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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수 Feb 12.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1월의 거문오름의 식물들


겨울산은 어디든 황량하다. 꽃은 이미 진지 오래고 그렇게 짙푸르던 잎도 거의 지고 없다. 천지를 하얗게 흔들어대던 억새꽃도 거의 벗은 채로 바람에 가냘프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1월이지만 거문오름에는 이외로 우릴 반겨 주는 반가운 식구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식나무이다. 한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늘푸른 나무인 식나무는 이제야 초록색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다른 나무들이 다 지고 나서야 자기 본연의 색깔을 드러내어 홀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식나무. 잎 가장자리에는 톱날처럼 되어 있고 겨울에 빨간 열매가 달린다.)

                   

  식나무는 청목(靑木) 또는 넓적나무라고도 한다. 그늘진 곳을 좋아하여 숲속에서 잘 자라므로 줄기는 대개 가늘다. 이 분화구 안이 한반도에서 최대 군락지라고도 한다. 잎은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이 모양의 굵은 톱니가 있어 비교적 알아보기 쉽다. 꽃은 암수딴그루이다. 3∼4월에 자줏빛으로 피고 여름철에는 초록색 열매가 달리는데 이 열매가 늦가을 쯤에 빨갛게 익어간다. 그러다가 겨울철이 되면 빨간색으로 익어 겨울 내내 나무에 달린다.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나무는 공기를 정화시키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하니 정원수나 실내에서 화분으로 키워 봄직한 나무이다. 번식은 꽃꽂이와 종자로 가능하다고 한다. 거문오름에서는 분화구 초입에 용암협곡에서 볼 수 있고, 조금 들어가 다시 용암협곡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앙증맞은 그 빠알간 열매를 볼 수 있다. 이 보다 능선길에는 더 많이 있어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능선길을 권하고 싶다.
식나무 중에서 잎에 노란색 점이 있는 것은 금식나무이고 특히 식나무와 비슷하여 헷갈리게 만드는 나무가 참식나무이다. 사실 참식나무는 이름만 식나무와 비슷한 뿐 전혀 다른 나무이다. 식나무는 층층나무과인데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의 식물이다. 아마 겉모양이 비슷하여 우리 조상들이 비슷한 이름으로 불러 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 구분하는 방법은 참식나무의 잎에는 톱니가 없고 잎이 조금 작다. 참식나무 꽃은 10∼11월에 잎 겨드랑이에 피고 황백색이다. 열매는 식나무는 핵과(核果 내과피가 단단히 경화되어 핵을 형성하는 과실)인데 비해 참식나무는 장과(漿果 과육 부분에 수분이 많고, 연한 조직으로 되어 있는 열매)로 둥글고 다음해 가을에 붉게 익는다. 그러니 식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참식나무. 식나무와는 달리 잎 가장자리에 거치(톱날모양)이 없다.)

                       

  이 겨울 거문오름에서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식물도 있다. 줄사철과 송악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경쟁하듯 큰 키 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겉모양은 서로 비슷하나 꽃이나 열매를 보면 얼른 구분이 된다. 줄사철은 사철나무의 꽃과 크기만 작을 뿐 꼭 닮았다.

(줄사철. 꽃은 사철나무와 아주 비슷하나 크기가 조금 작다.)

                               

  송악은 꽃이 흰색으로 피며 약간 비릿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겨울철 밀원(蜜原)식물이 되어 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꽃이 지고 나면 초록색 둥근 열매가 열리는데 4-5월이 되면 까맣게 익는다. 나무나 돌담을 갈색 줄기에서 나온 많은 공기뿌리 감고 올라가면서 높게 자라는데 돌담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지역할도 해 준다. 서양에서는 아이비라고 하는데 이외로 꽃집에 가면 비싼 값으로 판다. 내가 사는 동네 한길에는 아이비 꽃길을 만들어 집단 식재를 해 놓기도 했다. 아마 돈을 주고 사다 심었으리라.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주변에 지천인데도 말이다. 우리 말로 ‘송악’이라 하는 걸 외국어로 ‘아이비’라고 해서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화사대주의’가 아닌가 생각되어 씁쓸하기만 하다.


(송악. 꽃은 밀원식물이 되기도 하고 열매는 폭총놀이에 쓰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송악의 열매는 좋은 놀이거리가 되어 주기도 했다. 폭총의 탄알을 송악 열매로 하기도 하였다. 폭총은 원래는 폭이라는 열매를 이용해서 쏘아서 폭총이라고 하는 건데 폭 대신에 송악 열매를 쓰기도 했다. 오히려 폭 보다는 송악 열매가 더 효과가 좋았다. 어 떤 때는 송악 열매를 폭총으로 쏘면 총구에서 하얀 연기 솔솔 새어 나오기도 했다.

  폭총은 대나무 대롱에 가늘고 길쭉한 덮개로 '폭(팽나무 열매)'을 앞쪽으로 밀어 막 아놓고, 다시 '폭'을 넣어 밀면 대롱 속의 공기가 압 축되는데, 그 뒤의 덮개를 탁 치면 그 힘을 받아 압축 된 공기의 힘에 대롱을 막았던 앞쪽의 '폭'이 세차게 '폭'소리를 내며 날아가게 된다. 폭'이 없을 때는 종이를 적당히 씹어서 둥글게 하여 '폭'을 쏠 때처럼 쏘아도 된다.


(나무를 감고 올라 간 줄사철)

                                                       

(나무를 감고 올라간 송악 줄기)

                                                       

  송악 열매가 익기 전에는 딱딱해서 폭총 앞 쪽과 뒤 쪽에 열매를 밀어 넣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송악 열매가 까맣게 익어서 약간 물렁물렁해 무렵 이 놀이 를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송악 열매를 밀어 넣는 엄지 손가락에 새까맣게 물이 든다. 집에 돌아와서 씻어야 하는데 아직은 추운 계절이어서 씻기 싫어 그냥 있다가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은 일이 기억나기도 한다.


  어제 카 센터에 엔진오일을 갈려고 갔다 온통 눈에 덮인 자동차를 보았다.
“이 차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데 이렇게 눈이 쌓였어요?” 하고 물으니
“한라산과 중산간에 눈이 많이 쌓였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주는 좁은 지역이지만 이렇게 일기변화가 심하다. 겨울에 해변에 오는 비는 한라산에서는 눈이 되어 내린다. 아마 날이 걷히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의 장관을 볼 수 있겠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보니 거문오름에 눈이 와서 빙판이 되었으니 조심하라는 동네 해설사 선생님이 알림이 와 있었다. 거문오름은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눈도 많이 온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없어 그냥 가려나 했는데 아무래도 섭섭했나 보다. 그러면 지금쯤 거문오름은 설국장관을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다. 분화구 안에는 늘푸른 나무들이 있어 눈이 쌓이면 다른 곳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겨울의 세찬 바람도 분화구 안에는 아주 잠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톡에 분화구 안의 사진을 올려달라고 부탁을 해 놨다. 그랬더니 금방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나무에 쌓인 눈(2020.1.15)

                                                      


거문오름 등산길 초입(2020.1.15)

                                                     

거문오른 정원(2020. 1. 15)

                                                                     


  바쁘지 않았으면 얼른 달려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올해 거문오름의 눈구경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동료 해설사 님들의 사진으로 감상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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