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한 줄이 새겨진 임테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나도 안 슬픈 사람처럼 아무 티도 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주 침착하게 습관처럼 임테기를 휴지통에 버리고는 방에 와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그 순간들의 반복...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마음에선 슬픔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도 제발 두 줄을 보았으면...'
하도 두 줄을 보는 게 소원이었어서 코로나 테스트 양성결과가 나왔을 때 묘하게 기뻤던 기억이 난다.
나도 드디어 두 줄을 봤다고...
수없이 증상놀이를 했다.
이상하게 졸리고, 속이 더부룩하고, 갑자기 매운 게 먹고 싶고...
아무리 멀더라도 쫄면 파는 한인식당을 검색해서라도 먹으러 가야 할 것 같았다.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가끔 찾아도 이 정도로 매운 게 먹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정말 임신인 것 같다!'
항상 이번엔 뭐가 다른 것 같았다. 임신 극초기 증상이라는 증상은 모두 다 겪어본 것 같다.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은 그냥 갑자기 매운 게 먹고 싶고, 신게 먹고 싶고, 그냥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그냥 갑자기 속이 쓰리고 졸렵고 피곤하고 그러기도 하다는 것을...
내가 그런 증상놀이를 수없이 해왔다는 것을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같이사는 남편에게야 하루종일 숨길순 없어 털어놓을 때가 있었지만 모두 시원스레 이야기하진 않았다. 주변에 나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고, 있다고해도 모두 사정이 달랐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다 숨기고 싶었다. 이번엔 뭔가 다른 것 같은 감이 왔을 때, 몰래 스마트폰을 들고 '임신 극초기 증상'이란 검색어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으며 무수히 맞는 것 같다 혼자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그렇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래도 아이를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겪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위로받고 또 희망하며 긴 세월을 보냈다.
곧 우리가 결혼한 지 15주년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보다, 오페라가수가 되는 것보다 엄마가 되는 것이 더 큰 꿈이었던 나는, 그 간절하고도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붙들고 희망하며, 절망하며 긴 기다림과 아픔의 시간을 견뎌왔다.
그러던 내가 요즘에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아프지 않으며, 밝은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기엔 생물학적으로 좀 어렵다 하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현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이젠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독일에서 교사로 일하며 유아들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쳤다. 내 아이를 가질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내 아이들처럼 마음으로 아껴줄 수는 있다는 기쁨을 만났다. 내 아이는 많아야 세네 명이겠지만 나는 한 학기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케어한다. 내 아이는 크고 나면 어른이 되어버리지만 나는 어리고 자라나는 새싹들인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들을 계속 만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아름답고 순수하지만은 않은 괴물로 돌변할 때, 나는 퇴근해서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부모들의 풀타임 자식사랑에 비교할 순 없겠지만,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는 '스승의 은혜' 노랫말처럼은 사랑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내가 어떤 세월을 겪어왔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힘을 얻도록 내 아픔을 나누고 싶다.
난임과 불임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여기에 그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꼭 아이가 없어도 엄마가 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등을 토닥이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