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나 몸에 푸른 점을 새긴다

블루스(Bules)

by 윤이프란츠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재즈맨 블루스>를 보았다.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조지아주가 배경이었다. 흑백 인종간 금지된 사랑, 블루스와 재즈가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끓임 없이 관계의 반목이 이어졌다. 흑백 문제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유태인과 나치, 부자와 빈민이 대립했다. 주인공 남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으로 백인들에 의해 나무에 매달려 참히 을 마감했다. 사랑을 찾고자 했던 남자의 계획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영화에서 블루스는 지친 삶에 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절망적인 삶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하소연 같았다. 명암이 교차하는 삶의 길목에서 울지 웃을지 망설는 순간, 블루스가 필요한 게 아닌가 는 생각했다.


내가 음악으로써 블루스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1997년쯤이다. 군 제대 후 블루스와 재즈에 심취해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들었다. 관련된 책이나 잡지를 새벽까지 읽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당시 <0시의 재즈>라는 라디오 프로에 난생처음 음악신청과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할머니 죽음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땅끝마을 해남에서 서울로 자식들과 상경한 후 청소용역 같은 허드렛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청소를 마치고 퇴근하던 중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머리와 허리를 다쳤다. 이후 신체기능이 떨어져 정상적인 생활을 잘할 수 없게 되었다. 외출을 할 때면 늘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집에서도 거북이처럼 기어 다녔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나는 중학교부터 군대를 들어갈 때까지 단 둘이 울집에 살았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매일 새벽마다 기도를 했다. 기도 속엔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염려가 있었고, 자신에 대해선 더 병들지 않고 천국에 갈 때까지 건강하게 해 달라는 소망이 있었다.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상태로 온전히 살아가는 게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나는 그런 나지막한 기도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했던 것과 다르게 흘렀다. 내가 입영 통지서를 받던 날, 할머니는 쓰러졌고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도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정신까지 쇄약 해져 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기 한 달 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왜 그렇게 입대를 서둘렀을까, 할머니는 좀 더 천천히 가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무심했던 내 결정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로 많이 울었다.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언갈 계속 찾았고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게 블루스였다. 그때부터 한 동안 블루스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원래부터 나는 블루가 들어간 걸 좋아했는지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 좋아하는 과일은 블루베리, 좋아했던 드라마는 블루문 특급, 지금 가지고 있는 자동차는 코발트블루이다. 그래서 음악도 블루스이어야 했던 게 아닐까.




블루스는 19세기 중엽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농장에서 집단노동을 마치고 부르던 노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소울푸드는 우리가 잘 아는 프라이드치킨이다. 그들은 고된 노동을 끝마친 후 저녁을 먹고서 블루스를 불렀고, 휴일에는 치킨을 튀겨 먹으며 블루스를 함께 불렀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힘듦과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블루스를 통해 고독, 슬픔, 사랑이라는 억압된 개인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블루스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노동착취 등 폭력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분노와 절망, 고통과 자유를 노래했던 것이다.


또한 그런 노래를 통해 람들은 이 호흡하는 방법을 배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은 둘 이상 노래를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혼자서 순록을 사냥하는 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럿이서 고래를 사냥하는 부족은 리듬에 맞춰 다 같이 합창을 잘한다고 한다. 힘을 맞추고 조절을 해야 사냥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장단을 맞추는 일은 음악이 생존을 위한 노동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고래를 잡지 않는 기간에도 어우러져 노래 연습을 했던 것처럼, 목화농장의 노예들도 일과 후에 다 같이 모여 노래와 춤을 추었다.


허수경 시인은 <불우한 악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 데를 먼저 가고 있구나"라고. 시인의 말처럼, 블루스는 노예였던 사람들이 스스로 악기가 되어 불우한 시절에 만들어낸 음악인지 모른다. 그래서 쌉쌀하고 씁쓸했던 것들을 뱉어내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우울감을 조금씩 덜어냈을 것이다.


블루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일제 강점기 때였다. 그래서였는지 일본식 특유의 서구문화 융합으로 인해 트로트 같은 '부르스'가 블루스인 것처럼 오해됐다. 사실 부르스는 트로트에 블루스의 리듬을 살짝 올린 것일 뿐라서 블루스라고 부르긴 어렵다. 주현미의 <영동 부르스>를 블루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정통 블루스가 대중성을 갖게 된 건 1970년대다. 이정선, 이광조, 한영애 등이 모여서 만든 <신촌블루스>는 당시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블루스의 대중성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소울과 우리의 한이라는 정서가 맞닿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블루스는 푸르면서도 시리다. 차가운 숨을 참고 내쉬는 것처럼 늘 우리 곁에 있던 슬픔 때문이다.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한다. 우주탐사 계획에 참여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연히 찍힌 이런 지구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가냘프고 작은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토록 푸른 점인 작은 지구에서 모든 존재가 소중히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푸른 점은 창백하고 우울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곳에서도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삶의 고단함과 아연함에서도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춤을 춘다. 뜨거워진 가슴과 따뜻한 손을 포개어 서로를 붙잡고, 희망이란 게 새처럼 달아나는 것 같지만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누구나 푸른 몽고반점을 몸에 새기고 태어난다. 그것은 푸른 점 위에 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참조

* 사진출처: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