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전에 세 번의 진지한 연애를 했다.
아름답고 순수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대학동기와의 가슴 아픈 첫사랑.
나 아니면 안 되겠다고 부모님까지 찾아와 내 맘을 홀딱 빼앗았던 희대의 입 담꾼, 로맨티스트와의 두 번째 사랑.
훤칠한 키와 기막힌 슈트발로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하지만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힘들었던 공대 박사와의 세 번째 사랑.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헤어지긴 했지만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가볍게 누구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 남자 모두 나를 초반부터 부모님께 소개해주며 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고,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나 또한 매번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 마음을 다했고, 늘 행복한 성가정을 꿈꾸었다.
그런데 그 세 번의 진심이었던 사랑이 끝내 모두 이루어지지 않자 나는 ‚인간과의 사랑은 유한하고 부질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며, 어렸을 때부터 수도자의 삶에 대한 동경을 가졌던 나는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래서 나를 그 뭇 여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게 했던 세 번째 남자와의 사랑이 끝났던 2009년, 나는 독일 명문 음대에서 성악으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콩쿠르만 나가면 상을 받고, 한때 라이징 스타라고 음악잡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독일에서는 그 이름난 음대에 최고 연주자 과정에 덜컥 합격한 것이 내 행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모두가 넌 잘 될 거라고, 넌 특출하다고 칭찬했지만 난 늘 자신이 없었다. 유학을 보내주실 형편이 안 되는 부모님께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알바를 뛰고 돈을 아끼느라 항상 궁핍했다. 그래서 넉넉하게 서포트받는 친구들에 비해 몸과 마음이 늘 위축되어 있었다. 게다가 동양인으로서의 외모가 서양고전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에 어울리지 않으니 서구 소프라노들과의 경쟁에 불리할 거라는 자격지심에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파마를 했고, 얼굴이 작아 보이려고 머리엔 훗까시를 넣고, 눈이 커 보이려고 화장도 속눈썹까지 붙여 엄청 진하게 했다. 내가 진정 오페라가수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불편한 옷을 입고, 무거운 커리어를 끌고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고생하며 다니면서도 마음이 설렜을 텐데, 난 왠지 슬프단 생각이 들었다. 동기들처럼 ‚무대에 서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노래를 잘하고 싶었지 무대에 서는 걸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유학생활을 하며 같이 큰 무대를 목표로 준비하는 친구들이 ‚무대가 그립지 않냐 ‘라는 얘기를 하면 공감이 잘 안 되었다. 한국에서야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콩쿠르라는 목표가 있어야 연습도하고 실력이 느니까 나갔던 거고, 나갔더니 늘 상을 받게 되면서 ‚이 길이 내 길인가 보다…‘하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콩쿠르나 오디션에 나가면 항상 뭔가 될 것처럼 2차, 3차까지 올라갔다가 똑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실패를 맛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면서 슬펐던 것보다 더 슬펐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맞나 싶었다.
나는 종교 안에서 위로를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도 성당에 가는 걸 좋아했지만 유학을 와서도 마음이 힘들 때면 빈 성당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있곤 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외로울 때 거기 가서 그렇게 앉아있으면 예수님이 내 마음 다 안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기도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서 멍 때리다가 오는 거다. 그럼 어두웠던 내 마음이 다시 빛으로 채워지는 거다.
2009년 여름, 세 번째 사랑이 끝났을 때, 그리고 여러 오디션과 콩쿠르를 다니며 몸과 마음이 다 지쳤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또 성당에 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내가 경험한 위로와 평화, 그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달랐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거구나… 무대가 아니고… ‚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시 나를 공허하게 만드는 화려한 세상으로 가지 않고, 수도원에 가거나,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소박한 성가를 부르면서 교회음악가로 살아가겠다고.
2009년 성탄, 여느 때처럼 나는 크리스마스 시기를 한인성당에서 보냈고, 성가대단원으로서 성탄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어떤 독일 남자 한 명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말했다. 내가 너무너무 노래를 잘한다고.
‚새로 유학 온 후배들 솔로 하라고 뒷 줄에 서서 그냥 잠자코 합창만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감사해요. 근데 저는 혼자 부르지 않았는데, 제가 노래를 잘한다고요?... “
„난 당신이 노래를 엄청 잘하는 걸 알고 있어요. 예전부터 솔로로 노래하는 걸 여러 번 봤어요. 당신이 최고예요. “
그렇게 우리 만남은 시작되었다.
지인을 통해서 콘서트가 있는 부활이나 성탄 등의 큰 축제에 2008년부터 여러 번 초대되어 왔던 이 남자는 나를 오래전부터 찜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꼭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 봐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온 것이었다.
자기 나이의 1.5배는 많아 보이게 만드는 80년대 90년대 풍의 박스형 잠바를 입고 요즘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양의 오래된 안경을 쓴 촌스런 모습의 이 남자는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시골 총각 같은 순수한 미소로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이미 이태리에 있는 수도원과 연락을 취하며 성소자로 지원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던 상태여서 결혼생각은 접어두었었고, 혹시 만약에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오페라가수보다는 교회음악가로 가끔 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낳고 성가정을 이루고 현모양처로 살고 싶다 생각했었다.
이 남자는 로맨틱하진 않았지만 솔직하고 우직하고 한결같았다. 어떤 길이 내 길일까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 나를 진중히 기다려주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용기 있게 고백하며 자기와 함께 두 번째 길을 가자고 했다.
이 남자가 점점 좋아지는데 영원한 사랑에 나를 바치겠다는 내 약속은 어찌할 것인가… 엄청난 고민을 하며 함께 강가를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하루 종일 먹구름이 드리워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빛살이 여러 줄기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여러 줄기의 빛살은 구름 사이에서 구름의 갈라진 틈을 금빛으로 꽉 채우면서 천천히 더욱 강해져서 우리 앞을 환하게 비추었다. 우리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그 고요 속에 아름다운 햇살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그 신묘한 광경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물이 났다. 우리의 사랑을 하늘에서 축복한다는 싸인 같았다. 이 남자를 사랑해도 괜찮다고 하늘에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빛으로 가득 차 나는 기뻐하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우리 결혼하자. “
그다음 해 우리는 한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게 대해주었다.
남편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도 내게 서슴없이 애정표현을 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는 우리 남편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착하고 신심 깊은 이 남자는 나와 함께 성당에 가는 걸 좋아하고 함께 기도도 했다.
이제 곧 아이만 생기면 아름답고 행복한 성가정이 될 것 같았다.
나는 29세, 남편은 38세. 우리는 아직 젊었다.
아주 작은 신혼집에서 소박하게 살았지만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