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머리 소녀

한편, 떡갈나무 옆에 죽은 듯이 잠을 자던 강도들이 깨어났다.

마스크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피노키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그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피노키오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마스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아직 살아있어!”

두건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자식, 진짜 끈질기다.

목을 매단 채 이렇게 오래 버티는 건 인간이건 로봇이건 본 적이 없어.”

두 사람은 피노키오 앞에 자리를 깔고 털썩 앉았다.
기다리다 지친 둘은 심심함을 못 참고 꿀밤 내기 가위바위보까지 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피노키오의 시야는 점점 흐릿해졌다.
눈앞의 형체들이 넓게 번지며 멀어졌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빠… 보고 싶어요…”

외마디 말을 내뱉은 후 다리가 축 늘어지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뻣뻣해졌다.
피노키오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됐다! 드디어 됐어!”
두건과 마스크는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승리의 기쁨에 들뜬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공기에서 낮게 진동하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번쩍!’

어둠 한쪽이 밝아지며 눈부신 하얀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나타난 건, 푸른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그녀는 피노키오가 밧줄에 매달린 모습을 보자마자 눈빛이 확 바뀌었다.

“네놈들이 이렇게 했냐?”

그녀의 뒤에 있는 호위병들이 뛰쳐나가려 하자, 소녀는 손을 들어서 막았다.
그리고 광선총을 꺼내 들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푸른빛이 넓게 퍼지며 두건과 마스크를 뒤덮었다.

“으아아아아악!!”
두건과 마스크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큰일이다! 하얀 별 공주가 우리를 잡으러 왔어!”
“도망쳐! 빨리 도망치자!”

두 사람은 뒷걸음질 치며 정신없이 숲속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퍼져나간 빛이 빠르게 둘을 덮쳤다.
두건은 눈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앞이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마스크는 휘청이며 넘어진 채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가… 다리가 말을 안 들어! 이건 반칙이야, 반칙!!”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피노키오 쪽으로 걸어갔다.
호위병들이 순식간에 밧줄을 끊고 그를 부드럽게 받쳐 들었다.

피노키오는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소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괜찮아. 내가 왔어.”

숲은 조용했고, 그 고요 속에 그녀의 말이 무겁게 울렸다.

공기엔 아직 빛의 잔해가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숨만 쉬고 있을 뿐, 사실상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푸른 머리 소녀는 그런 피노키오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곧 경호원에게 소리쳤다.

“강도들 당장 잡아 와! 똑같이 만들어줘야겠어.”

멀찍이 떨어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두건과 마스크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쳤다.
운 좋게 근처에 갈라진 땅 틈이 있어, 재빨리 그 안에 몸을 숨겼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덜덜 떨었다.

경호원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둘은 끝내 들키지 않았다.

“공주님! 이미 도망간 것 같습니다!”

공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흥, 두고 보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땅속의 두건과 마스크는 그 자리에서 탈수증세가 올 정도로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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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피노키오를 조심스레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늘보는 이제 막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공주는 본체만체 집으로 들어갔다.
나무늘보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공주는 피노키오를 진줏빛 자개로 장식된 작은 방에 눕히고,

우주선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들을 호출했다.

곧 문어, 당나귀, 올빼미 모양의 우주인 의사들이 허둥지둥 도착했다.

그들이 피노키오의 침대맡에 나란히 섰고, 공주는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 아이… 죽은 건가요, 살아있는 건가요?”

먼저 나선 건 문어 의사였다.

그는 여덟 개의 팔로 이곳저곳을 눌러봤다.

관절이 잘 움직이는지 꺾어보고, 목이 잘 돌아가는지 비틀어 보았다.

머리를 꽉 눌러서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살펴봤다.

그러나 끝내 반응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