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나만의 여행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집 앞에 오는 시내버스에 무작정 오르는 것이었다. 집이 시골은 아니었으니 꽤 여러 노선이 있었고, 어떤 버스를 타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가장 먼저 오는 버스의 노선이 그날 내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왕복 버스비만 있으면 됐고,
대부분이 처음 타는 노선이니 이보다 새로울 수 없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그 버스 번호만 기억해 타면 우리 동네까지 쉽게 올 테니,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 이보다 안전하고 가성비 있는 여행이 또 어딨겠냐 싶었다.
도심지 버스들이다 보니 종점에 내리면 인근 어디에나 아파트 단지가 있기 마련이었다. 높이 솟아 어디서든 잘 보이는 단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면 반드시 있는 또 하나의 장소, 바로 놀이터가 나온다.
그네도 타고, 시소에도 앉아 있자면 혼자 나온 아이가 말을 걸어온다. 이내 언니라 다정스레 부르며 오랫동안 보아 온 이웃처럼 서로 그네도 밀어주고 챙겨 온 간식도 고사리 손으로 건네준다. 어느새 정이 들어 헤어지는 순간에는 약속을 하게 된다. 다음 일요일에 또 오라고, 나는 또 그러겠노라고.
버스에 올라가는 길에는 낯섦보다 기대와 설렘이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쉬움과 새로운 추억이 따라붙었다.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나는 그렇게 새로운 풍경 속에서 엄마도 모르게 살짝 여행을 다녀왔던 것이다. 그러면 아주 잠깐의 몇 시간이지만, 무거웠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곤 했다.
이곳 푸트라자야에는 그랩 택시 시스템이 워낙에나 잘 자리 잡혀 있어 웬만한 곳은 우리 돈 오천 원 내외로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덕분에 더운 날씨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편하게 이동한다.
하지만 오늘은 예전처럼 시내버스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랩이 우세이다 보니 여기는 되려 시내버스 보는 일이 쉽지 않아 미리 버스에 관한 정보를 파악해야만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요금이 대략 360원쯤이었는데 그것마저 기사님이 60원이나 깎아주셨고, 승객은 덜렁 나 혼자였다. 생각지 않게 전세버스가 되었고, 노련한 나만의 리무진 기사님은 푸트라자야 곳곳을 약 한 시간 동안 관광시켜 주셨다. 단돈 300원에 빵빵한 에어컨 서비스까지.
이런 호사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사춘기 시절 이후, 한 번도 시내버스 여행을 다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 후 다시 돌아가면 풋풋했던 그 시절처럼 버스에 올라야겠다. 하지만 이젠 힘듦과 고민이 아닌 기대와 설렘만 안고 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