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
우리는 모두 닭인지 모른다.
닭은 웃을 줄 모른다. 닭은 온종일 울기만 한다. 그렇게 울어도 속이 시원치 않아 또다시 운다. 수평선을 향해 울고 있노라면 어느덧 달걀 같은 해가 떠오른다. 하늘 높이 솟은 해는 삶은 달걀처럼 보인다. 겉은 화려하지만 이미 생기를 잃었다. 닭은 왜 웃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웃음이 일상의 긴장을 늦춘다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않고선 언제 닥치질 모를 위험을 대처할 수 없어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몰려드는 졸음을 쫓는 순간까지도 닭살을 돋아낸다. 그런 불안이 엄습할 때면 늘 불길해진 기분으로 잠을 설친다.
눈물샘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다. 그리고 조그만 눈물샘마저 퇴화했다. 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아파도 눈물은 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더 큰 고통을 가했다. 꼬꼬댁 비명을 질렀는데도 날개를 걸레처럼 비틀었다. 그토록 비통했는데도 표정엔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모습을 처음엔 신기해하더니 이내 재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긴 목을 나뭇가지처럼 꺾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코 눈물은 나지 않았다. 두 눈이 빠질 것처럼 뻑뻑해졌다. 녹슨 것처럼 두 눈에서 붉은 물이 흘렀다. 너무나 아팠다. 주먹만 한 심장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뛰는 것이 보였다. 검은 혈관들이 긴 고무풍선처럼 얽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얼마나 닭들을 죽이는 게 쉽고 가뿐하냐고. 처음에만 어렵지 처분할 것을 다루는 건 잡초들을 솎아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뽑아내지 않으면 다른 것까지 망치게 된다며 침을 뱉었다. 그들은 잡초처럼 닭장 속에서 뽑아내 아무렇게나 마대자루에 담았다. 삐져나오려는 것은 고무장화로 푹푹 짓밟았다. 작은 뼈들이 잡목처럼 힘없이 부스러지는 소리를 냈다. 가득 채워진 자루를 묶어서 바닥에 냉동댕이 쳤다. 그들은 큭큭 거렸다. 두더지 같은 것들을 누가 더 많이 때려잡는지 내기를 했다. 살기 위해 애면글면 달아나던 것들이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걸 깨닫자 그대로 멈춰 섰다. 거대한 공포가 모든 소리를 잠식시켰다. 체념한 것들이 공포의 순간이 어서 빨리 끝내지길 바랐다.
왠지 그런 풍경은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세상에 얼마나 걱정할 일이 많은데, 언제 그런 일들까지 신경 쓰냐고 말했다. 어쨌든 살아남았으면 되었다고. 다른 것들을 염려하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차라리 너부터 걱정하라고 했다. 정 살아남고 싶으면 우렁찬 소리로 크게 기도나 하라고. 우린 항상 괜찮지 않으니까, 새벽잠을 설칠 수밖에 없으니까, 해보다 언제나 먼저 일어나 아침을 맞이해야 하니까. 병들거나 시들지 않은 것처럼 싱싱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해뜰참, 나는 푸석해진 눈을 비볐다. 거칠고 차가워진 두 손을 비빌 때마다 닭똥 같은 냄새가 났다. 내 몸 어느 부위에선가 살이 섞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염려하며 귀찮게 맘 쓰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저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된 일이란 걸 깨달았다.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게 더 이상 쓸모없고 부질없었던 게 아니었다. 지금의 현실이 절망의 암흑에 뒤덮였을 때, 도무지 보이지 않는 불안이 몸짓을 키웠을 때, 혼동이 먼지처럼 뿌옇게 번졌을 때, 세상엔 아름다운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이 내가 계속 알을 낳았던 이유일 것이라고, 무정난이라도 어떤 중요한 삶의 의미가 담겼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이제껏 고되고 지루한 노동을 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지금 당장은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오늘처럼 겨울바람이 부는 날, 닭처럼 땀 흘린 모든 이들이 이 땅의 절망을 껴앉고 살아간다 해도 눈물은 흘리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 눈물은 좀 더 나중에 흘렸으면 좋겠다.
*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