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에서

by 이진무

피노키오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천 킬로미터.

숫자로는 간단하지만, 직접 걷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쉬운 길이 아닐 거란 걸 알았지만,

마음속엔 오직 하나—제페토 아빠를 다시 만나는 것,

그 목표만이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도 나처럼 걷고 있었겠지? 아니, 목발을 짚고 있었으니까 훨씬 더 힘들었겠지…”

입술을 꼭 다문 피노키오는 되뇌듯 혼잣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자마자, 한 발 한 발에 더 힘이 실렸다.


다행히 숲속엔 피노키오를 돕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청설모는 땅콩을, 고슴도치는 잘 익은 사과를 굴려주었고,

까치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쪼아 떨어뜨려 주었다.


나무 그림자 아래 잠깐 쉬고 있던 피노키오가 동물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이 길로 제페토 아빠가 지나간 거 본 적 있어? 목발을 짚은 분이야.”


그러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동물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봤어! 이 길로 갔어!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피노키오는 반가움에 웃으며 동물 하나하나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그거면 충분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숲을 빠져나온 건 며칠 후였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더니,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이 나타났다.

그 들판 넘어, 아득히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듯한 산이 보였다.


“와~ 이거 너무 먼 거 아냐?”

만약 예전의 피노키오였다면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피노키오는 눈을 빛내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들판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피노키오! 잘 가! 꼭 아빠를 만나야 해!”


숲속 친구들이 작별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다람쥐는 두 손을 흔들었고, 까치는 하늘을 한 바퀴 선회했다.

고슴도치는 수줍게 손을 흔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피노키오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모두 고마워. 나, 절대 잊지 않을게. 다들 잘 지내…”


그렇게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무와 풀, 그리고 따뜻한 마음들을 뒤로한 채.


앞으로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몰랐지만, 피노키오의 발걸음엔 힘이 있었다.

아빠를 향한 마음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넓은 초원을 걷고 또 걸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너무 커서 무슨 드림랜드에 온 것 같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숲과는 또 다른 공기였다.

더 시원하고, 더 넓고, 뭔가 가슴 안쪽까지 시원하게 파고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와… 세상에, 이게 진짜야?”
피노키오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초원 피노키오.jpeg


초원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풀밭 위로 금빛 햇살이 내려앉았고,

바람은 가볍게 피노키오의 뺨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풀밭 위로 들꽃들이 알록달록 고개를 내밀었고,

멀리서 사슴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이쪽을 바라봤다.
풀숲 사이에선 토끼가 툭 튀어나와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아빠는 저 산 너머에 계시겠지?”

그의 시선은 멀리 솟은 산을 향했다.
푸른 실루엣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진짜 조금만 더.”
피노키오는 손을 꽉 쥐었다.

두려움으로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히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너무 파래서 눈이 시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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