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Mar 19. 2021

불행은 한꺼번에 오고, 은혜는 겨울에 자란다.

#시련 #역경 #IMF #구조조정 #겨울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

새싹을 틔우기 위해 뿌리는 겨우내 언 땅을 견뎌야 한다


'은혜는 겨울에 자란다(grace grows in the winter)'라는 말이 있다. '시련과 고난의 시기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이다'라는 뜻이 아닐까? 가으내 화려하게 수놓았던 잎들을 스스로 버림으로써 나무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최소한의 소비만 할 수 있도록 겨울 채비를 한다. 


봄에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우기 위해 뿌리는 겨우내 언 땅을 견뎌내야 하고, 줄기와 잎새는 차디찬 눈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맨살로 거센 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동면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언 땅속뿌리가 수분과 영양분을 머금어 생명을 유지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며 봄에 피는 꽃은 인내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생로병사의 삶처럼 모든 생명도 생명의 궤적을 따라간다.




97년 IMF 시절,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회사의 권고사직 형식으로 하나둘씩 정든 직장을 떠나는 걸 보면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평생직장은 물론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직원들을 내보낸다는 것은 그 당시 내게 있어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룹에서 주관하는 외생관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나는 자리가 바로 배정되지 않아 단기간 퇴직 T/F팀에서 퇴직 면담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퇴직 면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떠나는 선배들 대부분이 회사에서 빌린 주택 대출 금액이 퇴직금보다 오히려 커서 수령하는 퇴직금으로 상계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회사가 퇴직자들의 대출 연장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퇴직 T/F팀에서의 짧은 경험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난 트라우마처럼 밀려오는 슬픔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해 자발적 명예퇴직을 신청하고야 말았다. 외형적으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나의 무모한 태도에 많은 선배들의 만류가 이어졌지만 한번 뚫린 마음의 상처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희망 퇴직서를 작성했다. 


운이 좋게도 지금 직장에서 적임자를 구한다는 연락이 긴급하게 왔고, 속성 코스로 면접을 본 후 하루도 못 쉬고 바로 경력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전쟁터라고 불리는 직장생활은 여기서도 평탄하지는 않았다. 역시 끈과 빽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든 게 직장생활의 생태계였다. 업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존 직원들보다 더 오래 근무하고,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급여는 이전 직장보다 큰 폭으로 줄어 경제적 여유도 더 없었다. 성실하게 일하고, 적금하고, 착실하게 대출을 갚는 것 이외 별도의 재테크 활동은 꿈도 못 꿀 정도의 여유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행복은 혼자서 오고,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fortune comes singly, misfortune never comes singly)'라는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내용인 줄 알았다. 정신없고, 여유 없이 바쁘기만 하는 직장생활에서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극도로 높은 시점에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일곱 살이었던 큰 애가 집에서 놀다가 화장대 유리가 떨어져 발등을 찍어 깁스를 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둘째 딸아이가 끓는 주전자를 쓰러뜨리면서 전신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큰 아이는 잠시 친가에 보내고 아내는 딸아이 간병을 위해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인어른은 후두암이 말기 상태에 이르러 힘든 병고를 이겨 내고 계셨고, 그때 마침 모친도 위암 초기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셨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멘털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안전사고에 대해 아내에게 화가 많이 났고, 암에 걸리신 부모님들은 제대로 돌봐드릴 수 없다는 심정에 무기력까지 오게 되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걸까?'


비관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럴수록 부정적인 기운과 에너지가 내 안을 감쌌다. 내 안에 남아있는 아주 작은 긍정적인 기운마저도 사라졌다. 막장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내 인생에 닥친 것이다. 무기력했던 삶이 더 퍽퍽해졌다. 곪아서 터진 상처는 그냥 내버려 둬도 아물지만 마음이 생긴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았다. 아내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나 또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의 늪에 빠졌고, 생각의 엔진이 멈추지 않았다.




청소년 때나 하게 되는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이어졌다.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나는 해답을 찾기 위해 서점을 찾았다. 행복에 관한 책을 몇 권 샀다. 쉬는 날에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책만 읽었다. 술도 먹지 않았고, 인간관계도 완전 차단을 했다. 나만의 동굴이 필요했던 것 같다. 행복에 관한 책을 약 30권 이상 읽었다. 내용은 달라도 해답은 같았다.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일어나는 모든 불행도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매일 감사한 일 세 가지씩을 적다 보면 나중에는 감사한 일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지게 된다."




그때부터 난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점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내 삶의 반경에서 생기는 모든 불행한 일들을 다시 한번 조명해보게 되었다. 마쓰시다 전기그룹 창업주인 마쓰시다 고노케는 자신의 성공요인을 '하느님이 주신 3가지 은혜'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허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는다. 언젠가 반드시 닥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여정은 더욱 값지고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현재에 주파수를 맞추고 하루를 충실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현재가 지나면 과거가 되고, 현재의 결과가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으로 연결되어 있다.


'은혜는 겨울에 자란다'는 초두의 글처럼 잔잔한 파도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진정 꽃이 되려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만큼이나 시들어가는 꽃의 아픔도 함께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자고로 활짝 피는 것은 시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시듦을 통해 아니 그 시듦을 견뎌내면서 꽃은 진정한 성숙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은혜는 겨울에 자란다. 


작가의 이전글 얼굴이 예쁘면 매력이 반감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