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오후서울역 롯데마트는혼잡했다. 3층 완구매장에서 막내의생일선물을 고른 후2층 식품매장에 들렀을 때,북적이는 인파에발 디딜 틈이없었다. 공항 출국장을 연상시킬 만큼내외국인이 뒤섞여 구분되지않았다.모두가열심히 무언갈 사느라 바빴고, 통로에 듬성듬성 나있는 시식코너에관심을보였지만, 정작 시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어쩌면생활용품 등을파는대형마트가하나의관광상품이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의 만류에도 아이들은 대형마트 구경에 신이 나돌아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둘러싸인 우리 동네엔그 흔한 슈퍼마켓이 없다.겨우 편의점에서만 상품을구경할 수 있기에,장 보는 일은대개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배달서비스에의존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근처 다른 동네마트나 시장을 찾기도 하지만, 아무튼,대형마트란아이들에게 좀체만날 수 없는 놀이동산 같은 곳이다. 그건 내게도 그렇다.
간단히 장 볼요량이었는데 2층 매장을 한 시간 넘게 어슬렁거렸다. 여기저기서판이 벌어진 파격행사를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언뜻 이윤이 남지 않을 장사같은데도,점원들은다시없을 기회라며 내게 쉼 없이 손짓했다. 뿌리칠 수 없는 그유혹에 넘어간 손은 자꾸무언갈 더듬어 담았다. 어느새 붉은 카트가 만두소처럼가득채워졌고,무거워진 카트를 밀기 위해 힘을 모았다. 대형마트를 찾을 때마다 나는 항상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지만 어쩔 수 없다.
임박한 이륙시간을 맞춰야 할 승객처럼 초초히 시계를 쳐다보았다. 예상했던 시간을 넘겼으니 빨리가야 했다. 어떤 시식코너가 더 맛있었는지서로 묻고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이제 가야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고, 아직도 실컷 즐기지 못해 아쉬운 막내가내 뒤를 졸졸 따랐다. 계산대로 향하던 중 기다란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은 분홍소시지였다.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상품이지만,여태 생산되는 걸 보면 수요가 꾸준한 모양이다. 잠시 살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막내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빠! 아까 천하장사를 샀잖아." 맞다, 나는 마트에 가면 꼭 천하장사 묶음을사야 했다.
그날따라 마음이 들썽들썽 했다. 햇살이 따스해 그냥 집에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세종대로를 출발해 덕수궁길, 정동길, 경희궁길을 차례로 돌며 아이들과 산책했다. 무작정 골목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다. 큰애는 아까부터 점심메뉴를 구상 중이었고, 막내는 주저앉아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응석을 부렸다. 마침 돈의문 마을 입구라서 동네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분식집에 들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먹고 싶은 걸 고르게 했다. 큰애, 막내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라면이요!"를 외쳤다. 목도 마를 테니 미숫가루 냉사발도 골랐다. 거기에 추억의 도시락과 김밥까지 추가했다. 꽃무늬 앞치마를 입은 할머니의 설명대로 QR코드를 찍어 주문을 마치자,곧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나란히 올랐다.달달한 볶음김치, 마른 멸치, 어묵, 계란프라이와 함께 분홍소시지가 깔린 추억의 도시락 그리고 같은 분홍소시지와 단무지, 시금치를 품고샛노란 계란 옷까지 입은 김밥이었다.
초등학교시절, 분홍소시지는 내가 아는 유일한 소시지였다(당시에는 '소세지'로 불렀던 것 같다). 연한 분홍색을 띤 부드러운 속살의 소시지를 엇썰기 한 후, 밀가루에 묻혀 계란물을 씌우고 식용유에 튀기면 맛 좋은 소시지전이 만들어졌다.소시지전은 언제나 손꼽는 반찬이었다. 팔각형이나 둥근 모양의 분홍소시지를 무심한 듯 박아놓은 핫도그도 그랬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문방구 옆 분식집에 쏜살같이 달려가 튀긴 핫도그를 먹었다. 지금 핫도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의 소시지이지만인기는 더 높았을 것이다. 소시지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내 소시지가 다른 애들 것 보다 큰 걸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 추억의 소시지를 지금은 거의 집에선 먹지 않고, 분식집에서나 겨우 영접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훗날 분홍소지지에는 돼지고기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다진 어육과 밀가루를 혼합해서 만든 소시지가 분홍색인 이유도 어육의 흰 살을 육류처럼 보이려고 색소를 첨가한 것이었다. 그런 사실에 대해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분홍소시지는 어묵과 사촌지간인 셈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들이 일상에서 흔히 소비된다. 마늘 풍미가 일품인 살라미, 고추맛 페페로니,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 이름만 같은 후랑크 소시지, 순대 같은 블랙 소시지 등 소시지를 좋아한다면 언제든 맘껏 골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소시지들이 있어도 내가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소시지는 딱 하나다.
아버지는 엄마의 찌개를 잡탕이라 꼬집어 말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민망한 듯 "보기에는 그래도 얼마나 맛있니?"라고 내게 동의를 구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엄마의 일명 잡탕찌개는 주로 신김치, 계란, 분홍소시지에 고춧가루를 풀어 끓였다. 명절을 지내면서 남은 고기 완자 같은 것도 들어갔는데, 짭조름하면서 감미로운 국물맛이 났다. 아무도 모르는 엄마만의 특수 레시피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폄훼했던 잡탕찌개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혀와 몸은 분명 그 맛을 기억하는데도 그 맛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애절했던 사랑에 대한 느낌을 알지만 막상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잘 모르겠다. 가난하고 형편없던 살림을 맡았던 엄마는 맛에선 기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세상에 없는 손맛이라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만, 잡탕찌개 속에 있던 분홍소시지를 한 번만이라도 먹고 싶다.세월이 한참 흘렀어도 잊지 못할 기분 좋은 음식이 당신에게 있다면, 당신도 그 시절 누군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뜻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