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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r 04. 2021

인생의 리셋이 필요할 때

모멘텀과 트리거의 유발

내가 지방 도시에서 점장으로 근무할 때 일을 정말 잘하는 여성 직원이 한 명 있었다. '3D 직업'이라고 소문난 유통업의 특성상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남성 직원보다 더 추진력이 있고, 적극적이며, 심지어 희생정신까지 겸비한 직원이었다. 그 여직원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방 도시의 점포 특성상 관리자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고객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중간 관리자 1명이 3개월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업무 공백이 발생했는데 그녀는 3개월간 한 번도 휴무를 하지 않고, 업무 공백이 없도록 매일 출근했다. 그때 그녀는 계약직 신분이었고, 기혼자였다. 


농담 삼아 "OO님,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근로기준법 위반입니다."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였다. 물론 점장 입장에서 너무나 고맙기도 했고, 언젠가 그녀가 정규직 채용에 응시할 때 꼭 합격을 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다른 지방 점포로 부임한 뒤에 정규직 채용 모집 공고가 떴고, 난 익히 알고 있는 면접관 후배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꼭 채용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결국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었다. 물론 부정 면접은 아니었다. 될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또 다른 지방 점포로 부임했을 때 공교롭게도 그녀가 그 점포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직원은 열정적이었고, 2~3 사람의 업무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단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성격 탓에 그녀는 타인이 보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간에 큰 괴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또 하나의 단점은 바로 '리셋 증후군(reset syndrome)'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리셋 증후군'은 '컴퓨터가 오작동할 때 리셋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증상'을 말한다. 한 점포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회피해 다른 점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점장님, 저 새로운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난 더 이상 설득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성격도 야무지고, 일도 잘했지만 자신의 무기력함을 극복하지 못한 그녀의 설득에 난 결국 그녀를 타 점포로 전배를 보내고야 말았다. 




이렇듯 주변의 환경을 바꾸고 싶거나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에 한 번쯤은 인생의 리셋(reset)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라면 '리셋 키'를 누르거나 재부팅을 하면 되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핵심 키가 없다. 때로는 하드 포맷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 오래 사귄 애인과 권태기가 지속되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도탄에 빠진 사람들, 인간관계에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 살쪄서 힘든 사람들, 과거에 큰 실수를 한 사람들, 뭔가 큰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까지 우리들은 한 번씩 리셋 키를 누르고 싶어 한다. 




사실 인간의 뇌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리셋 키는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들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누르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은 일상의 루틴을 좋아하고, 그런 익숙한 상황에 편암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매년 새해 결심들은 작심삼일이 된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하는 사람들 중에 77퍼센트는 일주일, 19퍼센트는 2년 정도 결심을 유지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가던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고, 늘 집에서 먹던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우리의 뇌는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을 할 때 뇌의 두 영역이 활발하게 작동한다. 하나는 '목표 지향 영역(Goal-directed system)'이고 다른 하나는 '습관 영역(Habit system)'이다. 목표 지향 영역은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선택을 할 때 활발하게 움직인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이것저것 탐색하고 고를 때 많이 쓰이는 뇌의 영역이다. 습관 영역은 평소 루틴 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데 이는 뇌의 인지적 사용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처음 운동을 할 때, 우리는 이것저것 많은 운동 기구를 써보고, 사용하지 않던 몸의 근육들을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목표 지향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두 번 세 번 반복이 되면 습관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백반집에 가면 우리는 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시키게 된다. 가끔은 청국장도 시키지만 먹어서 후회할 수 있는 새로운 메뉴들을 시키는 경우는 흔치는 않다. 중국집에 가면 대부분 짜장면, 짬뽕, 볶음밥 순으로 메뉴를 시킨다. 바로 이것이 습관 영역에 해당한다. '인지적 구두쇠'인 뇌는 몸무게의 2% 수준이지만 사용하는 에너지의 경우 25%를 쓰기 때문에 가급적 습관적 선택을 통해 에너지를 아낀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일 잘하는 여직원처럼 '리셋 증후군'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낯선 생면부지의 점포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기존에 자신이 잘 구축해 놓은 업무와 관계의 영역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리셋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실행하도록 해보자.  


첫째, 리셋과 같은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즉, 습관적 영역을 벗어나 호기심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쉬운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은 게으른 뇌를 활성화시킴으로써 호기심의 영역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취미 활동을 만들고, 인간관계를 새로 맺는 것 또한 호기심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일이다. 호기심의 영역을 활성화시키면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리셋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게 된다.  


둘째, 습관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늘 가던 식당, 늘 사 입는 옷, 늘 먹던 음식들에서 벗어나 다른 식당, 다양한 종류의 옷과 음식을 시도해 보는 것을 말한다. 배스킨라빈스 31에 가서도 늘 고르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새로 출시되거나 인기가 있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새로운 시도와 경험은  목표 지향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이로 인해 뇌의 사용은 더욱 활발해진다. 


결론적으로 리셋이 필요하다면 굳이 그 여직원처럼 낯선 생면부지의 장소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리셋과 동일한 효과의 호기심 영역을 활성화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환경 설정을 만들고, 습관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 Press reset bu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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