘든 삶의 여정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이 저절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런 일을 계속해서 찾다 보면 내 삶이 충만해지고, 행복도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은 애완묘와도 같습니다. 다가서면 도망가지만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출처 : HULT : BLOGS


이른 나이에 파킨슨병을 얻은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김혜남 작가는 그의 저서 《만일 내가 삶을 다시 산다면》에서 현재 자신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을 '지식적 통찰'이라고 하는데 이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아! 그렇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끼며 그동안의 슬픔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감정적 통찰'이라고 하는데 이 감정적 통찰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살면서 감정적 통찰을 더 많이, 자주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더 나은 삶의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크리스토퍼 몰리는 '세상에 성공은 한 가지뿐이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만든 정답과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말이죠. 결국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성공이라는 겁니다.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물아 일체(物我一體) 사상을 주창한 장자는 그의 《소요유(逍遙遊)》편에서 인생은 '잘 놀다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세부 내용은 더 심오합니다만 '목적 없이 거닐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라는 의미의 《소요유(逍遙遊)》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잘 놀다 간다'라는 뜻은 돈이나 명예, 권력 등 세상이 만들어놓은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코슈가 된 지금의 저는 장자의 얘기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즐거운 소풍을 어떻게 잘 놀다 가실 건가요?


표절 시비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여하튼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희열의 <공원에서>를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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