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수 Feb 12.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2020년 새해가 밝았다. 다들 들뜬 분위기로 새해를 말하나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냥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온 것 일뿐. 시간은 순환되지 않는다.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이 부질없이 그 시간을 쪼개 1년, 한 달, 하루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난 지금까지 65년을 살아 온 게 아니라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그냥 쭈욱 살아 온 것에 불과하다. 그걸 구태여 시간을 나누어 몇 년을 살았고, 몇 년을 해 왔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대로 한다면 나는 65년을 살아 왔고, 40여 년간 학교에서 근무했고, 정년퇴직을 했고, 그 후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또한 거문오름에서 해설사 활동을 한 지도 또한 그만큼이다.

                                                          (유산센터에서 바라 본 거문오름)

  

 학교에 근무하면서 내 자신에게 너무 게을렀다. 먹고 자고만 반복할 뿐 도통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당뇨가 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반성을 많이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어린애들이 먹을 게 없어 굶어 죽기까지 하는데 나는 지나치게 많이 먹기만 할 뿐 섭취한 칼로리를 거의 소모하지 않았으니 내 몸에 죄를 지은 셈이라고 자성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에게 투자를 해 보자 결심했다. 시간이 나면 꾸준히 걸었다.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씩 돌기도 했고, 점심 식사 후에는 일부러 마을 안길을 돌면서 학부모나 주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고는 또 저녁이면 별도봉과 사라봉을 오르기도 했다. 토, 일요일에는 한라산 숲길을 혼자 다녔다. 누구랑 같이 가는 것은 그에게 민폐가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귀찮아서였다. 그 결과인지 당뇨 수치는 아주 내려갔다.


의사 선생님이 놀라워하며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일을 한거요?”
 “특별히 한 게 없는데요?”
 “운동은 열심히 하세요?”
 “네, 1주일에 10시간 정도”
 “약은 잘 드시죠?”

 “네,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날짜를 보니 잘 챙겨 드시는 게 맞고”
그리고 다시 물었다.
 “식사량은?”
 “선생님 말씀대로 2/3로 줄였습니다.”
 “그렇구나! 바로 그게 특별한 것입니다. 특별한 거 다른 거 없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시킨 대로 했는데 특별한 거라니. 아뫃든 고마운 분이다.


  그러나 퇴직을 하게 되니 자신이 없었다. 내 게으른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직을 한 달 여 앞두고 도청이나 시청 홈 페이지 게시판을 시간이 날 때마다 뭐 따로 할 것이 없나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세계자연유산 해설사 양성 교육 공모였다. 근무처는 거문오름, 만장굴, 비자림, 성산일출봉 4곳이었다. 양성교육 성적이 따라 배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번영로에서 거문오름으로 들어가는 초입길, 직선이 아닌 곡선이라서 참 아름답다.)

  

거문오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문오름은 그 전 몇 번 다녀왔다. 아니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기 전에도 두 번인가 다녀왔다. 사실은 억지로 끌려 간 것이다. 같이 근무하던 교장 선생님이 무척 오름을 좋아해서 일요일이 되면 같이 가자고 자꾸 나를 졸랐다. 내가 싫은 기색을 보이면 점심과 술, 안주도 자기가 마련하겠노라고 해서 끌려갔다. 진짜로 그 교장 선생님은 내 도시락과 소주, 안주를 마련해 오셨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은 곳이 거문오름이다. 이 곳이라면 하루 운동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을 했고 교육 이수 후 나는 내 소망대로 거문오름에 배치가 되었다. 그 후 올해가 만 3년째이고 햇수로는 4년째가 된다.

                                     (세계자연유산 센터 전경, 뒤로 보이는 오름이 거문오름)

  

  처음엔 진짜로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했다. 약간의 수당은 있지만 그건 내 목적이 아니었다. 장자처럼 그냥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逍遙) 것을 소망했을 뿐이다. 별 부담없이. 그러나 막상 50여명의 탐방객을 앞에 두고 해설을 하려니 별 부담이 없는 게 절대 아니었다. 40여년을 교단에서 말로 살아왔건만 여기서는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면 자꾸 더듬거리게 되고 그럴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료 해설사님이나 재수 없이 초짜 해설사를 만나게 된 탐방객들에게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민폐가 되고 말았다. 매뉴얼과 거문오름 책자가 있어 밤새 읽고 갔는데 내 눈에는 거기에 소개된 있는 식물이 안 띄었다. 꽃이 피거나 열매가 달리면 그나마 구분이 되는데 잎이나 수피(樹皮)로서는 아무리 눈 여겨 보아도 다 거기가 거기였다. 다행히 경력이 많은 해설사 동료들이 있어 난 묻고 물었다. 한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하나씩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차차 익숙해진 거문오름은 나에겐 매일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겨우 46만평 정도 밖에 안 되는 분화구 속의 숲의 세계는 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달랐다. 이제까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나치던 들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서툰 글 솜씨이나 무모한 도전을 하게 만든 이유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 있었을 뿐 얼른 손이 가지 않았다. 내 성질 탓이다. 항상 한다한다 하면서 못 하곤 나중에 꼭 후회하곤 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바로 꼭 나를 말하는 것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제라도, 올해가 가기 전에, 후회되지 않게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된 것이다. 올해 못하면 영원히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전문 글쟁이가 아니다. 글이라고는 학창시절 백일장 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억지로 써 본 것이 전부다. 그러니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짜증날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서 계절 따라 형형색색으로 피어나는 거문오름의 꽃과 나무, 그리고 새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한다. 때로는 내가 살아온 이력의 넋두리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내 주변의 사람 사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고, 거문오름에 탐방오신 분들의 이야기도 양념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정기적으로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꽃이 피면 쓰고 새 잎이 돋으면 쓰고, 여름 철새가 날아오면 그 소식을 전하고, 그렇게 쓰고 싶다. 한 1년 쯤 쓴다면 거문오름 이야기를 대충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이나 내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 거문오름의 생태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