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기 위해

by 이진무

나는 강변에 앉아 있었어.

강물은 위태롭게 출렁거리고

주위에는 나무 몇 그루가 모여있었지.

바람이 몹시 불 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가

손을 놓고 강물에 뛰어들더군.

나무는 알지 못한 것 같았어.

아직 그에게는 많은 잎이 남아 있었으니까.

나뭇잎들은 하나씩 강물로 뛰어들며 노래했어.

잊기 위해, 잊히기 위해.


어느 날 아버지의 봉안실을 찾아갔어.

한낮인데도 하늘은 몹시 어두웠고

바람은 모질게 불었어.

나는 꽃 한 송이를 들었지만

봉안단까지 가지 못했어.

가족들이 모여있었거든.

생각해 보니 그날은 아버지의 기일이었어

나는 뒤돌아 가며 노래했어.

잊기 위해, 잊히기 위해


지나가는 바람에게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신부는 꽃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꽃보다 아름다웠지,

아들은 나무처럼 듬직하게 서 있었어.

아내와 친지들이 환하게 웃으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더군.

나는 인사하지 못했어.

멀리서 눈물만 흘렸지.

바람이 노래했어.

잊기 위해, 잊히기 위해.


길을 떠났어.

따가운 태양 아래서 걷고 또 걸었더니

어느새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어.

지치고 힘들어서 나무에 기댄 채 주저앉았지.

어둠이 가라앉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어.

나의 손은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처럼 앙상했지

나는 이곳이 어둠과 빛의 경계라는 것을 알아.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지.

잊기 위해, 잊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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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죽은 자의 시점을 빌어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세상 밖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망령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또는 내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죽은 자보다 더 깊게 꼭꼭 숨겨둔 마음입니다.


오래전부터 잊고자 했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간절해서

떠나지 못하고

그들 곁을 떠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일에 가족 곁에 서지 못하고,

아들의 결혼식에서도 멀리서 눈물만 흘립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생각과 마음만이 남아 있습니다.

망령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별이 길어질수록

사랑은 깊어만 갑니다.


한때 나무와 나뭇잎처럼

그들과 한 몸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강물에 뛰어들 듯

나도 떠났습니다.

나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선 사람입니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잊히길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오직 그들이 기억에서 지워버리길 바랄 뿐입니다.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떠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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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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