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에서 봄을 보다!
언제부터 봄일까?
흔히 입춘을 봄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이외로 이 시기에 추울 때가 더 많다. 올해는 오히려 입춘(2.4)이 한참 지나고 눈이 내리고 추웠다. 그래서 절기상으로는 봄이라 하지만 아직 봄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란 이런 것일까.
봄이란 말은 ‘불’의 옛말 ‘블’과 ‘오다’의 명사형 ‘옴(來)이 합해진 ’블+옴‘에서 ’리을‘이 탈락하여 ’봄‘이 되었다고 한다.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는 우리말 ‘보다’의 명사형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우수를 지나 봄이 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생명의 힘이 솟아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며, 동물들도 활기찬 움직임을 하는 것들을 ‘새로 본다’는 뜻인 ‘새 봄’의 준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자의 春은 풀(艹)과 햇볕(日)이 합쳐진 글자로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올라오는 새싹과 초목을 함께 그린 것이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아 나무의 여린 새 움이 힘차게 돋아나오는 때’를 뜻한다고 한다.
영어로는 ‘spring’인데 이 단어는 원래 돌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오는 옹달샘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풀과 나무의 새 움이 땅을 뚫고 솟아나오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뛰쳐나오는 때라고 하여 봄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툭 튀어나오는 것을 ‘스프링처럼 튀어 나왔다’라고 하는 건가?
우리말과 한자, 영어의 봄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한자의 春이나 영어의 ‘spring’는 그 주체가 자연인데 비해 우리 말 ‘봄’은 주체가 사람이다. 우리 말의 탁월함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봄을 알려면 새로 나오는 그 무엇을 보아야 한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던지, 단단한 가지에서 트는 새움을 보던지, 노루귀 같은 앙징맞은 봄꽃을 보던지. 개구리가 튀어 나오는 것을 보던지.
드디어 나왔다!
일전에 ‘얼음새꽃’이 피었단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해드리면서, 이제 곧 ‘노루귀’가 필거라고 했는데 드디어 올라왔다. 이젠 봄이 확실한가 보다.
이 깜찍한 ‘노루귀’의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 이다. 뒤에 Nakai가 있는 걸로 보아 일본인이 붙인 학명일 것이다. 좀 씁쓸하긴 하지만 다 우리의 못난 탓이니 Nakai란 분을 탓할 순 없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우리가 대인배가 된다. 꽃말은 ‘인내’이다. ‘몇 년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괴로운 겨울을 넘기고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 ‘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이 원산지라고 하니 더욱 반갑다. 주로 산지에서 자란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나무 밑에서 자란다. 키는 10~20cm 정도. 환경 적응력이 좋아 자생지에 따라 꽃의 색을 달리한다. 민간에서는 식물 전체를 종기를 치료하는 데 쓰이며, 봄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독성이 있는 식물이므로 약재로 사용할 때에는 전문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중국에서는 털 돋은 잎이 나오는 모습이 노루귀 같다하여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고 부른다. 獐耳는 ‘노루귀’란 뜻이고, 細辛은 ‘그 맛이 얼얼하니 매운 데가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눈을 가르고 나온다고 해서 "雪割草(ユキワリソウ : 유끼와리소우)", 라고 부른다고 한다.
거문오름의 것은 작게 변형된 새끼노루귀이다.
이 노루귀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어느 산골 기슭에 외딴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이 오두막집에는 홀어머니와 어린 딸 아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이 딸 아이가 봄나물을 캐러 혼자서 산중턱까지 올라갔다. 딸 아이가 열심히 나물을 캐고 있는데 요란한 말굽소리가 들려왔다. 말발굽 소리의 정체는 바로 포악하기로 유명한 그 고을의 원님 일행들이었다. 고을원님은
“산속에 있는 노루며 토끼, 꿩 같은 짐승들을 모조리 잡아가도록 하겠다”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딸아이는 짐승들이 걱정되어
“노루야, 토끼야, 꿩아 어서 숨거라”하며 외치고 다녔다.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본 고을원님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홀어머니 생각에 끝까지 거절했고, 고을원님과 그 일행은 강제로 그녀를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딸아이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엔 흰색의 꽃 한포기가 남아 있었다.
그 꽃에는 노루의 귀처럼 희고 긴 털이 많아 나 있었다. 사람들은 딸아이의 예쁜 마음씨를 생각하며 그 꽃을 ‘노루귀’라고 불렀다 한다.
실제로 거문오름 분화구에는 노루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재수가 좋은 탐방객들은 종종 구경을 한다. 여름에 더울 땐 복 좋게 시원한 풍혈(風穴)에서 놀다가 사람을 보면 비실비실 피하기도 한다. 노루에 뽀송뽀송한 털이 노루귀의 털과 비슷하다.
‘설악의 시인’이라고 불이던 이성선은 아래와 같이 노루귀를 읊었다.
늦은 저녁 산에 귀 대고 자다
달빛 숨소리 부서지는
골짜기로
노루귀꽃 몸을 연다
작은
소리
천둥보다 크게
내 귀속을
울려
아아
산이 깨지고
우주가 깨지고
(노루귀꽃 숨소리/ 이성선).
노루귀 하나 피는데 산이 깨지고, 우주가 깨진다고 하니 확실히 시인의 감수성은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특별한가 보다.
다른 오름에서는 벌써 일찍 변산바람꽃이 피기도 하였다.
우리 글을 아름답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켈리 그라피피를 하시는 분들이다. 그 작품들 중에 ‘봄’을 나타낸 것을 보니 ‘꽃’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래 작품을 보면 가느다란 줄기에 솜털이 솜솜 난 것이 너무나 노루귀를 닮았다. 설마 노루귀를 생각하며 그린 것은 아닌지.
아~ 이제 봄이 왔다. 산과 들에는 온갖 생물이 기지개를 켜며 나오는데 나는 벌써 졸음이 쏟아진다.
봄 글자도 하품을 하면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