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도다리
더위를 불러오겠다던 초복이 가까워지고 있어. 병원 밖만 잠시 나가도 한증막을 갔다 온 것처럼 온몸이 꿉꿉해. 육수를 우려낸 것처럼 흐르는 땀... 오늘 같이 더울 땐 목마름이 아니라 몸마름이라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차가운 얼음보단 뜨끈한 보양식 국물이 당기나 봐. 근데 난 삼계탕보다 도다리쑥국이 떠오르는 거 있지.
지난봄 햇살에 아지랑이가 아슴거리는데, 논둑과 밭고랑 사이에 어린 쑥들이 야리야리했어. 꼬마 냉이가 옆에서 기지개를 켜고 깜찍하게 하품을 하더라고. 삼월이 되면 엄마는 봄 향기 그득한 쑥을 따다 쑥국과 쑥버무리를 해주셨지.
엄마랑 소쿠리를 들고 뽕나무밭 밑에서 쑥이랑 냉이를 캤던 게 기억나. 손으로 뽑으면 될 걸 엄마는 굳이 내 손에 호미를 쥐어주는 거야. 나는 고사리손으로 제법 호미질을 잘했던 거 같아. 근데 호미질을 하다가 동생이랑 땅 파면서 호작질 했나 봐. 엄마가 손 다친다고 조심하라 하셨지. 쑥 캐는 건 일도 아니었어. 금방 소쿠리 주둥이까지 차올랐거든.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쑥을 계속 쌓아 올리기만 했어. 부자가 될 것만 같았거든.
내가 쑥을 좋아하냐고? 글쎄,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냉이, 미나리, 깻잎, 방앗잎, 고수 향이 좋단 말이지. 왠지 걔네들 향을 맡으면 나도 싱싱해지고 파닥파닥 해지는 거 같아. 그래서 쑥향도 정말 좋아해. 근데 까슬까슬하고 뻑뻑한 식감은 별로인 거 같아. 그래서 엄마가 쑥국을 해놓으면 쑥만 걸러내 먹었어.
근데 갑자기 웬 도다리쑥국이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도다리쑥국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은 거야. 없던 힘도 불끈 솟아날 거 같아.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입맛도 변한다잖아. 그렇지?
내가 어떻게 도다리쑥국을 알았겠어. 몇 해 전 울산 살 때 알게 되었지. 미역이랑 멸치로 유명한 기장 알지? 거기에 도다리쑥국 잘하기로 소문난 식당이 있거든. 얼마나 맛있으면 코로나 시국에도 줄 서서 먹더라고. 거기 온 사람들은 다들 목숨 걸고 먹으러 온 거였어.
흔해빠져서 볼품없는 쑥이지만, 봄맛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맛을 기다리더라. 기장에서 맛보았던 도다리쑥국은 들깻가루도 들어가 국물이 뽀얗고 예뻤어.
도다리는 오른쪽에 눈이 있어 세상을 한쪽으로 치우쳐 볼 수밖에 없는 거 알지? 왜 우린 시골사람이라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분간도 못하면서 아는 체했었잖아. 주변엔 도다리는 없어도 사방이 쑥 천지였는데... 초복이라서 그런가 엄마가 끓여주시던 쑥국이 생각나네.
* 아플수록 쑥국처럼 보양식이 될 만한 걸 찾게 됩니다. 그런 건 문뜩 추억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지요. 혹시, 힘드신가요? 한 번 추억을
더듬어보세요. 초복이 가까운 지금 저처럼 무엇인가 떠오르는 게 있을 겁니다.
* 제가 이전에 작성했던 글의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 사진출처: Unslp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