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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긱기긱

by 이진무

피노키오는 공연장 입구에 서서 눈을 깜빡였다.

화려한 간판과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그의 몸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뻣뻣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텅 빈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빈털터리’

피노키오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피노키오는 용기를 내어 지나가는 한 남자의 소매를 살짝 당겼다.

남자가 돌아보자,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코인 열 개요. 공연을 보고 싶은데… 그만… 돈이 없어서요.”


남자는 피노키오의 코를 힐끗 보고는 피식 웃었다.

“돈이 없다고? 그래서 코인을 열 개나 달라고? 쯧쯧, 공연은 무슨.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남자는 피노키오의 손을 쳐내고는 휙 돌아서 가버렸다.


피노키오는 풀이 죽어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아주머니… 죄송한데… 혹시…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정말 코인 열 개만요… 꼭 갚을게요.”


피노키오 구걸.jpeg


이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피노키오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웬 거지 같은 게 돈을 빌려달래? 썩 물러나지 못할까!”

아주머니는 손에 든 부채로 피노키오를 쫓아내듯 휘둘렀다.


피노키오는 상처받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코는 조금 더 길어진 것 같았다.

공연장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는 계속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시선과 비웃음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피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못 본 척 지나쳐 버렸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피노키오의 얼굴에는 실망감과 좌절감이 가득해졌다.

그는 결국 공연장 앞에서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 채 쓸쓸히 서 있었다.


그때였다. 럭셔리한 아동복으로 풀 착장한 꼬맹이 하나가 피노키오 앞을 휙 지나갔다.

저 비싼 옷을 입은 걸 보면, 분명 금수저 도련님이었다.

‘저 아이라면 코인 열 개 정도는 우스울 거야’


피노키오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빛의 속도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내일 꼭 갚을게! 코인 좀 빌려줄래?”


꼬맹이가 비웃듯 씨익 웃었다.

“나도 그러고 싶거든? 근데 내 친구들이 다 안 된대.”

“그게 누구야?”

피노키오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땅속 두더지랑 저 하늘 끝에 사는 새.”

“설마!”

피노키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못 믿겠으면 한번 들어봐. 여기, 여기에 귀를 대고 말이야.”

꼬맹이가 가리킨 곳은 하필 쓰레기통 밑이었다.

‘혹시 두더지가 진짜로 코인을 빌려주라고 말할지도 몰라!’


피노키오 쓰레기통.jpeg


순진한 피노키오는 엉뚱한 생각에, 땅에 찰싹 엎드려 귀를 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노키오는 더 자세히 들으려 더 바짝 엎드렸다.


바로 그때, 꼬맹이가 손뼉을 치며 깔깔 웃어댔다.

“이거 바보 아냐! 두더지가 어떻게 말해? 하하하!”

피노키오는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져서 벌떡 일어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꾹 참았다.

어떻게든 저 얄미운 꼬맹이에게서 코인을 얻어내야 했다.

“내 옷이라도 팔게.”


피노키오가 비장하게 말했다.

꼬맹이는 그의 꽃무늬 종이옷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코웃음 쳤다.

“꽃무늬 종이로 만든 옷을 어디에 써? 비 오면 다 찢어질 텐데.”


“그럼… 내 신발은 어때?”

“음… 신발은 튼튼해 보이긴 하는데… 코인 반 개 줄게.”

“말도 안 돼! 그러면 덤으로 모자를 주면 코인 열 개를 줄 수 있어?”


피노키오가 거의 울먹이며 물었다.

“뭐야. 그 빵으로 만든 모자를 쓰면 쥐들이 당장 내 머리를 뜯어먹을 텐데!”

꼬맹이는 질색했다.

피노키오는 조바심이 났다. 이미 공연은 시작한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을 조용히 지켜보던 꼬맹이가 입을 열었다.

“좋아. 오늘은 내가 기분 좋은 날이니까 특별히 손해 좀 보지. 네 책을 줘. 그러면 코인 열 개 줄게.”

“이… 이 책을?”

피노키오는 걸음을 멈췄다. 손에 쥔 책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건 제페토 아빠가 자신의 한쪽 다리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책이었다.

목발을 짚고 힘겹게 돌아오던 아빠의 모습이, 피노키오의 눈앞에서 흐릿하게 겹쳤다.

세상에 단 하나, 아빠가 피노키오를 위해 몸을 던져 얻은 책.

피노키오는 잠시 숨을 삼켰다.

“이걸… 정말 팔아도 되는 걸까?”

가슴 한편이 먹먹했지만,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홀린 듯, 피노키오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팔아버리고 말았다.

제페토 박사가 코인 20개나 주고 산 책이 코인 10개에 팔렸다.

피노키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녀에게 달려가 코인 10개를 몽땅 주고 티켓을 받아왔다.

공연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펌프질하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겨우겨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미 분위기는 난리였다.

펄럭이는 야광봉, 반짝이는 메탈릭 팔찌, 그리고 머리 위로 들린 수백 개의 스마트폰.


잠시 후 무대 중앙에 스포트라이트가 터졌다.

“쾅!”

그 빛 속에서 등장한 건… 와우, ‘은빛 광택’부터 눈부셨다.


아이돌 로봇 ‘기긱기긱’이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은색 몸체에 관절마다 번쩍번쩍, 걸을 때마다 전자음이 ‘끼기긱~’ 하고 흘러나오는데… 어라, 그게 왠지 멋있다! 오히려 무대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처럼 들렸다.

피노키오 로봇 아이돌.jpeg


“기긱기긱기긱—!”

그들이 날카로운 보컬 사운드를 내뱉자마자, 관중석에서는 ‘떼창’과 함께 야광봉 물결이 무대를 덮쳤다.

LED 패널로 만들어진 눈동자가 ‘윙크’하듯 반짝이며 관객과 아이 콘택트를 할 때마다 자지러지는 함성이 들렸다.


스피커에 연결된 음성 합성기는 웬만한 인간 가수 뺨치는 완벽한 고음 처리를 해냈다.

무릎관절이 유압장치처럼 자신감 넘치게 굽혀지더니, 팔이 360도로 회전하며 댄스 루틴이 시작됐다.

움직임은 ‘인공지능’처럼 정확했고, 리듬감은 마치 ‘BPM 실시간 계산기’처럼 완벽했다.


그의 동작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기계미’를 극대화하는 ‘아이덴티티’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로봇의 능력인가!’

무대 양옆으로 팬들에게 ‘기긱기긱 팬클럽 앱’을 다운로드하라는 전자 자막이 쉭쉭 지나갔다.


관객 중 일부는 자동 번역 이어폰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언어로 청취했다.

무대 바닥에서는 홀로그램 분신들이 튀어나와 집단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지막 곡의 후렴구에선 ‘기긱기긱’의 눈이 하트 모양으로 바뀌고,

얼굴 위 디스플레이에 ‘여러분, 사랑합니다. 기긱기긱’이 새겨지며 쇼는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기계의 틈새마다 LED 조명이 스며들고, 조율된 소리와 빛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무대였다.

‘사람인가, 로봇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 순간, ‘기긱기긱’은 그냥 완벽한 스타였다.


피노키오는 그 엄청난 공연에 도취해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눈앞에선 무대가 돌아가고, 그의 머릿속에서도 조명이 번쩍이며 작은 콘서트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얘들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인간이야, 로봇이야, 댄스 외계인이야?’

피노키오의 호기심이 또 발동했다.

피노키오는 1부 공연이 끝나자 재빨리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아이돌들을 위한 비밀 기지 같았다.


소리를 흡수하는 패널로 둘러싸인 공간엔 조명이 은은하게 반사되고 있었고,

분위기는 마치 우주선 조종실처럼 차분하고 안정감 넘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의 공기는 달랐다.

약간의 긴장과 안도, 뿌듯함과 고요함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마치 우주의 무중력 속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피노키오 춤추는 아이돌.jpeg


‘기긱기긱’ 멤버들은 무대 뒤에서도 계속 춤을 연습 중이었다.

한 동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계속 리플레이하던 중,

피노키오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그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꽤 멋있었다.

몸도 유연하게 잘 돌아가고, 리듬감도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 피노키오를 향해 소리질렀다.

“넌 뭐 하는 녀석이냐?”


멋들어지게 턴을 하던 피노키오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얼음이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무대 관리인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피노키오를 훑어보더니 물었다.

“너 로봇이냐?”

피노키오는 당당하게 말했다.

“로봇도 그냥 로봇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이에요.”

그러자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근처에 있던 로봇 멤버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뭔가 그들 중에서 ‘업그레이드된 녀석’이 나타났다는 걸 직감한 듯했다.


‘기긱기긱’ 중 한 명이 피노키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기긱기긱’이야. 네 이름은 뭐니?”

“나는 피노키오야.”

통성명이 끝나자 ‘기긱기긱’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까 보니까 춤을 꽤 추던데, 우리랑 같이 춰볼래?”

피노키오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야 물론이지. 나도 꽤 추거든!”

피노키오와 ‘기긱기긱’은 손발을 척척 맞추며 한참 동안 신나게 춤을 췄다.


번쩍번쩍 빛나는 무대 위에서 함께 빙글빙글 돌고 깡충깡충 뛰자, 주변에 있던 로봇들도 하나둘 몰려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어느새 2부 공연 시간이 되었다.


기분이 한껏 오른 ‘기긱기긱’은 피노키오의 손을 덥석 잡더니 무대 중앙으로 끌고 나갔다.

“같이 추자!”


피노키오 공연.jpeg


‘기긱기긱’이 씩 웃으며 춤을 추자, 피노키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데 어라? 연습에는 잘 되던 춤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진 척척 맞던 발이 엇갈리고, 박자는 엉망이 되고, 급기야 피노키오가 ‘기긱기긱’과 부딪혀 꽈당 넘어지기까지 했다.


“으악!”

“저게 뭐야!”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물병을 던졌고, 누군가는 먹던 치킨 다리를 집어서 휙 던지기도 했다.


무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열심히 ‘기긱기긱’을 따라 춤추고 있었다.

손을 허우적, 다리를 붕붕! 땀이 삐질삐질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공연은 엉망이 되었지만, 로봇 친구들은 오히려 피노키오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그래, 넌 정말 대단해!”

“실수해도 끝까지 해내는 게 진짜 멋진 거야!”

로봇들의 반짝이는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했고, 피노키오의 마음도 그만큼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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