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왔다. 남편과 아들이 밉거나 싫어서도 아니고 무언가로부터의 도피도 아니다. 가끔은 그저 이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일 뿐이다.
내게도 분명 처음이 있었다.
육아와 직장일을 병행하며 쌓인 피로감과 그보다 더 크게 쌓인 남편에 대한 불만이 용감한 처음을 만들어 줬다.
직장과 가정만을 오가며 동동거리는 나의 모습과 달리 남편은 아이가 생기기 전의 생활과 똑같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꼬박꼬박 성실히도 술회식을 가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남편의 귀가를 확인해야 잠들 수 있었기에 남편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나의 수면 시간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에는 잠이 모자라 마치 내가 간밤에 회식을 한 사람처럼 몽롱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낳기만 해주면 다 키워주겠노라 다짐하던 그 사람이 어느 덧 흔히 말하는 남의 편이 되어 있던 것이다. 육아와 가사일 대부분이 나의 몫이며 무엇보다 당신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만 할 수 없었다.
그래, 떠나자!
발리행 비행기표를 끊고 남편에게는 통보만 해버렸다.
선전포고 없이 당한 남편은 그저 어리둥절해 했고 이내 정신 차려 내게 한 질문은 왜 하필 발리냐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일이니 그 때 당시에는 발리가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으니까. 혹시 다른 누군가가 동행하는지를 조심히 의심하기까지 했다.
난 그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를 봤을 뿐이었는데...
그렇게 홀로 떠난 발리에서 영화에서처럼 우아하게 먹었고, 하필 내가 묵은 호텔 담 하나를 두고 바로 옆에 붙은 성당에서 기도했고, 오로지 나를 더욱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집안일과 육아를 세부적이고도 꼼꼼하게 분담한 <발리 의정서>를 만들어 반 강제 체결에 이르게 한 쾌거도 있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직장일과 육아에 한계치가 다다르면 가족의 이해를 구하고 떠나곤 했다. 그리고 그곳은 늘 이 푸트라자야였다. 무엇을 할 지 계획하지 않아도, 큰 돈을 준비하고 오지 않아도 친정처럼, 엄마처럼 그저 편안한 푸트라자야...
매운 음식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담백하고도 매력적인 말레이시아 음식은 자꾸만 나를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풍성한 해산물요리를 비롯해 감칠맛 나는 볶음밥, 달콤한 꼬치 사테 등등 수많은 이 음식들을 한번씩만 맛보고 가도 계획한 일주일이 모자라다. 평소 가족과 왔을 때는 인원수대로 다양한 메뉴를 동시에 맛볼 수 있었지만 혼자라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두 가지 메뉴를 한끼에 주문하니 어제부턴 위장이 힘들어한다. 이래서 또 가족이 그리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