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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아버지가 해준 면도

by 윤이프란츠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든의 아버지, 랑 같은 손바닥을 펼쳐 고무 튜브에 엉성하게 가려졌던 내 얼굴 주위를 살피고 매만진다. 봄기운에 덥힌 텃밭을 오물조물했어야 할 아버지 손바닥은 거친 흙 대신 몰랑몰랑 흰 거품 올리고 있다. 버지는 손가락 반절씩 거품을 덜어내 번들번들한 내 얼굴을 비비고 계시.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면도를 받는 기분이라니, 낯설고 당혹스러움에 뒷덜를 내어준 기분이다. 그러나 이내 여운 호기심 같은 게 턱 밑까지 따라와 살랑살랑 꼬리를 쳤다. 낙상방지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린 동식 침대 옆에서 아버지는 구부정한 자세를 세는 중이시다. 엉거주춤던 자세가 젓가락처럼 펼치자 얼핏 본 면도날도 제법 섬뜩해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상처가 날까 봐 연신 면도날이 신경 쓰이신다.



쉐이빙 크림의 레모네이드 향을 올여름까지만 파란 유리병 속에 담고 싶다. 흔한 향은 올해 각별히 기억될 것이다. 모기풀들이 르게 익갈 무렵 민트를 담은 얼음물은 또 어떤 맛일 궁금하다. 아마도 시금털털할 테지. 만약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초록색 사이다를 따서 달콤한 스파클링들을 아낌없이 마셔야겠다. 나는 없는 입맛을 다시며 이미 입 안에 오독한 걸 넣고 씹는 것처럼 치아와 잇몸을 굴다.



나는 금 전 흰 우유를 마구 썩 폭신한 구름과 에메랄드 젤리가 군데군데 춰진 팥빙수를 떠올렸다. 붉은 팥향이 터 물에선 고소한 콩루가 다시 비벼지고 있다. 나의 면도 끝에서도 그런 맛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아버지는 중년이 지난 나를 노란 수염의 옥수수 같은 청년으로 보고 계신다.



수염에 반복해서 크림을 묻혔다. 그리고는 일회용 면도기를 들어 옥수수 수염처럼 길게 자란 내 턱을 깎아주신다. 빈틈없이 만들어진 각도를 따라 매끄러진 피부, 확인해 보지 않아도 잘 되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는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감싼 후 남김없이 모두 닦주셨다.



둔덕 위에서 소가 풀을 아무렇지 않게 중간만 뜯다먹은 것처럼, 듬성듬성 코 밑 수염들이 무기력하게 당겨졌다. 우두득 수염이 뽑히는 소리는 과장된 게 분명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큰일이 난 것처럼 탄성을 지르신다. 세상 이 이쁜 얼굴에 상처가 나면 되냐고 말하면서. 아버지는 괜찮을 거라며 조심히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버지 손가락은 얼음팩에서 방금 꺼낸 새우처럼 달달 떨고 있다.



나는 아직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금세 얼굴이 시원해졌다고 말했고 아버지 얼굴은 흰꽃처럼 빛난다. 구릿빛이던 아버지가 그토록 밝았던 적이 있었을까, 병실로 가는 통로에서도 기운 잃을까 싶어, 아버지는 고랑 같은 바닥으로 핼쑥해진 내 얼굴을 았다. 자칫 싱거울 뻔했던 나의 첫 면도는 부모의 노심초사로 지루할 틈 없이 신기한 마법처럼 이뤄졌다.




* 난생처음이란 건, 사실 제가 아직 가보지 못했고 겪어보지 못한 걸 겪는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생소한 경험이 어쩜 제게 필요했을 수도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다들 아프지 말고 모두들 건강하세요.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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