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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과 마스크

by 이진무

두건과 마스크는 우주에서도 소문난 도둑 듀오였다.

일명 ‘갤럭시의 골칫덩이’라고 불렸다.

두건은 여우처럼 날카로운 눈에 말솜씨가 뛰어났고,
마스크는 고양이처럼 몸놀림이 재빠르고 감정 기복이 심했다.

둘은 완벽한 범죄를 꿈꾸며 ‘푸른 불꽃’이라는 별에서 최신 인공지능을 훔쳤다.

다른 별에 팔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올 거라 믿었고,
한동안 자신들을 천재라 착각하며 우주선을 몰고 도망쳤다.

하지만 현실은 늘 만만치 않았다.


우주 경찰이 뒤쫓아 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지구 근처에서 제어 불능 상태로 추락했다.

“콰아앙—!”

그 충격으로 둘은 한참을 기절해 있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가장 중요한 인공지능이 사라졌다.

“말도 안 돼!”
두건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둘은 급히 우주선의 CCTV를 돌려 보았다.

화면 속에는 놀랍게도,

코가 잘 익은 버찌처럼 시뻘겋고 반질반질한 노인이 인공지능을 번쩍 안고 유유히 떠나고 있었다.

마스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면인식 기술로 얼굴을 조회했다.
“이 사람, 이름이 버찌 할아버지야. 근처에서 고물상을 운영한대.”


버찌할아버지와 우주선.jpeg


두건은 눈이 튀어나올 듯 소리쳤다.
“이 나쁜 놈 같으니라고. 우리가 목숨 걸고 가져온 인공지능을 훔쳐?”

마스크는 민망한 듯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우리가 ‘가져왔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아. 우리도 훔쳤다고 해야지.”


“이 멍청한 마스크야! 우리가 훔쳤다고 떠들고 다니면 우리 입으로 범죄를 자백하는 거잖아!

그 말이 우주 경찰의 귀에 들어가면 어쩔 건데?”

“근데…”

마스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주 경찰한테 걸리면 어차피 끝 아닌가? 가져온 거나 훔친 거나 듣는 입장에선 똑같은데…”


“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두건은 분노 게이지가 폭발해 방방 뛰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항상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넌 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지? 이런 바보 같은 놈. 굶어 죽고 싶어서 그러냐?”

“동의하지 않는 것과 굶어 죽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어?”

“응… 왜냐하면 내가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거란 말이지.”

“네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내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거든.”


그 순간, 두건은 참지 못하고 마스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마스크의 귀여운 고양이 귀를 물어뜯었다.

마스크는 귀가 반쯤 날아가고 나서야 소리를 지르며 우주선을 뛰어다녔다.


“아악! 피 난다! 나 이제 죽을지도 몰라!

내가 죽으면 누가 이 우주선을 몰아?

두건 너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이제 우주선을 누가 몰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난 곧 죽을 거니까…”


두건은 그 말을 듣자 다급히 마스크에게 달려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물론, 뜯긴 귀는 제대로 붙지 않았다.

두건은 찢어진 귀 조각을 손에 쥐고 말했다.

“이거 잘 챙겨. 우리가 인공지능만 되찾으면 우주 최고의 귀 전문 의사한테 데려가서, 네 귀를 꼭 붙여줄게.”

마스크는 그 귀 조각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약속했다? 딴소리하면 안 돼.”

“그래. 약속이야. 이제 그 망할 버찌 영감탱이 잡으러 가자.”

두건과 마스크 발자국.jpeg


두건과 마스크가 우주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견한 것은 수상한 발자국이었다.

마치 슬리퍼를 신고 흙탕물 밟은 뒤 어정쩡하게 걷다가, 다시 깨끗한 바닥을 밟은 듯한 모양새였다.


두건은 추적 안경을 꺼내 쓰며 중얼거렸다.

“흠, 이건 분명 버찌 영감탱이의 발자국이야. 발가락이 네 개인 걸 보니.”

마스크가 눈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버찌 할아버지의 발가락이 왜 네 개야? 인간 아니었어?”

“그만큼 특이한 인간이라는 거야.”


둘은 발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안경 덕분에 희미한 발자국 위에 붉은 형광 표시가 뜨면서 길을 안내했다.


잠시 후, 둘은 외딴 고물상 앞에 도착했다.

이름은 ‘버찌의 황금 고철 백화점’.

간판은 반쯤 떨어져 있었고, 입구에는 ‘멧돼지 박사 출입 금지’라는 의문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두건과 마스크 고물상.png


마스크가 담 너머를 힐끔 보더니, 초인종 대신 애처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계십니까아~ 저희는 멀고 먼 별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시러 온 순례자들입니다~”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스크는 가뿐하게 담을 넘어 문을 열었고, 두건은 뻘쭘하게 정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입구에서 딱 멈췄다.

“헐… 이건 무슨, 폐허의 미학이냐? 우리 별하고 똑같이 생겼어.”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이 깨진 컴퓨터, 삐걱거리는 냉장고, 다리가 부러진 의자, 찌그러진 양동이…

이 모든 게 고철 냄새를 풍기며 바람에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마스크는 입을 틀어막고 중얼거렸다.

“여기 냄새가 장난 아닌데. 우주선 정비창보다 심해.”


두건은 조심스럽게 주변 냄새를 킁킁 맡다가 말했다.
“근처엔 아무도 없어. 밤일 나간 거 아냐?”

“밤일? 도둑질 말하는 거야? 야, 그건 우리 전문이잖아.”

“아, 제발 그 말 좀 쓰지 마! 우리는 그냥… 물건을 들고나온 거라니까.”

두건의 눈썹이 파르르 떨릴 때쯤, 마스크는 무시하고 고물 더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인공지능부터 찾아보자. 찾으면? 그냥 들고나오면 되는 거잖아.”

“그 말엔 나도 백퍼 동의한다.”

그렇게 해서 둘은 본격적으로 고물 더미 발굴에 돌입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완전 난장판이었다. 분류해 둔 고물들이 몽땅 뒤섞이고 말았다.


예를 들면, 고장 난 TV는 냄비 더미에 박혔고, 낡은 겨울 외투는 부러진 의자 위에 걸쳐졌고,

냉장고는 넘어져서 마당 한복판에서 기절하듯 누워버렸다.

심지어 자잘한 나사와 철심은 바람결에 마치 결혼식장 콘페티처럼 흩어졌다.

“아! 아무리 뒤져도 없네. 너무 힘들어!”


마스크가 중얼거리는 순간.

“쾅!”

갑자기 뒤에서 우레 같은 목소리가 터졌다.

“이놈들! 뭐 하는 짓이야아아!!”

둘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두건과 마스크 버찌 할아버지.jpeg

뒤돌아보니, 버찌 할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 고물 더미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반질반질한 코끝이 하도 새빨개서, 금방이라도 에너지 광선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 텔레비전이 왜 냄비 위에 있어?! 냉장고는 왜 바닥에서 뒹굴어?! 옷걸이는 왜 의자에 걸려 있는데?!”

두건과 마스크는 동시에 꿀 먹은 우주 고양이처럼 침묵했다.


그때 마스크가 속삭였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 온 걸 수도 있어.”

두건이 되받았다.
“아냐. 저 코, 맞아. 버찌 영감탱이가 확실해.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뺏는 거지.”


두건은 인상을 한껏 찌푸리더니 무슨 영화 악당이라도 된 양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저 멀~리 은하계를 건너온 우주의 암살자다!

네가 우리 우주선에서 인공지능을 훔친 걸 알고 있어.

당장 내놓지 않으면 지구를 산산조각 내겠다!”


순간 마스크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말 되는 소리를 좀 하자.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박살 내. 우주선 연료도 바닥났잖아.”

“그건… 마음의 문제야.”

두건이 당황하며 작게 중얼댔다.


버찌 할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였다. 코끝이 더 붉게 빛났다.

그는 옆에 있던 낡은 막대기를 들며 으르렁거렸다.

“무단 침입에 협박까지? 요즘 도둑놈들은 인사도 우주식이냐?!”

그리곤 막대기를 휘둘렀다. 속도는 느렸지만, 범위는 광범위했다.

두건과 마스크는 이리저리 뛰며 피하다가 결국 ‘퍽!’ ‘퍽!’ 맞고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으악! 아야야! 내 꼬리털!!”

“이러다 진짜 죽겠어! 이거 우주 조약 위반이야!”

결국 둘은 울며불며 버찌 할아버지에게 덤볐다.

마치 꼬맹이 둘이 동네 할아버지랑 씨름이라도 벌이듯이, 마당 위를 구르고 또 굴렀다.

버찌 할아버지는 힘은 셌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몇 바퀴 구르다 숨을 헐떡이며 손을 들었다.

“헉헉… 그만해! 도대체 뭐가 어쨌다는 거냐?”


두건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가 우리 우주선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갔잖아! 그 동그란 거! 반짝거리는 쇳덩어리!”

“아, 그 별똥별? 거기서 배구공만 한 쇳덩어리를 하나 주워 왔는데?”

마스크와 두건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그거다. 바로 그거야! 그것만 돌려주면 바로 돌아가겠어.”


버찌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눈이 반짝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심술이 발동한 거였다.

“맨입으로? 그건 안 되지. 그거 주워 오느라 나도 허리가 다 삐끗했어.

더군다나 너희가 여기를 어지럽혀 놔서 나는 당분간 일도 못 나가고 청소해야 해. 그 보상은 어떻게 할 거야.”

두건이 마스크를 흘겨보며 속삭였다.

“야, 뭐 줄만 한 거 없어?”

마스크는 잠시 망설이다가 슬쩍 금으로 된 숟가락을 꺼냈다.

“이거… 우주 한정판 금수전데…”


순간 버찌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했다.

두건은 깜짝 놀라 재빨리 숟가락을 뒤로 숨기며 말했다.
“야야! 그건 우리가 진짜 급할 때 쓸 거잖아! 왜 꺼내?”

“네가 꺼내보라고 했잖아!”


버찌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좋아. 그 숟가락을 주면 인공지능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안 주면… 국물도 없어!”

두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숟가락을 건네주고 말했다.
“이건 우리 전 재산이야. 이제 말해 줘.”


두건과 마스크 금수저.jpeg


버찌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숟가락을 받아 들고 흐흐 웃었다.

그러고는 마치 노련한 사기꾼처럼 입을 놀렸다.

“사실… 인공지능은 지금 나한테 없어. 제페토 박사한테 빌려줬지, 뭐야!”

“제페토 누구요?”

마스크가 입을 반쯤 벌렸다.

“동네에 사는 괴짜 박사야. 연구실에서 맨날 이상한 거 만들더니, 그 쇳덩어리를 보고선 눈이 뒤집혔더라고.

거기 가서 ‘버찌 어르신에게서 빌려 간 물건을 찾으러 왔다’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야.”

버찌 할아버지는 심술궂게 웃었다.


이미 인공지능은 그에게 없었지만 빨리 이 골칫덩어리들을 제페토 박사에게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두건과 마스크는 한참을 어이없어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 당장 가자!”

그리고 둘은 휘청휘청 고물상 문을 나섰다.

마스크는 주머니 속을 톡톡 치며 중얼거렸다.
“우리 진짜 전 재산 다 털렸다. 이거 진짜… 인공지능이 없으면 나, 그 숟가락 다시 받으러 올 거야.”

두건이 다그쳤다.
“가자, 어서! 그런데 그 박사가 무기라도 들고 있으면 어쩌지? …네가 먼저 달라고 말해.”

“왜 내가 먼저야?!”

두건은 입꼬리를 쭉 내밀며 얼굴을 찌푸렸다.
“또… 또 내 말에 동의 안 하는 거냐?”


마스크는 여전히 삐죽한 표정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버찌 영감탱이한테 얻어맞고 나서 나도 안 아픈 데가 없어.

근데 그 박사라는 사람, 진짜 무서운 무기를 갖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두건이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나더러 그 무기에 맞고 먼저 쓰러지란 말이냐?!”

마스크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주 착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는… 매사에 공평해야 해. 그래야 진짜 오래가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네가 말했잖아.”


두건은 이맛살을 찌푸리다가도 뭔가 계산이 선 듯 씩 웃었다.
“좋아. 공평하게 가자. 가위바위보다. 진 놈이 제페토 박사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고 먼저 말하는 거야.”

사실 두건은 이 게임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의 마스크는 늘 보만 냈다. 심지어 눈도 감고 있었다.


두건과 마스크 비둘기.jpeg

그런데 웬걸…

“가위바위보!”

둘은 손을 번쩍 들었다. 두건은 가위. 마스크는… 가위.

“가위바위보!”

두건은 주먹. 마스크도 주먹.

“가위바위보!”

이번엔 보자기 대 보자기.

열 번을 했는데, 계속 비겼다.

스무 번, 서른 번… 심지어 쉰 번을 했는데도 계속 똑같았다.

두건은 마스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그동안 바보 흉내를 내며 나를 속인 거 아냐? 왜 이렇게 잘해!”

“아냐. 그런 적 없어.”

마스크는 고개를 저으며 가위바위보에 집중했다. 두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백 번까지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지나가던 비둘기 한 마리가 둘의 머리 위에 똥을 싸고 날아가며 말했다.
“이딴 걸로 하루를 다 보내겠네.”

마스크가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우리 진짜 이러다가 버찌 영감탱이처럼 할아버지가 되는 거 아니지?”


두건도 털썩 앉더니 팔짱을 꼈다.
“야… 그냥 둘이 같이 말하자. 동시에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러면 무기가 나와도 둘이 동시에 맞겠네?”

“그래. 우정의 상징으로!”


결국 두 우주 도둑은 가위바위보 124번째 비긴 뒤, 우정의 이름으로 같이 제페토 박사에게 가기로 했다.

단, 둘 중 누가 문을 먼저 두드릴지는 여전히 미정이었다.

왜냐면 아직도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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