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이 돼서야 두건과 마스크는 마침내 제페토 박사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에 둘 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휘히힝…”
문과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며 내는 소리는 마치 오래된 놀이공원의 귀신 소리 같았다.
겁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마스크는 그 소리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두건도 표정이 마치 전원 끊긴 안드로이드처럼 굳어버렸다.
그때 연구실 한쪽, 조그만 유리창 틈으로 희미한 등불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불… 불 켜고 있네? 왜 이렇게 으스스하지?”
“그건 무섭다고 하는 거야, 이 바보야…”
그러던 찰나, 삐걱– 하며 문이 열렸다.
문짝은 스스로도 놀란 듯 삐끗거리며 넓게 벌어졌고,
그 사이로 덩치 큰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제페토 박사였다.
그의 옆구리엔 목발이, 얼굴엔 고된 근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거기 누구 있소?”
박사의 말에 두건과 마스크는 동시에 수풀에 머리를 처박았다.
박사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인기척이 있었는데… 피노키오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을 끝으로 박사는 다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두건과 마스크는 동시에 숨을 몰아쉬었다.
마스크는 거의 껌 씹듯 숨을 씹어 삼켰다.
“봤지? 옆구리에 뭔가 끼고 있었어. 딱 봐도 수상해.”
“그… 그거 총이었을까? 진짜로 총이면… 나, 죽는 거야?”
마스크는 전동 칫솔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동자를 굴렸다.
두건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되찾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해.”
“목숨 걸고?”
“그래. 목숨 걸고.”
“좋아. 그럼 난 너한테 내 목숨 걸게…”
둘은 겁이 나서 덜덜 떨면서도 창문으로 다시 다가갔다.
등불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제페토 박사는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덩치는 버찌 영감탱이보다 두 배는 컸고, 머리는 거의 사자탈을 뒤집어쓴 수준이었다.
마스크가 소곤소곤 말했다.
“두건. 나, 중요한 거 발견했어.”
“뭔데?”
“안경. 박사 안경을 봐봐. 렌즈가 거의 돋보기야. 우리가 살짝 벗기면… 아무것도 못 보겠지?”
“오… 마스크, 너 요즘 좀 똑똑해지는 것 같아?”
두건은 감탄하며 마스크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그러면 네가 가서 문을 열어.”
마스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뭐? 왜 나야? 승부를 내지 못했으니까, 문은 같이 열어야지. 그러기로 했잖아.”
“이제는 아냐. 왜냐하면 네가 방금 좋은 아이디어를 냈잖아.
모든 일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하는 거 몰라?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 대한 모욕이지.”
“그렇다면 나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겠어.
나는 원래 네가 하는 일을 거들기만 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할 거야. 자, 어서 문을 열어.”
두건을 짜증 나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둘 다 하자. 같이 문 열기로 약속했잖아.”
“지금 약속을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야.”
“그럼 나는 안 열 거니까 네가 열어.”
“그럼 나도 안 열 거야.”
결국 둘은 박사 연구실 문 앞에서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그 소란을 박사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거기 누구시오!”
이번엔 박사의 목소리가 훨씬 가까웠다.
그리고 곧 문이 벌컥 열렸다.
두건은 놀라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심지어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박사는 실제로 보니 훨씬 거대했고, 근육이 뽈록한 팔뚝엔 정체불명의 문신까지 새겨졌다.
한마디로, 정면 대결은 무리수였다.
하지만 그 순간, 마스크는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머릿속에 입력해 둔 대사가 줄줄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요, 멀고 먼 별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시러 온 순례자들이 옵니다~”
박사는 마스크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많이 마른 모양이구먼. 어서 들어오시오.”
마스크는 뻥 뚫린 입으로 멍하니 두건을 바라봤고, 두건은 속으로 외쳤다.
‘이 바보, 진짜로 들어가게 생겼잖아…’
두건과 마스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나씩 움직이며 천천히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어쩐지 ‘쿵’보단 ‘뚝’에 가까웠다.
내부는 어둡고 조용했지만, 뭔가 아련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속에서 제페토 박사는 또각, 또각, 절룩거리며 걸어 다녔다.
그걸 본 두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 어라?”
가만히 보니, 아까 옆구리에 끼고 있던 건 총도, 폭탄도 아니었다.
그냥… 목발이었다. 그것도 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나무 목발.
순간 두건의 얼굴에 활짝, 거의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후후후… 목발? 다리가 하나 없으시다고? 그러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이거 해볼 만하잖아?”
내심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리던 두건은 이내 부드러운 말투로 태세 전환했다.
“박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늦은 밤에 폐를 끼쳐서…
혹시라도 어르신의 수면을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제페토 박사는 마치 오래된 나무가 삐걱대듯 조용히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근심거리가 있어서 잠을 설치던 참이었어요. 자, 그쪽에 앉으시지요.”
두건과 마스크는 의자에 앉았다.
연구실은 피노키오가 있을 때보다 많이 달라졌다.
캄퓨터와 작업대는 그대로 있었지만,
모터, 배터리, 바퀴, 카메라, 디스플레이 같은 부품들은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특히 연구실 한구석에 있던 소형 용광로는 피노키오가 다리를 다친 후 아예 치워버렸다.
텅 빈 공간처럼 제페토 박사의 가슴도 텅 비었고 근심과 슬픔으로 가득 채워졌다.
두건은 박사가 가져온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후 본론을 꺼냈다.
“혹시 배구공만 한 금속 덩어리 갖고 계십니까?”
제페토 박사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금속… 덩어리라니, 무슨 말입니까?”
그 반응에 두건은 확신했다. 뭔가 있다. 그는 마스크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다 알고 왔는데 뭘 숨기냐는 표정이었다.
“숨기실 거 없습니다. 우리가 금수저를 주고 버찌 영감탱이한테 정보를 얻었거든요.
박사님이 가져간 그거,
우리가 ‘버찌 어르신에게서 빌려 간 물건을 찾으러 왔다.’라고 말만 하면 돌려줄 거라고 하더군요.”
두건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마스크는 준비된 듯 외쳤다.
“버찌 어르신에게서 빌려 간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고 큰 목소리에 제페토의 수염이 찰랑였다.
두건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내 친구가 대신 소리쳤습니다. 이제 주시죠?”
제페토 박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표정이 하얘지고, 눈은 멀리 어딘가를 응시했다. 몸도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여우 같고 고양이 같은 녀석들은 한 손으로 번쩍 들어 화로에 퐁당 던졌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다리 하나가 없었고,
피노키오가 사라진 후 오랫동안 시름에 잠겨있던 터라 기력이 많이 쇠했다.
삐걱거리는 의자 위의 제페토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사는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피노키오의 인공지능이었다.
그러나 그 인공지능만큼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제페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건의 얼굴에 먹구름이 한가득 몰려왔다.
눈썹은 번개처럼 찌그러졌고 입술은 마치 씹던 풍선껌처럼 비뚤어졌다.
“정중하게 부탁할 때 얼른 돌려주시죠.”
그 순간, 옆에서 마스크가 손을 번쩍 들며 끼어들었다.
“에이, 그건 정중한 게 아니지. 그렇게 눈이 튀어나올 듯이 인상을 쓰고 말하면 정중은커녕 협박이야.”
“좋아, 그럼, 네가 해 봐.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직접 해보시지!”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두건은 주먹을 불끈 쥐며 바닥을 쿵쿵 쳤다.
마스크는 그걸 보고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킥킥 웃었다.
“그럼 해볼게. 박사님, 정중하게 말로 할 때 다 내놓으시지요~ 히히.”
제페토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배구공 같은 금속 덩어리?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네.”
두건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외쳤다.
“이 영감탱이! 우리가 박사님이라고 불러주니까 아주 호구로 보이시나 봐? 마스크! 저 영감의 뒤로 돌아!”
“물 한 잔 얻어먹겠다고 하고서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지금 당장 나가게.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 거야.”
박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마스크는 슬금슬금 박사의 뒤로 돌아갔다.
그때 두건이 외쳤다.
“지금이야! 박사의 목을 잡아당겨!”
마스크는 두 손을 뻗어 박사의 목을 잡으려 했지만…
“이거 목이 너무 굵은데?”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도무지 손에 감기지 않았다. 마치 공룡알을 잡으려는 햄스터 같은 모습이었다.
“두건, 이거 안 잡혀! 네가 해볼래?”
“나도 바쁘다고. 지금 빈틈을 찾는 게 보이지 않아?
네가 목을 잡고 꼼짝 못 하게 하면 나는 틈을 봐서 밧줄로 꽁꽁 묶어버릴 거라고.”
“근데 밧줄은 어디 있어?”
“고물 더미 속 어딘가 있겠지.”
마스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건에게 따지려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두건이 소리쳤다.
“그리고 박사의 목발도 던져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마스크는 시키는 대로 박사의 목발을 고물 더미 너머로 휙 던졌다.
목발은 휘청이며 날아가더니 드럼통에 탁, 하고 꽂혔다.
두건이 키득거리며 다가오자, 박사는 팔을 휘저으며 잡으려 했지만,
두건은 놀리듯이 슬쩍슬쩍 피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박사의 목을 잡으려던 마스크의 손끝이 박사의 앞 목을 스치자,
박사는 간지러움을 못 참고 빵!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간지러워! 이 녀석들 뭐 하는 거야!”
한 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박사는 배를 잡고 웃었고, 두건과 마스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둘이 함께 의자를 확 잡아당겼다.
“쿵!”
박사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박사는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다리가 하나뿐이라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몸을 뒤척이며 버둥거리자, 두건과 마스크는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인공지능을 내놓으면 의자에 다시 앉혀드릴게요~”
“목발도 가져다드리고요~ 친절하게!”
하지만 박사의 입은 여전히 굳게 다물려 있었다.
두건은 이제 화가 폭발 직전이었다. 으르렁대며 말했다.
“좋아. 말 안 하겠다면, 우주에서 제일 끔찍한 고문을 보여주지!”
마스크가 기다렸다는 듯 손뼉을 쳤다.
“우주선 고문법이야!
끈으로 묶어서 우주선 밖으로 휙 던지는 거지.
산소도 없고, 엄청 춥고, 암흑 그 자체거든. 금방 기절하겠지?
그럼, 끌어당겨서 다시 살리는 거야.
그리고 정신 좀 차리면 또 휙 던지고.
몇 번만 하면 누구든 자백하게 되어 있어.”
두건은 엄지를 척 들었다.
“완벽한 플랜이야.”
하지만 박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 특유의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 순간 마스크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저기, 박사의 노트. 아까부터 열심히 뭔가 쓰던데…
혹시 거기에 인공지능 위치 같은 거, 적혀있는 거 아냐?”
두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맞아! 노트엔 진실이 담긴다니까! 얼른 가져와!”
마스크가 노트를 들려 하자, 박사가 갑자기 외쳤다.
“안 돼! 그건… 그건 내 일기일 뿐이야!”
박사의 당황한 표정은 누가 봐도 ‘뭔가 있다.’는 증거였다.
두건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흐흐흐… 딱 걸렸어. 인공지능 위치, 틀림없이 여기 적어놨을 거야. 비밀번호라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