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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인이다

by 사비나

푸트라자야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져 있는 행정 수도이다. 우리 기준으로 서울 옆 일산신도시 정도의 거리이고, 도시의 느낌은 세종시와 같다. 사실 세종시의 모델이 바로 이 푸트라자야이다.

푸트라자야에서 쿠알라룸푸르 시내까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차가 제법 막힐 수 있어 이동이 항상 수월하지만은 않은데, 다행히 최근에 쿠알라룸푸르까지 MRT라는 싸고 빠른 전철 노선이 생겼다.

마침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가고 싶은 곳이 생겨 오늘 이 교통수단을 이용해 봤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GTX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푸트라자야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교통수단이 된 듯하다.


내가 탄 다음 역에서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로 보이는 승객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눈에도 사이좋은 조손임이 분명했고, 좋은 곳에 가는지 표정이 매우 밝았다. 아이는 연신 나를 웃으며 쳐다봤고 할아버지도 내게 빙그레 미소를 보여주셨다. 손녀가 참 귀엽고 예쁘다는 인사로 나는 답례하며 짧은 인사를 나눴다.

아이는 나와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지만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신다고 손녀는 설명했다.


오늘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시내에 있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보러 가는 길이라는 일곱 살 아이의 이야기와 손녀만큼이나 들뜬 표정의 할아버지 모습에 나도 즐거웠다.

손녀는 우리의 대화를 할아버지가 알 수 있게 중간에서 계속 통역을 했고 어느새 셋의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갑자기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시며 엄지 척을 하신다. 그러더니 가족사진도 보여주시고 셋이 함께 사진도 찍자고 하신다. 급기야 나의 SNS 주소까지 물으신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리고 한국인이라서 받은 관심이겠지 싶다.

나 또한 그들이 보여 준 따뜻한 미소와 잠깐의 밝은 대화들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푸트라자야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이젠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궁금한 건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쑥쑥 잘도 드나든다.

정처 없이 걷다가 땀이 나길래 들어간 건물 안에는 은행, 편의점, 식당 등 상가들이 몇몇 보였다. 살펴보던 중 화장실에 다녀가야겠단 생각이 들어 찾아봤으나 안내표지판을 봐도 영어가 없어 도통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을 보던 한 식당 주인아저씨가 눈빛을 보낸다. 어디를 찾고 있느냐고. 한창 점심 손님들로 바쁘신데도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저녁 시간이 되어 어디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아까 그 친절한 식당 주인아저씨가 생각나 다시 그곳을 찾았다.

자세히 보니 인도네시아 음식점이었고 아저씨는 내가 아까 오지 않았었냐고 기억해 물으신다.

맞아요, 아까 바쁘신데도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다시 왔어요 하는 말에 기분 좋아하신다.

잠시 후, 나에게 추천해 주셨던 음식을 가져다주시고 또다시 오셔서는 매울 수 있으니 달콤한 다른 소스를 가져왔다고 연이은 친절을 베푸신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아저씨의 친절로 미슐랭 소울 푸드로 변하는 순간이다.


모르는 길을 물었을 때, 본인이 모르면 다른 사람까지 동원해 끝까지 가르쳐주려 애쓴다.

어느 곳에서든 기꺼이 자리나 순번을 양보해 준다.

호기심을 보이고 먼저 미소를 건네준다.

게다가

한국인임을 밝히는 순간, 모두 아! 하고 반가워하며 자신들이 아는 K 가수며, 배우, 드라마들을 열심히 말해준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는 혼자 하는 여행이지만 불편함이 전혀 없으며 따뜻하기까지 하다.


나는 오늘도 행복한 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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