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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

by 사비나

일본의 소도시 가고시마

전혀 계획에 없었던 곳이었다. 얼핏 들어는 봤으나 잘 알지도 못했던 곳이다.

이번 여름에는 아이의 방학도 짧으니 휴가를 가지 않겠다던 남편이 갑자기 생각을 바꿔 일본 여행을 제안했다. 항공권은? 숙박은? 그리고 언제 가는 건데?

하지만 남편은 늘 그랬듯이 맘만 가득할 뿐 이 모든 것에 대한 결정을 힘들어했다.

성향이 정반대인 부부가 잘 산다는 말이 맞다면 우린 잉꼬로 백년해로할 부부임을 장담하며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봤다. 7월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소문 때문인지 평소보다 아주 저렴하게 항공권을 해결하고 숙박 또한 수월히 예약했다. 그리고 3일 후 출발!

거리에는 알록달록한 전차들이, 호텔 창문 너머로는 화를 낼까 말까 하며 지금도 열받아하는 듯한 활화산이 이국적이고도 기분 좋게 맞아주었다.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어야 한다며 로컬들에게 인기라는 맛집을 찾아갔다. 오픈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벌써 두 팀이나 줄을 서 있고, 우리 뒤로도 계속 연이어 줄을 선다. 얼핏 봐도 외국인은 우리 가족뿐 모두 지역민들로 보였다.

한 시간을 꼬박 서 있던 끝에 드디어 식당 문이 열리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종업원의 권유대로 녹차를 만들었다.

각 자리 앞에 놓인 녹차 가루 통을 열어 한 스푼 컵에 담고 수도꼭지를 틀어 뜨거운 물을 받으면 훌륭한 녹차 완성!

초밥도 초밥이지만 그 녹차 가루 한 스푼이 얼마나 마법 같은 맛을 내던지... 연거푸 여러 잔을 맛나게 마셨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친하게 지내는 분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중, 한 분이 며칠 전 나고야를 다녀왔다며 일본 마트에서 산 물건 두 가지를 선물로 주셨다. 집에 와서 보니 화장품과 액상형 비타민이었다.

여행 갔다 온 바로 다음 날부터 학교를 개학해 피곤할 중학생 아들에게 이 예쁜 비타민은 양보해야지 하며, 물 건너온 거니 하루에 한 포씩만 아껴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릴 때부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준 아들은 약도 참 잘 먹었었다. 포장만 봐도 비타민이 가득할 것 같은 이 상큼한 영양제를 어느새 아들은 맛있다며 다 먹었다.


며칠 후, 선물 주신 분과 문자할 일이 생겨 주신 비타민을 저희 아이에게 잘 먹였노라 인사했다.

그분은

아~~~~~악!

그거 비타민 아니에요!

구강세척제라서 절대 먹으면 안 되는데 어떡해요!

너무 놀라 전화하셨다. 미리 설명하고 주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씀을 연신 거듭하며 진심으로 걱정하신다.

아! 이런.,. 아는 게 힘 이랬던가?

내가 일본어는 문맹이라...


외국 슈퍼마켓 쇼핑은 누구나 좋아한다지? 나도 그렇다.

초밥집에서 먹은 녹차가 너무나 맛있어서 가고시마의

슈퍼마켓에 가자마자 가루녹차를 한 봉지 구입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비도 내리고 우중충한데, 이 깔끔한 녹차 한 잔이 가고시마를 기분 좋게 추억해 줄거라 기대하며 구입 후 처음 봉지를 오픈했다.

아~~~~~~악!

뭐지? 이 요상하고 기분 나쁜 맛은?

일본어에 까막 눈인 나를 대신해 친절한 파파고는 이렇게 설명해 준다.

다시마를 넣어 만든 조!미!료!



녹차를 기대하고 먹었건만

찝찌름한 조미료를 냉수에 타 마신 문맹의 나...


아들, 오늘 별일 없었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학교에 다녀온 아들에게 조심스레 묻기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명랑한 사춘기 아들은 웃으며 말한다.

엄마! 밥 주세요, 배고파요.

모르는 게 약... 이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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