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묘비

by 이진무

농부는 그들이 뭐라고 말싸움하든 상관없이

족제비들은 모두 자루에 넣고 두건과 마스크는 꽁꽁 묶었다.


피노키오가 농부에게 말했다.
“농부님, 이 두건이랑 마스크는 진짜 혼 좀 나야 해요. 게다가 현상금도 걸려 있어요!

경찰에 신고만 하면 큰 상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


두건이 바로 발끈했다.
“야, 피노키오! 너 진짜 이러기냐? 우리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피노키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잘해줬다고? 뭘?”


두건은 손가락을 펴가며 말했다.


“첫째! 널 그 끔찍한 제페토 영감탱이의 손아귀에서 구해줬고,

둘째! 학교 안 가도 되게 해줬고,
셋째! 넓은 세상을 보여줬고,
넷째! 목이 졸리는 짜릿한 순간도 경험하게 했지.”


마스크도 손을 번쩍 들며 맞장구쳤다.
“그리고 감옥 체험도 있어! 도대체 누가 그런 경험을 시켜주겠어.”


농부는 그 말을 듣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이야, 요놈들 말하는 거 봐라! 피노키오, 진짜 현상금 걸린 애들이 맞냐?”


“네! 사기죄로 수배됐어요. 수배 전단에 얼굴도 있어요.”


농부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피노키오. 넌 진짜 큰일 했다. 이제 풀어줄게.”


그러고는 포도 두 송이를 건네며 말했다.
“자, 도둑 잡은 보상이다. 잘 가거라~”


피노키오는 포도를 품에 안고 유유히 돌아섰다.

두건과 마스크를 한 번 힐끔 바라봤는데, 눈이 마주치자, 두건이 갑자기 폭주했다.
“피노키오! 배신자! 넌 평생 저주받을 거다아아!”


마스크도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그래! 내가 저주할 거다! 스무 살까지 이마에 뾰루지 나라!”


그때 농부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고함쳤다.

“이놈들이 시끄럽게 어디서 떠드는 거야.”


두건과 마스크는 바로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피노키오는 코웃음을 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농부의 집을 떠났다.


“현상금을 타면 바로 집 지키는 개를 사야지~”

뒤에서는 농부의 콧노래가 흥겹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풀려나자마자 공주 누나의 집으로 달려갔다.

넉 달이 넘게 지난 탓일까, 굉장히 길이 낯설게 보였다.


더군다나 공주 누나의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큰 전쟁터를 지나는 듯했다.

나무들은 가지가 부러지고 껍질이 벗겨진 채로 비틀려 있었고,

일부는 뿌리째 뽑혀 누워 있었다.


바닥엔 타버린 잎과 부서진 가지들이 흩어져 있었고,

검게 그을린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동물들의 흔적은 사라졌고,

새들의 노래 대신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한때 생명으로 가득하던 숲은,

이제, 마치 숨을 죽인 채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듯했다.


숲길 피노키오.jpeg


피노키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공주 누나. 무사해야 할 텐데.’


피노키오는 두리번거리면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 아프다! 아직 낫지 않네!”


목소리가 너무 애처로워 피노키오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았다.

동그란 얼굴에 반짝이는 눈망울의 호기심 가득하고,

뭔가 장난을 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너구리가 있었다.

그냥 보기엔 저녁 먹고 실컷 놀다가 졸린 듯한 표정인데,

웬걸, 눈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피노키오는 물었다.

“너구리야! 왜 그렇게 슬피 우니? 너도 혹시 사기를 당했니?”


“그건 아냐!”


“그럼, 왜?”


“사실은 몇 달 전에 요 앞 공주의 저택에서 큰 싸움이 있었어.

검은 가면을 쓰고 날개를 단 무시무시한 녀석들이 공주의 저택을 마구 공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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