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다. 그것은 분명 높은 횟대에 올라 새벽이 온다고 우는 수탉 소리다. 서울 주택가 한복판, 새벽녘 들리는 닭소리를 아는 사람은 동네에도 드물다. 나는 몇 번이고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리가 너무 짧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소리의 방향으로 짐작컨대 백사실 계곡 쪽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며칠 전에는 바로 집 앞산에서 들리기도 했다. 수탉은 매일 조금씩 위치를 바꿔가며 울었다. 어쩌면 누군가 풀어놓은 집닭이 멧닭처럼 북악산 등성을 누비는지 모른다.
과거 산업화로 농경문화가 쇄락할 때, 촌스러운 사람을 일컬어 '촌닭'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머리가 나쁜 사람은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닭의 지능이 낮다는 사람은 금붕어 수준이라 하고, 지능이 높다는 사람은 7세 아이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로 어떤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나는지능을 알아맞히려던 그들의 측정방법이 궁금하다. 어쨌든 그런 놀림 때문인지 닭은 용감하다. 닭은 독을 지닌 지네나 뱀 같은 걸 쫓지만 조상 대대로 무서운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도 가졌다.
이처럼 닭은 무모하리만치 용맹하다. 그래서 어떤 불의의 덩치에도 맞서 싸운다.닭들은 시시때때로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방을 쪼으며 힘겨루기를 한다. 그렇게 누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지 확인한 후 자기 서열을 가늠할 수 있다. 다만,문제는 매일 쉬지 않고 서열을 가린다는 것일 테다. 특히 수탉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저돌적이다. 암탉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맹수인 독수리에게도 덤빈다. 이런 이유로 자꾸 시비를 거는 사람을 '쌈닭'이라불렀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엔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자하문이 있다. 그리고 자하문 건너편엔 무계원이라는 전통가옥이 있는데, 과거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지은 무계정사가 있었던 곳이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꿈속에서 보았던 복숭아밭을 화가인 안견에게 그리게 해 <몽유도원도>를 탄생시켰다. 아울러 자신은 인왕산 중터에 무계정사를 짓고 주변엔 복숭아나무를 심어 현실세계의 도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형 수양대군은 검은 닭의 해인 계유년(1453년)에 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시키고 안평대군을 도원에서 끌어낸 뒤 강화도에 유배시켜 죽였다. 이후 수양대군은 세조가 되었지만, 그가 일으킨 계유정난은 정치적 명분과 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왕이 되기 위해 조카와 형제 그리고 수많은 신하와 그의 가족들을 몰살시킨 수양대군의 욕망은 그가 태어난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1417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가 일으킨 닭싸움은 비정하고 참혹한 역사로 기록되었다.
그리고얼마 전에도 비슷한 싸움이 벌어졌다.
비상계엄이란 비상(非常)한 상황을 막기 위해 내리는 최후 수단이다. 따라서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극한 상황에서만 발동되어야 한다. 지난날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민주주의를 짓밟은 걸 경험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있다. 하여, 계엄은 적대적 실체와 행위가구체적이고 명확할 때 발동되어야 한다. 소위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게 추상적이고 애매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이번 비상계엄은 그 자체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그러한 비상(非常) 선언이 현실을 비상(備嘗)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모습은 마치 투계판처럼 느껴진다.
정치와 법치가 무너지고, 자본과 시장이 교란되고, 민주주의와 대의가 파탄 났다. 겨우 몇 명의 사람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누군가 절벽 끝에서 던진 돌멩이가 아찔한 포물선을 그리며 머리 위에 떨어졌다. 명령과 함성, 행진과 구호가 끓임 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폭력이 난무하고 눈물과 땀이 구분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튀었다. 한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이유와 명분은 어느새 또 다른 변명이 되었고, 수수께끼 같은 거짓과 진실들이 오갔다. 독설과 욕설이 창궐한 투계장에서 칼날은 늑골을 파고들었다.날개는 부러지고 축축해진 눈은 어딘가를 주시했다. 누구를 위해 벌인 싸움인지도 모른 채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쌈닭이 되어야 했다.
지금 우리에겐 비상(非常)한 상황을 벗어날 출구가 필요하다.단 한 번의 어긋남으로 인해 모든 게 무너졌다. 무너진 걸 세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견고한 성벽을 쌓아야 할 것 같다. 아직 살아남은 숨이 있다면 작은 날개라도 끝까지 퍼덕거려야 한다. 달아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 날아올라야 희망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비상(飛上)할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한다. 그리고는 불같은 주작이 되어 막막한 시대를 뜨겁게 관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