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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바람 Jun 28. 2023

내 학벌의 쓰임은 어디인가

전 어려서부터 매사에 그다지 욕심도 없었고, 딱히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때 되면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 실컷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아야지.. 생각했고

그래도 누가 '넌 나중에 뭐 할래' 물어보면 기사가 운전해 주는 내 차 타고 백화점 문화센터 갈 거야라고 농담반 진담반 얘기했더랍니다. 

운 좋게도.... 막 좋은 학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명문대에 입학하여 소위 엄친딸로 고등학교를 화려하게 졸업하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첫 아이낳고 바로 퇴직하였습니다.


지금의 전... 안타깝게도 기사는 없고, 아이들은 얼추 다 크고...

원한다면 문화센터에 갈 수 있는 시간과 내 차를 가진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딸이 물어봅니다.

엄마는 좋은 학교 나와서 왜 집에 있어? 

흠... 여기서부터 제 고민이... 고민이라기보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집에 있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뭔가 잘못 산 것인가... 

애 둘 키우면서 내심 생각 했었어요. 남편도 저도 공부 잘했으니 당연히 애들도 잘하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요. 내 학벌은 아이가 좋은 학교 가는데 쓰일 거야...라는...


그러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고, 이제쯤 빛을 발해 줄 때가 되었는데...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하고, 울 아이가 점점 그냥 노는 애로 낙인찍혀버리자 급기야는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첫째 친구 엄마들한테 내 학벌을 넌지시 밝혀볼까 

그럼 엄마가 공부는 좀 했으니 최소한 애가 공부 못하는 애로 각인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맘먹고 공부하면 서울대도 갈 수 있는 애로 봐주지 않을까 라는...

하지만 그 쓰임은 저의 자중과 쪽팔림으로 사용되지 못했지요. 

큰애는 그렇게 본인의 적성을 잘 살려 공부만 했던 남편과 제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로 발돋움하여 나가주었습니다. 기특한 녀석입니다...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집에서 나가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저도 시간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 꿈대로라면 문화센터를 가야 하는데 막상 갈 수 있는 조건이 되니 이상하게도 딱히 당기지가 않고...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비경제적이란 생각이 들어 노후에 보탬이라도 되어볼까 싶어 

경단녀로서 가능한 알바를 알아보았습니다.  시급이 많지는 않으나 딱 제 전공을 우대해 준다는 알바가 있어 지원하려고 이력서를 쓰다가 또 여기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만 쓰면 되나? 최종 학력도 써야 하나? 학력 쓰면 나쁘지 않은 학벌이니 당연히 알바시켜주겠지? 아닌가? 오히려 부담될까? 근데 왜 나는 창피한 느낌인거지?

그러게요.... 왜 나는 알바 이력서에 내 학력을 쓰는 게 창피할까요?  웃기는 생각이죠?

도대체 이 학력은 얻다 써먹어야 하는 거죠? 


몇 년 전 대학 학과 동문회가 있었어요.  그때가 졸업 몇 주년 기념이었나 해서 나름 많은 동기생들이 모인 동문회였습니다. 전...참석을 안했습니다. 

  

과 CC였다가 안 좋게 헤어진 안타까운 사연이 있기도 했고, 그래서 만나기 껄끄러운 동기들이 있었고...

그와는 별개로... 뭐 그냥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왜일까요?

친한 제 대학 친구는 동문회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을 울었다며 전화가 왔었습니다.  나가고 싶은데 자기 자신이 이러고 있는 게 한심하고 창피해서 못 나가겠다는 말을 전하더라고요.

그때 걔도 저처럼 전업으로 애들 키우고 있었는데, 걘 참 꿈이 많은 아이였거든요. 좋은 회사 취직해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집에 있던 아이라 그게 참 상처가 되었었나 봐요.

꿈도 없고 야심도 없었던 저인데... 전 왜 동문회 가는게 싫었을까요? 


좋은 대학 나왔으니...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그게 아님 재벌집에 시집이라도 갔어야 했을까요?  아니면 최소한 아이들이라도 입시에 성공했어야?

딱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지가 않을까요?

제 학벌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어야 좋았을까요?

전 제가 원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 생각했는데... 그냥 단지 정신승리였던 것일까요...




첫째는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고...

둘째는 기말고사를 보러가고...

날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비가 오려는지 영~ 꾸물꾸물한데

남편이 출근길에 현관에 커피를 엎어 시커먼 물을 들여놓고 간 하얀 줄눈을 벅벅 닦으며... 

괜시리.. 잘 사는 게 뭔가 싶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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