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언제 숟가락을 들고 밥이나 국을 떠먹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나는 수도사나 고행자도 아니면서 욕망과 본능을 끓고 금식 중이다. 황량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했던 예수와 비교한다면, 나에게는 밀키트처럼 아미노산과 포도당 등이 영향학적으로 담긴, 멸균처리된 비닐팩이 항상 곁에 놓여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그것은 옛날 비닐팩 우유를 커다랗게 부풀린 모양으로 생겼다.
내 심장과 가장 가까운 중앙정맥으로 필수 영양분과 수분이 들어가는데도 정상일 때의 몸무게 보다 15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는 어른들의 말이 선뜻 이해되었다. 몸무게가 줄어든 만큼 기력도 쇠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더 이상 무게가 줄지 않은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아이들은 내 얼굴이 자신들이 즐겨하던 온라인 게임 <브롤스타즈>의 로고인 해골을 닮아다며 귀엽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귀여운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
내가 금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갑상선, 폐, 소장 부위로 전이된 림프종양을 치료를 하면서, 마비, 유착, 천공 등 비정상적인 장의 상태를 수술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일 컨디션이 좋아지도록 항생제 등을 투약하고 있다. 대신 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 온몸에 고열이 올라와서 열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그만큼 장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일주일 전부턴 물 마시기가 허용되었고 가뭄에 단비처럼 황홀했다. 4월 말이나 5월 초쯤 장폐색 수술을 실시하여 몸이 회복되면 음식과 간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주치의사의 말에 많은 걸 참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다."라는 것은 사랑을 위해서 나의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뜻일 테다. 단언컨대, 내가 살면서 먹는 것을 이토록 간절히 원했던 적은 없었다. 알고 보니 나 역시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무심결에 유튜브에서 붉은 당근을 사용해 소금과 고추에 절여 김치를 만드는 요리 과정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또한 얼마 전에도 잘 익은 참숯에 두툼한 삼겹살을 굽고 있는 캠핑 채널을 보았다. 기름이 제대로 빠진 삼겹살은 쫄깃쫄깃해 보였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브로콜리와 적당히 구운 소고기 등심을 먹는 반려견의 식사까지 탐이 날 지경이었다.
캠퍼는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면서 대파를 잘게 썰어 라면을 끓였고,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까지 시원한 소리를 내며 들이켰다. 탱탱한 면발 위에 올려진 김치는 자연의 빗소리와 어울려 아삭아삭 더 큰 소리를 냈다. 나는 도무지 입에 고인 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떤 존재는 화로 속 불씨처럼 작은 자극만으로도 각인된 냄새와 소리를 되살리는 것 같다.
입원하는 동안 정말 예상치 못했던 정말 많은 분들께 위로받았다. 잘은 몰랐지만 현재 항암으로 치료 중인 직장 동료들 몇 명이 나의 사정을 알고는 직접 전화를 걸어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20여 년 전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동기들까지 내 이름을 떠올려 연락해 주었다. 특히, 카카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들의 안부와 격려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경험이다. 위로란 요청하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영혼에 다가서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위로 위에 살짝 고명처럼 기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몇 주 전 브라질에 사는 동생과 연락을 했다. 동생은 씩씩한 군인처럼 스포츠 헤어스타일로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병원을 방문한 막내 동생은 이제부터 건강을 챙겨야겠다,라며 고등학교 이후 결혼 때까지 곱게 기르던 긴 생머리를 짧게 잘랐다.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밑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위로란 속으로 함께 아파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위로를 받은 사람이 역경을 스스로 이길 수 있도록 힘이 되는 것이다.
* 지금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현실의 무게를 덜어 조금만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고통이나 절망이란 말보다 위로와 축복의 말이 더 많이 떠올려 지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지금 글을 쓰는 이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