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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마리모와 환상적인 쿠키

by 윤이프란츠


스타벅스가 있는 병원 로비의 맞은편엔 사실 커다란 수족관이 있다. 이끼가 무성해서 언뜻 보면 유리벽으로 보일 뿐, 수족관을 알아차리긴 힘들다. 하지만 그곳에 수조관이 있다는 걸 호기심 많은 어떤 아이가 발견했었고, 이른 아침 청사방호에 분주한 검정제복의 요원이 알려주었다. 대개 사람들은 조명도 켜지 않아 수족관이 거기에 있는지 별 관심도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서랍장에 숨겨둔 비밀노트처럼 몰래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다.


또 병원 내 누군가는 망각이라는 기억의 문제로 수족관 위치가 헷갈려 자기들끼리 좌표를 논의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매일 수족관을 끼고 촬영실에 엑스레이를 찍으러 갈 일이 없었더라면 수조관 위치를 몰랐을 것이다. 보통 조형물 등을 설치할 땐 어떻게 잘 보일 지를 고민할 텐데, 그곳 수족관은 일부러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만든 구조물과 같았다. 세상의 어떤 것들은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여기서 드러난 게 일부인지 전부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일상의 수수께끼처럼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다른 누군가를 통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족관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느다란 이끼들이 물풍선을 만드는 전동 펌프 주위에 유독 많이 붙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들은 놀이터에서 해 뜰 무렵부터 해 질 녘까지 그네를 타는 마리모들처럼 보였다. 마리모는 스스로 움직이질 못하지만 물속의 운동 에너지를 이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푸른 이끼들은 마치 주렁주렁 내 뱃속에 달렸던 흔적처럼 보들보들 연약해 보였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면서 코부터 복부까지 꽂힌 관을 통해 그간 내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색라테를 몸에서 채굴 중이다. 다행이라면 채굴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누군가 더 생산하자고 나서진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시추를 위한 구멍 몇 개가 내 몸 여기저기 나 있다. 거진 시추 작업을 끝내야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다시 진행하고 재수술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복부에는 아주 가는 구리선 같은 게 감겨 있는데 전파 발사 장치처럼 보였다.


현재 있는 병원으로 옮기고서야 24시간 멈추지 않던 펌프기가 내 몸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간호사도 녹색라테 양을 좀 더 여유롭게 체크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많은 양의 마리모들이 내 몸에서 생산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할 노릇이다. 알고 보니 나 역시 물속에 살아가는 수생식물을 닮았다는 떠들썩한 뉴스가 나올까 싶었지만, 마리모 통을 매일 비우는 간호사 표정에선 그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간 나는 마리모처럼 혼자서 꿋꿋하게 어항 속 일상을 살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내가 옳을 것이라 생각했고, 바득바득 우기지 않았을 뿐, 자기 신념에 갇혀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쉽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끝까지 버티려고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는 정말 아프고 싶지 않았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도, 어쩌면 자신에 대한 핑계와 변명에 불과할 모른다.


철저한 금식 때문에 나는 꿈을 꾸기만 하면 자동으로 쿠키들이 요정처럼 꿈에 등장할 때가 많다. 게 중엔 나와 이유도 없이 달리기를 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븐기에서 막 꺼낸 것처럼 느긋했다. 어느 날에는 잘 먹지 않던 쿠크다스가 갑자기 입 안에 바싹바싹 씹히는 진기한 환상까지 경험했다. 아마도 진통제 등 약물 투여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금식이라는 극단적 처방 때문에 내 의식이 현실로부터 사춘기 때로 도피한 것 같았다. 당시에 누군가를 설레게 했던 화이트 초콜릿, 비록 순수함을 포장했 테지만 그런 설렘을 극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가 겪 줄은 몰랐다.


한겨울 화목 난로에 둘러앉아 얇게 자른 고구마 조각들을 판 위에 올려놓고 달달하게 구워 먹었던 시절, 엇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 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런 일 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끔 나무식탁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할 때만 겨우 감사란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가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수없이 열거는데 공을 들였다. 이미 충분하고 부족하지 않은데도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내 영혼은 가난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느낄수록 소화불량에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반복해서 욕심을 부렸던 어느 날 정은 났다. 무엇을 갖고 싶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은 채 눈만 깜빡거리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것이다. 병실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오늘이란 시간도 혼자서는 감당기 참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는 하루를 살더라도 좀 더 설레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제껏 딱히 좋아하진 않았어도 내 맘을 열면, 좋아할 만한 일이 많아질 것이라 기대다.




* 입원 초기 급격한 체온상승이 있었지만 백혈구 등 면역 관련 수치가 안정화되면서 통증, 체온, 혈압 등 생체 신호는 정상입니다. 다만, 입술이 부르트는 건 링거 주사를 맞아도 체내 수분이 좀 부족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아요. 입이 텁텁하거나 건조 때마다 거즈에 찬물 묻혀 물었습니다. 그렇게 거즈를 물고 있으면 유독 먹는 꿈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

* 마리모(マリモ): 담수성 녹조류의 일종으로 공 모양으로 뭉쳐서 자란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칸 호(阿寒湖)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자라는 마리모는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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