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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을 만나다

by 이진무

한편, 피노키오는 여전히 문틈에 코가 딱 걸린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공주 누나… 제발요… 코 좀 줄여 주세요… 저 진짜 배고파요…”

목소리는 이미 코끝에 묻은 먼지 때문에 콧소리 섞인 애절함, 그 자체였다.


공주는 팔짱을 낀 채 냉정하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으려 했는데… 저 눈물범벅을 보고도 가만히 있긴 어렵지…”


결국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을 치켜들었다.
“콴텀 로봇! 피노키오의 코를 깎아줘!”


그 말이 끝나자, 어디선가 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반짝이는 나노 선반이 등장했다.
눈에는 렌즈, 팔에는 미세 회전 칼날을 단 그 로봇은 회오리처럼 피노키오의 코를 둘러쌌다.

“자, 얌전히 있어. 미세 조정 들어간다~”


“콰콰콰콰콰—”


코는 마치 사포질이라도 당한 듯 매끈하게 깎여 나갔고, 불쌍하게 튀어나왔던 코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원래보다 더… 멋있어졌다.

날렵한 콧대, 자연스러운 윤곽, 마치 성형수술이라도 한 것 같았다.


피노키오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공주 누나는… 진짜 좋은 분이에요… 전 누나를 너무 사랑해요…”


공주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널 사랑한단다. 나랑 함께 있고 싶니?”


“네! 완전요!”

“그럼 내 동생이 되어줄래? 난 진짜 좋은 누나가 되어줄 자신 있어.”


피노키오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죠! 그런데… 우리 아빠는 어쩌죠?”


공주는 기다렸다는 듯 피노키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생각해 뒀어. 아빠도 이제 모든 걸 알고 계셔. 오늘 밤이면 여기 도착하실 거야.”


피노키오 파란머리 소녀.jpeg


피노키오는 그 말을 듣자마자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진짜요? 아, 너무 좋아요! 공주 누나, 저 공주님만 괜찮으시다면 아빠를 마중 나갈게요!

저 때문에 고생하신 불쌍한 아빠를 얼른 만나 입 맞춰 드리고 싶어요!”


공주는 피노키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렴. 대신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 숲길로 가면 틀림없이 아빠를 만나게 될 거야.”


피노키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엔 진짜 잘할 거예요. 코도 길어지지 않게, 정직하고 멋진 로봇이 될 거예요!”


공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내 동생. 가서 아빠를 꼭 껴안고, 이렇게 말해드려. ‘아빠, 이제 나 좀 멋있지 않아요?’”


그 말에 피노키오는 코끝이 찡해지며 대답했다.
“네, 꼭 그렇게 말할게요.”


그리하여 피노키오는 코를 한껏 자랑하며, 숲길을 따라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피노키오 숲속 친구.jpeg


숲은 피노키오의 작은 발걸음을 마치 VIP 대접하듯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흙길은 금빛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발밑의 이끼는 푹신한 녹색 카펫처럼 걸을 때마다 기분 좋은 감촉을 선물했다.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조각조각 부서져 내려오며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났고,

솔잎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며 마치 “이리로 가요~ 이리로 가요~”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길가에는 들꽃들이 피노키오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고,

머리 위에선 다람쥐들이 나뭇가지를 타고 쌩쌩 지나가며 구경했다.
새들은 고막을 간질이는 배경음악처럼 지저귀었고, 그 멜로디에 피노키오는 혼자서 킥킥 웃었다.


숲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들이 하나같이 “잘 다녀오렴, 피노키오!”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그 길의 끝에는 따뜻한 품을 가진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숲은 영화 세트장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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